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3 20:15:54, Hit : 76, Vote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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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mph(?)의 광속구를 뿌렸던 사나이




영화 '미이라'의 주인공으로 국내에도 친숙한 Brendan Fraser가 주연을 맡았던 'The Scout(1994년)'라는 영화가 있다. Fraser는 영화속에서 Steve Nebraska라는 야구선수로 등장하는데, 한번 배트를 휘두르기만 하면 좌우타석 가릴 것 없이 무조건 홈런을 치고, 마운드에서는 무지막지한 강속구로 타자들의 넋을 빼놓는 최강의 선수였다.

그의 공을 받는 포수는 엄청난 위력의 공에 앉은 채로 밀려나기까지 하는데, 이런 선수를 가만히 놔둘 메이저리그가 아니였다. 이 영화에서 한물 간 스카우터로 나오는 배우(이름은 모르겠음)가 Nebraska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봤고, 여러팀의 스카웃 제의를 마다하고 George Steinbrenner의 양키스에 입단하게 된다. Steinbrenner가 까메오로 출연하여 좋은 선수를 잡기 위해서라면 투자에 전혀 인색하지 않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이밖에 Keith Hernandez와 Bret Saberhagen등 실제 메이저리거가 출연한 것도 이영화가 주는 또 하나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Nebraska는 야구선수로서는 최고였지만, 사회생활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다시 재기에 성공하게 되고 양키스 구장에서 시종일관 110mph이라는 믿기 어려운 구속을 뿌려대며 많은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글의 서론이 다소 길어졌는데, 110mph이라는 구속을 과연 인간이 실제로 던질 수 있을까?
투수들의 투구속도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Clark Griffith는 불세출의 강속구 투수중 한명이었던 Bob Feller의 공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오토바이와 미육군 연구기관의 첨단장비까지 동원하여 1945년 여름 워싱턴 세너터스의 홈구장에서 Feller가 던진 강속구의 스피드를 측정하는데 성공하였다. 당시 그가 던진 공중에서 가장 빠른 스피드가 98.6mph이었다(Feller는 1946년 시범경기에서 자신의 최고스피드인 107.9mph을 찍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요즘으로 봐서는 아주 원시적인 방법이었지만, 이전까지 육안으로만 봐야했던 투수들의 공속도를 정확한 숫자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10년후 Griffith는 세상을 떠났고, 다시 2년후인 1957년 19세의 왼손투수 한명이 등장하게 된다. 178cm의 키에 78kg의 평범한 체격이었고, 시력이 나쁜 관계로 도수 높은 돋보기같은 안경을 쓴 투수였다.

볼티모어 마이너리그에 입단한 Steve Dalkowski는 상상하기 힘든 강속구로 고등학교 시절 18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노히트 경기를 기록한 선수였다. 프로선수생활 첫해부터 그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공을 직접 본 타자들과 동료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여태까지 봤던 공중에 가장 빨랐다"

"솔직히 공에 맞아 죽을까 두렵다"


프로 첫해 Dalkowski는 62이닝동안 121탈삼진을 기록하며 1경기당 18개의 탈삼진을 기록하였다. 타자들이 두려워할 만한 투수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탈삼진 때문에 타자들이 그를 두려워한 것은 아니였다.
"그의 팔은 신이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지만, 그의 제구력은 악마가 내린 저주였다"

제구력이 기대 이하였던 것이다. 적은 이닝에도 불구하고 129개의 볼넷을 남발했고, 폭투역시 40개를 넘어설 정도였다. 일례로 그는 이해 등판한 한 경기에서 완투를 펼치며 9이닝동안 24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으나, 볼넷은 18개, 6개의 폭투, 그리고 4명의 타자를 저 세상으로 보낼뻔한(?) 몸에 맞는 공으로 극과 극의 피칭내용을 선보였다. 안타는 고작 1개를 맞았지만, 점수는 8점이나 내줬다. 그의 제구력이 얼마나 최악이었는지, 배트보이 조차 덕아웃에 들어가서 몸을 피할 정도였다.

공이 어떤 방향으로 날아올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의 제구력을 가졌다는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제구력이 이처럼 나빴던 이유에 대해서 정확한 원인을 찾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Dalkowski의 시력이 좋지 않았다는 점도 한 이유가 아니였을까 싶다. 당시로서는 오늘날처럼 라식수술이나 렌즈같은 기술력이 당연히 없었을테고, 도수 높은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었으니 타켓을 정확히 노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을 것이다.

영화 '메이저리그'에서 Rickey Vaughn(Charlie Sheen)도 자신이 시력이 나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제구력이 엉망이었던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 최고구속 110mph?

하여튼, 악마의 제구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강속구 자체는 당대 최고, 아니 역사상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Dalkowski와 동시대에 선수생활을 한 선수중에서 내노라 하는 강속구 투수로 Sandy Koufax,  Herb Score외에 상대타자들로 하여금 경기를 포기하게 만들었던 양키스의 불펜투수 Ryne Duren등이 명성을 떨치고 있었지만, 스피드 하나만 놓고 봤을 때는 Dalkowski의 강속구에 미치지 못했다는게 중론이다.

