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3 20:36:12, Hit : 69,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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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 월드시리즈 3연패 오클랜드 왕조의 리더 Sal Bando




1930년대 이후 장기적인 침체를 맞고 있던 A's가 1970년대 '오클랜드 왕조'라는 칭호를 들으며 최강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캔사스시티 A's를 사들인 Charlie Finely가 젊고 실력있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캡틴이었던 Sal Bando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시절 대학 월드시리즈에서 갖가지 기록을 세우며 MVP까지 차지한 Bando는 1965년 처음으로 실시된 프로야구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같은 대학 출신이였던 Rick Monday와 함께 A's에 입단하였다. Monday가 전체 1순위로 팀에 합류했고 Bando가 6라운드로 입단을 했지만, 빅리그에서의 활약은 Bando가 우위를 점했다.

2년동안 마이너리그에서 시간을 보낸 그는 당시 팀의 부사장이자 자신과 같은 이태리계 출신인 Joe DiMaggio로부터 타격지도를 받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1966년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팀에 합류한 대학후배 Reggie Jackson과 함께 1968년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Bando는 주전 3루수로 활약하며 커리어를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1969년에는 첫번째 전성기를 구가하며 커리어 최다인 31개의 홈런을 쏘아올렸고, 4월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만루홈런을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오클랜드 A's의 구단 첫번째 그랜드 슬램이였다.

또한, 이해에 시애틀 Pilots(現 밀워키)를 상대로 2차례의 한경기 5안타를 기록하였으며, 이것은 오늘날까지 오클랜드 역대 기록으로 남아있는 상태이다. Bando는 홈런포라는 무기대신 삼진을 많이 당했던 Reggie Jackson과는 달리 타석에서 뛰어난 선구안을 발휘했으며 높은 출루율을 기록, 거의 매시즌 삼진보다 많은 볼넷을 얻어내며 상대팀 투수들을 괴롭히는 스타일의 타자였다.

득점권에서의 타격도 팀내에서 가장 높은 선수가 바로 'Captain Sal' Bando였다. 화려한 수비는 아니였지만, 안정적인 수비를 펼쳐 Brooks Robinson의 은퇴이후 양키스의 Graig Nettles와 함께 1970년대 AL 최고의 3루수로 자리매김하였다.

1971년 24홈런, 94타점의 성적으로 팀동료 Vida Blue에 이어 MVP 투표에서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Bando는 72년부터 74년까지 팀이 월드시리즈 3연패를 하는 기간동안 한 시즌만을 제외하곤 평균 25개의 홈런과 100타점으로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포스트시즌에서도 그는 결정적인 타점을 올리곤 했는데, 특히 1973년 볼티모어와의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2차전에서 2개의 홈런을 쏘아올리며 당대 최강의 선발진을 보유한 볼티모어를 침몰시켰고, 74년 다시 맞대결을 펼친 볼티모어의 Jim Palmer를 상대로 양팀을 통틀어 유일한 타점을 기록하며 Vida Blue의 완봉승에 힘을 실어주었다.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겸비했던 그의 말 하나하나에 대하여 팀동료들은 감독의 지시보다 더 신뢰하였다고 하는데, 1973년 메츠와의 월드시리즈에서 선수들은 Bando를 중심으로 결속력을 다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홈에서 열린 2차전은 연장 12회까지 가는 접전을 펼친 경기였다. 9회말 4-6으로 뒤지고 있던 오클랜드는 2사후에 Reggie Jackson과 1루수 Gene Tenace의 연속안타로 동점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연장 12회초 만루상황에서 오클랜드의 2루수 Mike Andrews가 메츠의 John Milner가 때린 평범한 2루수앞 땅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에러를 범해 2실점을 허용해버렸고, 다음 타자 Jerry Goate의 땅볼처리때는 1루에 악송구를 하며 또 다시 1실점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이에 격분한 Finley 구단주는 경기가 끝난 직후 Andrews를 바로 부상자 명단에 올리면서 방출시켜버렸다. 이에 Bando는 그러한 구단주의 조치에 반발하며 매스컴을 통해 구단주를 직접 비난했고, 다음날 경기에서 검은 완장을 차고 경기에 출장하였다.

그의 행동에 다른 팀원들도 똑같이 검은 완장을 팔에 착용하고 나오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1975년을 기점으로 팀내 스타급 선수들의 연봉이 오를 기미가 보이자 Finely 구단주는 Catfish Hunter등 주축선수들을 팔면서 'Moustache Gang'이라는 호칭을 얻은 왕조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Bando 역시 76년 시즌이 끝나고 FA계약으로 밀워키로 이적, 밀워키 구단 역사상 첫번째 자유계약 선수로 등록되었다. 밀워키에서의 첫 2년간은 나름대로 활약을 하며 팀공격에 기여를 한 그였지만,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급격히 하향곡선을 그려 벤치멤버로 활약하다 1981년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밀워키에서도 팀동료들은 그를 중심으로 결집했으며 Bud Selig 구단주는 그러한 Bando에 대하여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며 1991년 이후 9년간 그를 밀워키의 단장으로 데리고 있었다.

1968년부터 약 10여년간 그는 리그에서 홈런과 타점부문등 여러 공격부문에서 Top-5에 명함을 내밀며 Carl Yastrzemski 등의 스타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여 명예의 전당 헌액까지 생각할 정도였으나, 밀워키에서는 예전의 파워있는 타격를 유지하지 못해 그의 팬들은 이점을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2000년 밀레니엄을 맞아 정통 스포츠전문지 TSN은 1910년대 초반 A's의 홈런타자 Frank Baker를 제치고 Bando를 A's 역대 최고의 3루수로 뽑을 정도로 그에 대하여 높은 평가를 내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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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그로리그의 Dick Redding, 한 시즌에만 노히트경기 7회
110mph(?)의 광속구를 뿌렸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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