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5 14:26:29, Hit : 73, Vote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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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비운의 투수 Don Wilson



<사진출처 : astros/mlb.com>


투고타저의 시대인 1960년대를 대표한 메이저리그 투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Sandy Koufax, Bob Gibson 등이 그 대상에 오를 것이다. 물론, 58이닝 연속 무실점의 Don Drysdale과 마지막 30승 투수인 Denny McLain도 투구타저의 시기에 손꼽히던 투수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이미 최정점을 지나 서서히 지고 있는 태양이였다면 휴스턴의 우완 강속구 투수 Don Wilson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꽃이 만개하기 직전의  새롭게 부상하는 투수였다. 100mph에 이르는 강속구와 슬라이더, 커브를 가진 것만으로도 그가 앞으로 리그를 지배할 투수가 될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고, 실제로 2차례의 노히트경기 등을 통해 대투수의 대열에 한발짝 한발짝 다가서게 된다.

창단 5년째로 접어든 신생팀 휴스턴에서 1966년 1경기만을 등판한 그는 이듬해부터 팀의 선발로테이션에 본격 합류하게 되는데, 시즌 개막 2달여가 지난 6월 18일 브레이브스와의 홈경기(vs Phil Niekro)에서 노히트경기를 달성하였다. 게다가 이 경기에서 당대 최고의 타자인 Hank Aaron을 자신의 노히트 경기 마지막 제물로 삼아 15탈삼진을 기록하였다.

6년 연속 4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승률을 기록한 팀에서 만족스러운 승수(10승 9패)를 쌓기란 다소 힘에 부치는 것이였겠지만, 팀내 최다승을 기록한 Mike Cuellar를 제치고 팀내 최고의 방어율(2.79)을 기록한 점은 높이 살 만한 것이었다.

투고타저가 절정에 달했던 1968년 방어율과 승수에서 전년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하락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휴스턴의 역사를 새로 쓴 투구로 한해를 마감하였다. 1968년 7월 14일  Wilson은 이해 리그 타격왕 Pete Rose가 버티고 있는 신시내티와의 원정경기에서 9이닝동안 18개의 탈삼진(이 경기에서 9회말 Johnny Bench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기 전까지 8타자 연속탈삼진)을 잡아냄으로써 Bob Feller, Sandy Koufax와 함께 이부문 메이저리그 타이기록을 수립하게 되며, 이것은 오늘날까지 휴스턴의 팀기록으로 남게 된다.

이 경기 이후 9월에도 신시내티를 홈으로 불러들여 16탈삼진을 기록하며 유난히 신시내티 강한 면모를 보인 그는 메이저리그 첫승과 통산 100승도 역시 신시내티를 상대로 달성한 재미있는 기록을 만들기도 하다. (참고 : Wilson은 통산 23차례의 한경기 +10탈삼진 기록했으며 휴스턴의 역대 1위는 53차례의 Nolan Ryan, 2위는 39차례의 J.R Richard, 그리고 Wilson과 1980년대 최고의 스플리터를 자랑한 Mike Scott이 동률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불같은 강속구를 뿌리는 투수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제구력 불안이라는 명제는 Wilson에게도 예외는 아니였다. 볼넷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였지만, 많은 수의 폭투를 남발했고 제구가 잘 되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구분이 명확했다.

꾸준하지 못한 투구내용때문에 그의 가능성과 실력을 평가절하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단 제구가 잘 되는 날에 뿌리는 Wilson의 위력적인 공은 가히 언터처블이었다. 1969년 5월 1일 유난히 강했던 신시내티를 상대로 6개의 볼넷을 허용하긴 했지만, 13개의 탈삼진을 곁들이며 2년만에 다시 노히트 경기를 기록하게 된다.
당시 팀은 8연패, 원정 13연패의 늪에 빠져있는 상태였고, 게다가 전날 경기(4/30)에서 신시내티의 강속구 투수 Jim Maloney에게 노히트경기를 허용한 상태였다.

감독과의 불화가 있는 가운데에도 풀타임 선발투수가 된 이후 매시즌 두자리 승수를 기록하였고, 1974년 9월 4일에 신시내티를 상대로 8회까지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다가(하지만, 이 경기에서는 볼넷 2개와 내야수 에러로 2실점을 허용하여 1 :2 로 팀이 지고 있는 상황이였다)9회에 대타로 교체되는 바람에 3번째 노히트 경기달성은 실패하게 된다.

Larry Dierker에 이어 휴스턴 역사상 2번째로 통산 100승 기록하며 그의 메이저리그 인생은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해서 쓰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꽃망울을 제대로 피우지도 못한 상황에서 Wilson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1975년 1월 5일 자신의 집차고에서 숨진채로 발견된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29세였다.
엔진에 시동이 걸린채 그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조수석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다. 차의 문이 일부 열려져 있긴 했으나 밀페된 차고에는 독성가스로 가득 차 있었고, 연료게이지상에  연료는 텅텅 비어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차고 바로 위층에 자리잡고 있는 방에서 자고 있던 5살난 아들도 숨졌으며, 그나마 아내와 딸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 지었지만, 아직도 많은 의문점을 갖고 있는 상태이다.

Wilson과 친했던 동료들은 그가 어느때보다 새로운 시즌에 대한 강한 열의를 보여왔다고 얘기했으며 가정불화 등 정서적으로 큰 충격을 받을 만한 일도 없었다고 진술을 하였다.

결론지어 여러 가지 정황으로 살펴보건데 그와 교우관계를 갖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가 자살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였다.

이해 팀내 영구결번(#40)되긴 했지만, 정상궤도에 본격적으로 오르기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인생 자체를 마감했기 때문에 그 아쉬움은 컸고, 6년뒤 J.R Richard 라는 또 한명의 위대한 투수를 잃어야만 했던 휴스턴 팬들에게는 불행한 사건으로 얼룩진 팀의 역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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