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4 22:45:58, Hit : 72,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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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타준족의 대명사, Bobby Bonds




"그는 리드오프의 역할을 재정립한 위대한 선수였다."

Barry Bonds의 아버지인 Bobby Bonds에 대한 야구인들의 평가다.
Bobby Bonds는 호타준족의 대명사였으며, 특히 장타력과는 반비례할 것만 같은 1번타자의 개념을 변화시키며 현대야구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Bobby의 누이는 1964년 동경올림픽때 미국대표팀의 단거리 육상선수로 출전하기도 하였는데, 아마도 스피드만큼은 그의 집안 내력이 아니였나 싶다. 그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고향에는 LA 에인절스가 새롭게 창단되었지만, 인연을 맺게 된 팀은 명문 자이언츠였다.

1964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프로에 입단한 Bobby는 3년간의 마이너 기간을 거쳐 1968년 6월 25일 라이벌 다저스와의 홈경기에 빅리그 데뷔전을 치루게 된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화려하고 멋진 신고식이였다.

7회말 만루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메이저리그 첫 안타를 그랜드슬램으로 장식한 것이다. 130년 역사의 메이저리그를 통해 단 2차례에 불과한 일이며 20c 현대야구에서는 유일무이한 기록이였다. 잔여기간동안 공격과 수비를 통해 잠재력을 인정받게 되고, 이듬해부터는 팀의 우익수였던 Jesus Alou를 제치고 자이언츠의 홈구장 Candlestick Park의 우측외야를 책임지게 된다.

공격력이 부족했던 Alou와 달리 Bobby는 팀의 1번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파워가 남달랐다.
중심타자같은 장타력으로 풀타임 첫해 32홈런, 90타점, 42도루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1922년 St.Louis의 Ken Williams가 개척한 이래 Willie Mays, Hank Aaron에 이어 메이저리그 역사상 4번째로 한시즌 30홈런-30도루를 기록한 것이였다.

게다가 120득점까지 하며 리드오프로서의 역할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홈런수가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삼진수 역시 가파른 곡선을 타며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려 187개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세우고 만 것이다. 거의 4타석당 1개꼴로 당한 셈이였다. 이듬해 1970년에는 2개가 더 늘어나 189개로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갈아치웠다.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삼진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적인 스타일의 스윙을 구사했기 때문에 많은 삼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리그 최고투수중 한명이였던 Tom Seaver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 Bobby는 나의 높은 강속구에 헛스윙을 종종 했다. 그가 한번은 이렇게 말을 하더군. 이봐, 내가 리그를 바꾼다면, 자네는 우리팀과 경기할 때마다 탈삼진 3개를 잃어 버리게 될거야!"

자이언츠와 경기를 하게 되다 보면 상대투수들은 Bobby의 홈런을 의식할 수도 있었겠지만, 반대로 다른 팀을 상대할때 보다 1,2개 더 많은 삼진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삼진수가 조금씩 줄긴했지만, 여전히 세자리수의 삼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최다삼진을 기록한 1970년 생애 유일한 200안타, 3할타율은 Bobby의 배트가 마구잡이식 스윙은 아니였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1970년대 초반 자이언츠는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며 저물어가고 있는 Willie Mays에서 Wilie McCovey로 그 중심이 이동하고 있었고, 구단과 팬들은 Mays, McCovey의 뒤를 이을 만한 선수로 Jim Ray Hart, Bobby Bonds를 지목하였다.

그러나, Ray Hart가 어깨수술과 후유증으로 선수생활 자체가 힘든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모든 관심은 Bobby에게 쏠렸고 그는 '제 2의 Willie Mays'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슈퍼스타다운 쇼맨쉽이 없었고, 지나치게 술을 가까이 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활달하면서 붙임성있는 인간관계와 카리스마로 팀동료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강한 승부근성은 그가 팀의 리더로서 자리잡는데 부족함이 없음을 입증하였다. 자이언츠의 스타 플레이어로 발돋음한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녔던 장남 Barry Bonds는 클럽하우스에서 Mays, McCovey, Juan Marichal 등 최고의 선수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기도 했다.

