mlbclassic(2017-03-13 22:00:46, Hit : 68, Vote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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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와 감독으로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일군 Gil Hodges



<사진출처 : mlb.com>


메이저리그가 창설된 이후 수많은 선수들이 꿈의 리그에 몸을 담았고, 그중 극소수만이 1936년부터 시행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하지만, 일부 선수들은 훌륭한 성적을 기록하고도 헌액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Gil Hodges가 아닐까 싶다.

1950년대 브루클린 다저스의 전성기 시절 일원이었던 그는 당시 팀의 동료들이었던 Duke Snider, Jackie Robinson, Roy Campanella, Pee Wee Reese가 모두 헌액되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또한, 감독으로서 1969년 'Amazing Mets'를 일궈낸 주인공이기도 하여 선수와 지도자로서 동시에 성공을 움켜쥔 야구인었다.

1943년 19살의 나이로 메이저리그 데뷔를 한 이후 2차 세계대전 기간 2년 넘는 군생활로 야구장을 잠시  떠나있던 Hodges는 1947년 포수로서 본격적인 프로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흑인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허용되면서 니그로리그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Campanella가 팀의 안방을 차지하였고, Leo Durocher 감독은 Hodges를 1루수로 전향시켜 공격력의 극대화를 구상하였다.

풀타임 첫해였던 1948년 포수로서 잠깐 모습을 비추기도 하였지만, 그의 주된 포지션은 1루였고, 이듬해부터는 팀의 주전 1루수로 자리매김 한다. 1940년대 후반부터 월드시리즈 우승을 쓸어담은 양키스가 메이저리그를 평정하고 있었지만, 다저스의 저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가장 어렸던 Duke Snider가 1949년부터 본격적으로 합류하자 Campanella-Hodges-Snider의 클린업 타선은 세 명이 각각 한시즌 +40홈런. +100타점이 가능한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핵타선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1949년 Hodges는 커리어 첫번째 +100타점과 23홈런으로 팀의 리그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양키스의 높은 벽에 쓴맛을 보긴 했지만 월드시리즈에서도 4타점으로 나름대로 좋은 활약으로 다저스의 간판타자로 성장하여 8차례의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1950년 8월 31일에는 브레이브스와의 홈경기에서 2점 홈런 3개, 3점 홈런 1개로 한경기  4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이해 32홈런을, 1951년에는 40홈런으로 42홈런을 기록한 Ralph Kiner에 이어 홈런 부문에서 리그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Hodges의 장점은 부상없이 매시즌 140경기 이상을 출장하면서 +100타점, +30홈런으로 중심타자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이며, 수비에서도 골든글러브 3회 수상할 만큼 정교하고
안정된 수비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또한, '다저스의 Lou Gehrig' 으로 불리며 깨끗한 매너와 근성있는 플레이로 팀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그의 이러한 지도력과 카리스마는 감독 시절 그 역량이 발휘되면서 리그 9위의 메츠를 단숨에 월드시리즈 정상까지 올려놓음으로써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의 실력과 리더십으로 다저스는 1950년대 중반 내셔널리그의 최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고, Hodges는 1954년 생애 최고의 해를 맞이하며 42홈런, 130타점, +3할 타율로 MVP급 성적을 기록한다. 1949년부터 1955년까지 7년 연속 +100타점으로 팀을 수차례 월드시리즈까지 진출시켰고, 1955년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1개의 홈런과 5타점으로 선수로서 첫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할 수 있었다.

30대로 접어들면서 예전과 달리 정교함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식지 않는 장타력으로 평균 25개가 넘는 홈런을 쏘아올렸으며, 1957년 8월 1일 컵스와의 경기에서는 통산 14번째 만루홈런으로 당시 내셔널리그 최다 그랜드 슬램기록을 작성하였다(Hodges의 만루홈런 갯수는 아직까지 다저스 팀 최다기록이다).

1958년 팀이 LA로 연고를 옮기면서부터 Hodges의 홈런수도 줄기 시작, 36살이 되던 1960년 데뷔 13년만에 홈런수가 한 자리수로 떨어지게 된다. 결국 16년간 몸담았던 친정팀 다저스를 떠나 1962년 신생팀 뉴욕 메츠로 이적하여 1963년 3개의 홈런을 추가하고 18년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워싱턴 세네터스가 미네소타 트윈스로 팀명과 연고지를 바꾸자 그 자리를 새로운 세네터스가 메웠고(現 텍사스), Hodges는 신생팀 워싱턴 세네터스의 감독으로 부임, 지도자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감독 Hodges는 첫 4년동안은 뚜렸한 성적을 남기진 못했지만, 팀전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승률 3할의 워싱턴을 5할 승률까지 끌어올렸고, 1968년에는 메츠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1969년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일궈내었다.

1969년 우승 이후에도 팀을 계속해서 리그 정상권에 올려놓아 메츠의 전성기를 이끌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이전부터 좋지 않았던 심장문제로 인하여 1972년 시즌 개막 직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그의 나이 47세였다.

1981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241표(득표율 60%)까지도 받았지만 헌액되지 못했고, 이후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서도 거듭 실패했지만, 선수와 지도자로서 그가 남긴 성적, 성실한 플레이와 신사적인 매너로 영구결번(뉴욕메츠 #14)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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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경기 연속 노히트 경기의 주인공
내셔널리그 최초의 500홈런, Mel 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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