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5 15:17:12, Hit : 65, Vote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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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k Sauer, 31세에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다.




24살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였지만, Hank Sauer라는 이름이 팬들에게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30세가 넘어서면서 부터이다. 1941년에 처음 모습을 나타낸 Sauer는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고, 2차세계대전 기간동안에는 군복무까지 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잡지못했다.

그러다가 1947년 독립리그에서 50개의 홈런을 때려내자 신시내티는 그제서야 그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팀의 좌익수 자리를 맡겼다. 그때 Sauer의 나이 31세때였다. 팀의 중심타자로 발돋음하면서 풀타임 첫해 35홈런, 97타점을 기록하였는데, 35홈런은 신시내티 팀창단 이후 개인 한시즌 최다홈런(1953년 Ted Kluszewski가 40개로 경신)이기도 했다.

30대에 절정의 실력을 보내며 은퇴를 생각하는 선수들과 달리 30대에 신인의 자세로 경기에 임했던 그는 2년차 징크스 때문이였는지 이듬해 1949년 시즌 초반 42경기에서 고작 4개의 홈런에 그치는 부진함을 보였다. 그러자, 참을성 없는 신시내티 구단은 Sauer와 1명의 선수를 얹혀주는 대신 컵스로부터 Peanuts Lowrey라는 외야수를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신시내티와 컵스의 명암이 교차하는 트레이드였다. Sauer는 컵스로 옮기자 마자 7월 한달간 11개의 홈런을 쏘아올리며 컵스에서 27개의 아치를 그렸던 반면, Lowrey는 실망스러운 성적만을 기록한채 1년만에 카디널스로 짐을 옮기는 신세가 되었다. 이 트레이드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악의 트레이드에 손꼽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사건이였다.

컵스로 오면서 Sauer는 팀의 간판타자로 활약하던 중견수 Andy Pafko와 함께 컵스의 타선을 이끌며 매시즌 평균 30개가 넘는 홈런을 때려내며 리그를 대표하는 슬러거로 당당히 우뚝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2년에는 NL 7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한 피츠버그의 Ralph Kiner와 함께 36개의 홈런으로 공동 홈런왕에 등극하였을 뿐만 아니라 121타점으로 리그 타점왕까지 차지하면서 Phil Cavarretta에 이어 7년만에 컵스 선수로 MVP를 수상하였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는 'The Mayor of Wrigley Field' 라는 애칭이 따라다니며 1951년 다저스로 트레이드 된 Pafko의 자리까지 채워 Ernie Banks의 등장전까지 컵스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Sauer는 MVP 등극 외에도 흥미로운 기록을 또 하나 만들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한 투수에게서 한경기 3개의 홈런을 2차례나 기록한 것이였다.

1950년 8월 28일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그는 Robin Roberts와 함께 1950년대 필리스의 마운드를 이끌었던 Curt Simmons로부터 3개의 홈런을, 그리고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다시 복귀한 Simmons로부터 1952년 6월 11일에 다시 3개의 공을 Wrigley Field의 펜스밖으로 날려버렸다.

이밖에도 Sauer는 당시 리그에서 가장 주가를 드높이고 있던 시기였던지라 영화에도 출연, Grover Alexander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인'The Winning team'에 Ronald Reagan(前 미국대통령)과 함께 열연을 펼쳤다.

1953년 손가락 골절로 5년 연속 이어오던 한시즌 +30홈런에 실패한 Sauer는 이듬해 1954년 컵스 유니폼을 새롭게 입은 Ralph Kiner, 23세의 신인 Ernie Banks와 함께 팀타선을 이끌며 커리어 최다인 41홈런, 102타점의 위력적인 공격력을 보여주었지만, 부진한 팀성적으로 MVP수상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였다.

아쉽게도1955년부터는 파워가 급감, 1956년 카디널스로 트레이드 된후 40세가 되던 1957년 NY 자이언츠로 다시 트레이드, 26홈런으로 팀내에서 Willie Mays에 이어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하였다.

자이언츠가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옮긴 뒤에도 계속해서 팀에 남아 이 지역에 정착하며 은퇴한 후에도 자이언츠의 스카우터와 타격코치로 재직하며 30년 가까이 자이언츠 팀을 위해 봉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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