1971년 33홈런, 102타점으로 계속해서 정상을 향해 질주하던 Bobby는 한 시즌을 제외하고 거의 매년 40도루와 평균 120득점을 기록하였고, 1973년에는 한 시즌에만 11개의 리드오프 홈런으로 Lou Brock의 통산 리드오프 홈런(21개)를 경신하였다(Bobby의 통산 리드오프 홈런은 35개이며, 오늘날까지 NL최다로 남아있다. 혹시 누가 기록을 경신했나요?)

또한, 올스타전에서는 2타수 2안타 2타점(홈런 1개, 2루타 1개)으로 올스타전 MVP를 수상하게 된다.
그러나, 아쉬웠던 점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홈런 1개차로 40-40에 실패한 것이다. 39홈런-43도루를 기록하고 있는 상태에서 홈런 한 개만 추가하면 되는 상황이였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큼지막한 홈런성 타구를 2개 날렸을뿐 모두 파울이 되고 말았다. 15년 후인 1988년, Jose Canseco에게 그 영광을 양보해야 했다.

올스타전 출전과 골든글러브 수상(총 3회), 그리고 유력한 MVP 후보로까지 거론되며 Mays, McCovey가 팀을 떠난 시점에서 명실상부한 팀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한 그였지만, Bobby 역시 몇년후 자이언츠와 이별하게 된다.

당시 팀의 감독이였던 Charlie Fox는 20c 초반의 Dead Ball시대에 적합한 인물이였다. 다혈질적인 성격이였던 그는 고전적인 리드오프의 모습을 Bobby에게서 찾으려고 했고, 삼진을 지나치게 많이 당하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였다. 감독과의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Fox 감독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Bobby를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에 있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결국, 1974년 시즌을 마치고 Bobby는 양키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떠돌이 방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매시즌 많은 도루와 리그 최고의 수비범위를 자랑할 정도로 그라운드를 열심히 뛰어다녔기 때문에 무릎에 고장이 전혀 없을 수가 없었다.

1975년 양키스 팀동료들은 무릎이 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도루를 시도하는 Bobby의 모습에 존경심 반, 의아함 반으로 바라봤다. 도루성공과 더불어 잦은 도루실패를 기록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해 양키스 선수로는 처음으로 30-30을 달성하였고, 생애 최고인 20경기 연속안타 행진을 벌이기도 하였다.

양키스에서의 생활을 1년만에 잡고 그가 자리잡은 팀은 고향인 에인절스였다. 시범경기에서 다친 손가락 골절이 시즌내내 괴롭히는 바람에 타격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8월 2일부터 11일까지 9경기에서 8개의 홈런을 쏘아올리는 집중력을 발휘하였고, 이듬해 1978년에는 37홈런, 115타점, 41도루로 또 다시 30-30을 달성하였다.

1978년 화이트삭스에서 시즌을 출발하였다가 텍사스로 이적하여 생애 마지막이자 통산 5번째로 30홈런-30도루을 수립한 Bobby는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1979년 자신의 친구이자 우상이였던 Willie Mays에 이어 사상 2번째로 300홈런-300도루에 성공하며 선수생활을 서서히 정리하게 된다.
그리고, 1981년 컵스를 끝으로 14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무리 하였다(통산 332홈런, 461도루).

이후 클리블랜드에서 코치생활을 시작하였고, 1993년에는 친정팀 자이언츠의 코치로 부임하면서 FA로 영입한 아들 Barry와 4년동안 함께 보내게 된다. 피츠버그 시절 2차례의 30-30을 달성한 바 있는 Barry는 자이언츠에서 40-40 한차례를 포함하여 총 3차례의 30-30을 기록, 통산 5번의 30-30을 달성하였는데, 부상위험에 대한 고려인지 아니며, 아버지의 기록을 넘어서지 않겠다는 의도였는지 97년 이후 더 이상의 30홈런-30도루를 시도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이 이 부문 메이저리그 역대 1위자리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전세계 야구역사상 가장 화려한 부자선수가 아니였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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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아메리칸 리그 MVP, Boog Po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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