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5 16:15:02, Hit : 125, Vote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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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내셔널리그 명포수 Gabby Hartnett




1930년대 NL 최고의 포수였던 Gabby Hartnett은 14명의 형제중 맏이로 태어났다. 어릴적 사고로 인해 팔을 심하게 다쳤지만,  그의 부모님은 그를 극진히 보살펴 최고의 어깨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프로선수 출신이였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야구장을 몸소 만들어 그가 좋은 환경에서도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했으며, 어머니는 사고로 인해 근력이 없던 그의 팔힘을 강화시키기 위해 항상 모래자루와 돌자루를 팔에 들고 다니도록 하였다.                              

부모님의 정성어린 노력에 의하여 그는 최고의 포수가 될 수 있었고, 학창시절부터 기량을 인정받아 1922년 컵스에 입단하며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23년까지는 플래툰 시스템으로 포수와 1루를 겸하였지만, 24년부터 팀의 주전포수로 낙점되어 그해 타율.299와 16홈런으로 팀의 기대주로 성정하게 되었다. 지능적인 투수리드로 1900년 초반 이후 침체를 걸었던 팀을 다시 리그 상위권으로 올리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고, Lon Warneke와 같은 20승 투수를 만들어냈다.

수비에서도 강한 어깨와 명석한 판단능력으로 4차례의 리그최다 Putout5차례의 최다 Assist를 기록하며 1920년대 후반부터 A's의 Mickey Cochrane, 양키스의 Bill Dickey와 함께 메이저리그 최고의 포수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1928년 첫 3할의 타율을 기록하고 상승세를 이거가던 그는 1929년 스프링캠프때부터 갑작스럽게 팔에 통증이 생기며 경기 대부분을 결장, 슬럼프를 겪게 된다.

그런데, 그의 통증은 좀 불가사의하게 해결되었다. 통증으로 고생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자 그는 정신적인 지주인 어머니를 찾아가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가 말씀하기를 당시 임신중이었던 Hartnett의 부인이 자식을 출산하면 그 순간부터 통증이 말끔히 사라질 것이라고 얘기를 해주었다.

1929년 12월 Hartnett의 부인인 Martha Hartnett이 사내아이를 출산하자 그의 팔에 있던 통증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말끔히 없어졌다...불가사의 같은 일이지만, 당시 정말로 그랬다고 한다.....아마도 정신적인 원인 때문에 팔에 무리가 온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득남과 함께 그는 30년 생애 최고의 성적인 타율.33937홈런, 122타점을 올렸고, 이후 5년간 계속해서 평균 20개에 가까운 홈런과 80타점으로 팀의 공격력을 이끌며 1900년대를 끝으로 마감되었던  컵스의 전성기를 다시 주도하였다.

또한 1934년 올스타전에서는 NL의 선발포수로 출전하여 Giants의 Carl Hubbell과 호흡을 맞추면서 1,2번타자를 볼넷과 안타로 진루시킨 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Hubbell에게 자신의 주무기였던 스크류볼을 과감하게 던질 것을 주문하여 Ruth를 포함한 5타자 타자 연속 탈삼진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1935년에는 생애최고 타율.344와 13홈런으로 카디널스의 괴짜투수 Dizzy Dean을 제치고MVP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고, 팀은 정규시즌 100승을 올리며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하였다. 비록 팀은 디트로이트에 패했지만, 그는 4차전에서 1개의 홈런을 포함 3할이 넘는 타율로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1937년을 마지막으로 포수마스크를 쓰고 8시즌 연속 +100경기에 출전을 마감,
1938년부터는 출전경기수가 줄어들면서 공격력이 하향세를 그렸지만, 시즌 중반부터는 Charlie Grimm를 이어 팀의 지휘봉을 맡았고, 피츠버그와의 치열한 페넌트 레이스에서는 9월 28일 열린 홈경기에서 해가 저문 9회 극적인 굿바이 홈런(Homer in the gloaming(황혼속의 홈런))을 쳐 피츠버그를 2경기차로 제치고 팀을 3년만에 다시 월드시리즈에 진출시켰다.

1940년부터는 경기 출전횟수를 대폭 줄여 감독에 전념하였으나 팀성적이 부진하여 해고되어고 1941 Giants로 이적한 후 그곳에서 1년간의 생활을 끝으로 40살의 나이에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감하였다. 20년간의 선수생활동안 포수로서 1793경기 출장하여 200개가 넘는 홈런과 +1,000타점으로 Johnny Bench가 등장하기 전까지 최고의 포수로 인정받았던  Hartnett는 6년 연속 올스타에도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1955년 77.69%의 득표율로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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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인들의 귀감 Rusty Sta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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