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20-04-11 09:13:02, Hit : 10, Vote : 1
 1.jpg (129.2 KB), Download : 0
 1920년대 양키스의 에이스 Waite Hoyt



(사진출처 : baseball hall of fame)


1901년 Baltimore Orioles라는 팀명으로 창단,  이후 New York Highlanders를 거쳐 오늘날의 양키스라는 이름으로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획을 긋기까지 많은 투수들이 양키스 제국의 건설에 일조를 하였다. Bob Shawkey가 그 뼈대를 만들었다면, Waite Hoyt는 Herb Pennock과 함께 그 뼈대를 더욱 견고히 하며 벽돌을 쌓아 올림으로써 후배투수들이 집을 완전히 만들기 전까지의 토대를 제공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브루클린 출신으로 다저스의 팬이기도 했던 그는 1915년 15살의 어린나이에 Johm McGraw의 뉴욕 Giants에 입단, 마이너리그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1918년 잠깐 메이저리그에 모습을 비쳤지만, 그다지 뚜렷한 두각을 보이지 못한채 보스턴으로 이적하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2년간 10승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올려 그저그런 선수로만 알려지고 있었다.



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주역이기도 했던 Babe Ruth를 포함한 여러 선수가 1920년 양키스로 팔려나가면서 Hoyt 역시 이듬해 양키스로 이적하였고, 자신의 세번째 팀에서 1921년 시즌을 맞이하게 된다. 보스턴에서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던 Hoyt는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첫해 풀타임 선발자리를 꽤차면서, Carl Mays, Bob Shawkey등 당대 리그 최고의 투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양키스 생활 첫 시즌 19승을 올리는 활약으로 Miller Huggins 감독의 총애를 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규시즌의 활약은 서막에 불과하였다.

자신의 친정팀이였던 뉴욕 자이언츠와의 월드시리즈에서 그는 2,5,8차전에 등판하여 27이닝 동안 1실점(비자책), 평균자책점 0, 2승의 대활약을 펼치며 단숨에 양키스의 에이스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이듬해에도 19승으로 팀을 2년 연속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던 Hoyt는 Herb Pennock이 새롭게 합류한 1923년 17승을 올려 양키스를 다시 정상에 올려놓았고, 팀창단 이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Bob Shawkey가 나이가 들면서 하향세를 그리자, Hoyt는 좌완 Pennock과 함께 리그 최고의 좌-우 원투펀치를 구성, 공격에서 괴력을 발휘한 Babe Ruth와 함께 양키스의 전설을 천천히 만들어 갔다. 계속해서 두자리 승수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구가한 Hoyt는 1927년 22승, ERA 2.63으로 탈삼진을 제외한 부문에서 리그 1위를 차지하였고, 팀 역시 전설적인 Murderer's Raw가 최고조에  이르며 두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이듬해인 1928년에도 23승으로 에이스 역할을 충실히 완수하였고, 그해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 1,4차전에 등판하여 2실점의 특급피칭으로 양키스의 세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이자, Hoyt 개인에게는 월드시리즈 6승째를 올리는 큰 수확을 올리게 된다.

1929년을 마지막으로 9년간의 양키스 선수생활을 끝냈지만, 이 기간동안 157승을 올리며 뉴욕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큰 경기에서 진가를 발휘하였기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넘보는 여러 팀으로부터 구애를 받으며 필라델피아 A's, 디트로이트, 피츠버그등에서 30세를 넘긴 나이에도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1934년 15승을 올리는 깜짝 활약을 펼치기도 하였다. 1938년 자신의 고향인 브루클린의 다저스를 끝으로 은퇴한 Hoyt는 통산 237승을 올렸고, 이후 야구해설가로 활동하다가 1969년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헌액되었다.




Name
Memo      


Password


회원가입 없이 댓글은 작성 가능합니다.
(펌글)Tommy John과 Tommy John surgery [1]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