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3-28 21:33:10, Hit : 73, Vote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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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ast' Jimmie Foxx



(사진출처 : 명예의 전당)



1930년대 최고의 투수이자 입담좋은 양키스의 Lefty Gomez는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을때 재미있는 농담을 방송을 통해 건넸다.
"암스트롱이 달에서 하얀색의 미확인 물체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Foxx가 나를 상대로 뽑아낸 홈런공일겁니다."
1937년 Foxx는 Gomez를 상대로 양키스 좌측관중석 3층에 떨어지는 대형 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었다.

'우타석의 Babe Ruth(the righthanded Ruth)', 'Beast'라는 별명으로 1930년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거포중 한명이였던
Jimmie Foxx는 리그 투수들의 두려움 자체였다. 엄청난 근육과 힘을 자랑한 Foxx는 세미프로팀에서 활약하며 메이저리그 진입을 노리고 있었다.

1910년대 필라델피아 A's시절 리그 최고의 강타자로 명성을 날린 Frank Baker에 의해 발굴된 Foxx는 Baker의 강력한 추천으로 A's에서 1925년 메이저리그 신고식을 치루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 17살이였다. 원래 포지션은 포수였지만, 당시 A's에는 훗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리그 최고의 포수 Mickey Cochrane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927년부터 1루수로 전향하였고. 그해에 61경기에 출전, 5할이 넘는 장타율을 선보이며 Connie Mack 감독의 눈에 확실한 도장을 찍게 된다.

1928년부터 붙박이 1루수로 자리매김하며 타율.328, 13개의 홈런을 기록한 Foxx는 이듬해 1929년부터 괴력의 방망이 쇼를 펼쳤다. 타율.354, 33개의 홈런, 118타점으로 Babe Ruth, Lou Gehrig, Al Simmons에 이은 리그 4위의 장타율로써 리그 최고의 슬러거로 떠올랐다.

1930년에는 158타점으로 팀내 최다타점을, 1931년에도 +35개의 홈런+120타점을 기록하며 1929년부터 3년 연속 팀의 월드시리즈과 두차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크나큰 기여를 하였다.

1932년에는 생애 첫 +200안타와 타율.364, 58홈런,169타점으로 타율에서만 보스턴의 Dale Alexander에게 뒤졌을 뿐 홈런과 타점, 심지어 장타율에서조차 Ruth, Gehrig를 제치고 1위에 올라 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이듬해에는 타율.35648홈런, 163타점으로 강력한 경쟁자였던 Gehrig과 Ruth를 멀찌감치 제치며 트리플 크라운MVP를 차지하였다.

1935년 디트로이트의 신예 거포인 Hank Greenberg와 36개의 홈런으로 리그 공동홈런왕에 오르며 팀을 리그 정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대공황 여파와 팀의 재정난으로 인해 15만불에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고 만다. 이적 첫해였던 1936년 41개의 홈런과 143타점으로 식지않는 폭발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우승에 목말라 있던 Tom Yawkey구단주의 관심을 뜸뿍 받았고, A's시절과 특별한 차이없이 계속해서 리그 최상위권의 공격력을 발휘하였으나, 팀은 끝내 월드시리즈에 한차례도 진출하지 못하고 말았다.

1938년 두번째 트리플 크라운에 도전하며 시즌내내 괴력을 발휘, 50홈런, 타율.349, 그리고 커리어 최고 175타점을 기록하였지만, 58개의 홈런을 기록한 Greenberg에 밀려 트리플 크라운달성에는 실패하였다. 그러나, 리그 MVP는 Foxx의 몫으로 돌아갔고, 메이저리그 최초로 리그 MVP를 3회 수상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1940년 36개의 홈런을 마지막으로 12년 연속 +30홈런을 기록한 Foxx는 1941년 105타점으로써 13년 연속 +100타점을 달성하게 된다. 
특히, 12년 연속 30홈런은 2004년 Barry Bonds에 이해 경신되기 전까지 메이저리그 기록이기도 했다.

선수시절 잦은 음주와 1935년부터 시작된 야간경기가 빈번해지면서 시력에 문제가 생기면서 타석에서의 무시무시한 존재감도 조금씩 약화되었다. 1942년 시즌 중반 컵스로 트레이드 되었으며, 투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였던 그도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자 뚜렷한 하향세를 보였다.

1942년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났지만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많은 선수들이 군복무로 빠져나간 1944년, 인기가 급락한 메이저리그를 살리기 위하여 Foxx의 복귀를 추진하였고 이벤트성 차원에서 투수로 등판하기도 하였다. 은퇴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의 방송해설자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1951년 79%의 득표율로 헌액되었다. 

장외홈런도 종종 날릴 정도로 파워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던 Foxx는 현역시절  Babe Ruth와 Lou  Gehrig 등을 제치고 장타율에서 5차례 1위를 차지하며, 통산 장타율에서도 역사상 6명만이 기록하고 있는 +6할을 기록하고 있으며, 홈런과 타점, OPS 등에 있어서도 역대 최상위권에 드는 성적을 갖고 있는 140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슬러거 중 한명이었다.

또한, 은퇴 당시 최연소 500홈런(32살)의 기록은 2007년이 되어서야 A-Rod에 의해 경신되기도 하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7차례나 리그 최다삼진을 기록한 것이지만 통산.325의 타율최고장타율.749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부끄러운 오점은 아니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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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포수 Mickey Cochrane
Gas house gang의 좌익수, Joe Medw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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