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8-07-15 22:15:34, Hit : 52, Vote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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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펭귄 Ron Cey


(사진출처 : latimes) 제목 없음

 

'펭귄' Ron Cey의 플레이는 아직도 많은 팬들의 뇌리에 기억되고 있다. 175cm정도의 다소 작은 키에 짧은 다리로 뛰는 모습은 웃음을 절로 나게 했다. 모교인 워싱턴 주립대학의 코치로부터 '펭귄'이라는 별명을 얻은 Cey는 Bill Buckner, Davey Lopes, Steve Garvey등과 함께 1968년 드래프트를 통해 다저스에 입단하게 된다.

 

마운드의 황제 Koufax가 은퇴한 이후 다저스는 1966년 리그 1위에서 다음해부터 2년 연속 리그 8위에 머무르는 부진을 보였다. 팀이 전력을 가다듬기 시작한 1971년이 되어서야 Cey는 마이너에서 2년이 넘는 기간을 보내고 빅리그에 잠깐 모습을 나타냈지만, 입단동기이자 팀의 3루수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던 Garvey에게 밀려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팀의 1루를 책임지고 있던 31살의 Wes Parker가 부상 등을 이유로 은퇴를 선언하자, Walter Alston 감독은 Garvey를 1루로 돌리고, 1973년부터 Cey를 주전 3루수로 기용하게 된다.

 

자신보다 먼저 메이저리그에 승격해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던 입단동기 Buckner, Garvey에 수치상으로는 쳐져 있는 모습이였지만 좋은 선구안을 바탕으로 80개에 가까운 볼넷을 얻어내며 풀타임 첫해 15홈런, 80타점의 준순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또한, 2루수였던 Davey Lopes까지 팀의 붙박이 2루수로 기용되면서 이 시즌부터 1루수 Steve Garvey-2루수 Davey Lopes-3루수 Ron Cey-유격수 Bill Russell 로 이어지는 당대 최강의 내야진이자 메이저리그 역사상 最長의 내야진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내야진에 포수 Steve Yeager가 1974년부터 새롭게 가세하자 다저스는 거의 8년동안 완벽하고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1980년대 초반까지 리그의 강팀으로 군림하였다.

 

1974년 6월 1일 컵스와의 원정경기에서는 1경기 7타점을 기록하며 올스타까지 선정되더니 7월 31일 샌디애고와의 경기에서는 1경기 8타점으로 이해 18홈런, 97타점의 성적을 내며 리그를 대표하는 3루수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하지만, 그는 항상 2인자로 남아야 했다. 필리스의 3루수 Mike Schmidt가 1974년부터 홈런포를 가동했기 때문이였다. 수비에서 Cey가 70년대 2차례의 리그 최고수비율과 한시즌 9개의 최소에러(1979년)를 기록할정도의 수준급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Schmidt가 수비에서도 골든글러브를 독식하며 리그 최고의 3루수 자리를 계속해서 차지했다. 시기를 잘못 만났다고 해야할까?

 

은퇴하기까지 항상 Schmidt의 그늘에 가려있어야 했던 Cey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시즌 꾸준한 공격력과 안정된 수비로 팀에 계속해서 기여를 하였다. 1975년에는 25홈런, 101타점, 1977년에는 4월 한달에만 29타점을 기록하여 당시 내셔널리그 기록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페이스를 시즌이 끝날 때까지 유지함으로써 30홈런, 110타점으로 커리어 최고의 성적을 올렸고, 정규시즌 마지막경기에서 외야수 Dusty Baker가 시즌 30호 아치를 쏘아올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한팀에서 4명의 선수가 한시즌 나란히 +30홈런을 기록(Garvey :33개, Reggie Smith :32개)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1974년 포스트 시즌 진출이후, 3년만에 다시 가을의 축제에 초대받은 Cey는 필라델피아와의 챔피언쉽 시리즈 1차전에서 그랜드슬램을 쏘아올렸으나,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1할대의 빈타에 허덕이며 74년 월드시리즈에 이어 또 다시 약한 모습을 보여 다소 실망을 안겼다.

 

풀타임 데뷔이후 1980년까지 매시즌 평균 25개의 홈런과 80타점으로 74년부터 79년까지 6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며 스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고, 1981년에는 파업으로 인해 7년 연속 20홈런에 실패하였지만 괴물신인 Fernando Valenzuela의 등장과 오랜기간 맞춰온 팀동료들과의 호흡으로 다시 한번 월드시리즈 정상에 도전하게 된다.

 

하지만, 시작은 좋지 않았다. 양키스와의 원정경기 1,2차전에서 모두 패배하며 벼랑까지 밀린 것이었다. 그러나, 다저스에는 펭귄 Cey가 버티고 있었다. 3차전에서의 귀중한 3점 홈런으로 팀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5차전에서는 8회말 양키스의 100마일 마무리 투수 Goose Gossage의 빈볼에 머리를 강타당했음에도 후유증을 안고 경기에 출장하는 투지를 발휘하여 동료들과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다. 월드시리즈에서 약했던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1홈런, 6타점, 타율.350으로 Pedro Guerrero, Steve Yeager과 함께 월드시리즈 MVP까지 공동수상하며 자신의 야구인생에 있어 최고의 한해로 장식하였다.

 

1982년 2루수 Lopes가 오클랜드 A's로 이적하면서 10년 가까이 지속된 전설의 다저스 내야진은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된다. 이듬해 1983년 Cey도 컵스로 트레이드 되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만한 내야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5년간 생활했던 LA생활을 정리하고 35살의 늦은 나이에 시카고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지만,  팀의 리더로서 활약하며 만년꼴지 컵스는 1984년 50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쾌거를 올리게 된다.

 

당시 컵스에는 정상급의 슬러거는 없었지만, 모든 팀원이 고른 활약을 펼쳤고 고참인 그는 생애 11번째 +20홈런이자 팀내 최다인 25홈런, 97타점으로 컵스팬들로부터 Ron Santo이후 최고의 3루수라는 평가를 들으며 시카고에서도 인기있는 스타의 명성을 이어가게 된다.

 

1986년 5월 3일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통산 300,301호 홈런을 수립한 후, 1987년 오클랜드를 마지막으로 17년간의 선수생활을 정리하였다. 다저스 시절 1경기 5안타를 3회나 기록하였고, 특유의 몰아치는 공격력으로 어느 팀에서나 꼭 필요한 선수로서 아직까지 기억되고 있는 그는 통산 316홈런, 1,139타점과 3루수부문 통산 홈런(312개)에서 역대 10위권에 이름을 올릴정도로 메이저리그 역사에 있어 손꼽을 만한 3루수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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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볼 시대 최고의 2루수 Eddie Collins
명포수 Mickey Coch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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