그리고, 이후에 등장했던 클리블랜드의 영건 Sam McDowell, 신시내티의 Jim Maloney, 강속구 투수의 대명사 Nolan Ryan 역시 Dalkowki의 공에는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과연 그의 공이 얼마나 빨랐기에 이런 평가가 내려진 것일까?

1961년 스프링캠프에서 보스턴의 Ted Willams가 Dalkowski의 공을 상대하게 되었는데, 당시 30개의 공을 던지고 난뒤 Williams는 "첫번째 던진 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공에 배트를 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Bob Feller의 공을 상대해본 적도 있지만 이정도는 아니였다. 내가 본 공중에게 단연 으뜸이다. 만약 Sandy Koufax가 100mph을 뿌린다면 Dalkowski는 120mph을 던질 것이다. 솔직히,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는 그의 공을 상대로 다시는 타석에 들어서고 싶지 않다"

Dalkowski를 지도했던 Earl Weaver 前 볼티모어 감독은 "Nolan Ryan이 100.9mph의 최고스피드를 갖고 있지만, Dalko에게서 100mph의 공은 그가 던질 수 있는 중간정도의 스피드에 불과하다.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105 ~ 110mph의 속도는 손쉽게 볼 수 있었다."

마이너시절 Dalkowski와 2년동안 절친한 룸메이트로 지냈던 Pat Gillick 前 시애틀 단장은 "그의 스피드를 따라올자는 절대 없다. 만약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면 마무리투수로서 새로운 기원을 만들었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이 3명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그의 강속구에 대해서 놀라움과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착시현상중의 하나인 이른바 라이징 패스트볼이 Dalkowski의 공을 접한 선수들에게는 실제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가 던진 공이 타자의 귀를 살짝 스쳐가도 귀가 찢어져 피가 줄줄 흘렀다고 하며, 1960년에는 포수가 잡지 못한 공이 심판의 마스크를 때려 산산조각이 나면서 그 심판은 3m 뒤로 나자빠질 정도였다.

그 심판은 3일동안 뇌진탕 증세로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고 한다. 또한, 포수뒤쪽의 백넷(backnet)을 뚫고 지나가 맥주를 마시고 있는 관중들을 다치게 했다는 것도 허풍이 아닌 모두 사실이다.

그의 강속구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마침내 Bob Feller가 15년전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측정을 하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93.5mph에 그쳤다. 하지만, 시험전날 그는 150개가 넘는 공을 던진 상태였고, 투구측정 40분전에도 공을 힘껏 뿌려대며 이미 힘을 낭비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험에 참여했던 이들은 평소보다 10mph이상 속도가 작게 나왔다고 얘기들을 했다. 며칠뒤에 비공식으로 다시 측정을 한 결과 104mph이 실제로 찍혔다고 하니 신빙성이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구력은 최악이라도 상상을 뛰어넘는 강속구를 갖고 있는 투수를 제대로 키운다면 새로운 역사창조도 가능할 수 있었다. 1962년 볼티모어의 마이너리그 신임감독으로 부임한 Earl Weaver는 투수코치와 체계적인 훈련을 계획하고 Dalkows를 조련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의 지능지수는 70정도에 불과했으며, Dalkowski는 자신이 던지는 공에 타자들이 맞아 죽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린 아이와 같은 그를 달래가며 지속적인 상담과 기술적인 측면을 대대적으로 수정한 결과 시즌 후반에는 52이닝동안 삼진 110개, 볼넷은 단 10개, 1실점의 엄청난 향상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트리플A까지 바라보며 시즌을 시작하게 된다. 모두들 엄청난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시범경기에서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양키스의 Roger Maris를 멋지게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지만, 후속타자의 번트타구를 처리하다가 왼쪽 팔꿈치에 부상을 당한 것이다.

이후 제구력은 다시 악화되었고, 110mph까지 나왔을 것이라는 스피드는 저하되기 시작했으며ㅡ그래도 여전히 그의 강속구는 일반 투수들의 속도를 훨씬 상회했다.ㅡ 술에 찌들면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하고 1966년 방출되는 신세가 되었다.

9년간의 마이너리그 통산성적은 995이닝, 1,396탈삼진, 1,354볼넷, 46승 80패, 평균자책점 5.99였다. 1960년에는 가장 많은 170이닝을 소화하면서 262삼진을 기록했지만, 262개의 볼넷을 허용하기도 했다.

이글 서두에서 언급했던 'The Scout'는 물론이고, Kevin Costner가 주연한 'Bull Durham(1988년 작품, 국내에서는 '19번째 남자'로 개봉)'에서 Nuke LaLoosh(Tim Robbins)라는 인물역시 Dalkowski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영화였다.

주목할 만한 점은 영화제작을 위한 자료수집과정에서 Dalkowski가 비공식기록인 115mph까지 기록했다는 사실을 수집했다는 것이다. 여러 일화등을 통해서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그리고 과연 진정 신뢰할 만한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스피드건이 오늘날처럼 일상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110mph까지 던졌다는 것은 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전해지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한가지만은 확실하다. 그의 강속구 스피드 하나만큼은 어느 누구도 넘보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며, 강속구 하나만으로 전설적인 인물로 대접받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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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월드시리즈 3연패 오클랜드 왕조의 리더 Sal Bando
1950년대 양키스의 무한독주체제를 저지한 명장 Al Lop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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