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5 16:27:57, Hit : 88,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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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인들의 귀감 Rusty Staub




텍사스를 제외한 4팀,즉 휴스턴, 몬트리올, 메츠, 디트로이트에서 Rusty Staub는 각팀에서 총 +500경기 출장, +500안타를 기록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그의 성적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찾기 힘든 기록중 하나이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만큼의 위력적인 모습이나 화려한 것을 남기진 못했지만, 그는 1985년 메츠에서 은퇴할때까지 당대의 가장 인기있는 선수 중 한명이였으며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며 꾸준한 자기관리로 타의 모범이 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선천적으로 왼쪽발의 아킬레스건 쪽에 기형을 있었던 Staub는 어린시절 특수 지지대를 부착할 정도로 보행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생각하면 될듯)..이런 결점을 갖고 있던 그가 야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노력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였고, 고향인 LA지역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고교야구선수로 발돋음하여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기량을 보고 접근한 야구관계자중에는 Ted Willams도 있었다. 1960년 선수생활을 접고 보스턴 단장과 함께 고향인 캘리포니아 지역을 돌며 유망주를 발굴하고 있던 Willams는 17세의 소년 Staub의 타격을 보고 "내가 본 고등학교 선수중 가장 뛰어난 타격을 갖고 있다"라고 까지 칭찬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Staub의 보스턴 입단은 성사되지 못했고, 메이저리그 참여 의사를 나타낸 신생팀 휴스턴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1963년 19세의 어린 나이에 팀의 주전 1루수로 기용된 그는 신생팀이 겪게되는 여러가지 한계 등 팀성적과 연관되어 초기에는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공수에서 성장세를 보이며 올스타전까지 참가하게 된다.

1루수에서 우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이후 성적은 더욱 향상되었고, 1967년에는 타율.333의 성적등으로 팀의 주포인 Jimmy Wynn, 발빠른 Joe Morgan과 함께 팀공격을 이끌었다. 홈런 타자라기보다는 라인드라이브형 타자에 가까웠던 Staub는 왼발의 선천적인 문제로 당시 리그에서 가장 느린 선수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기동력등에서 약점을 보였으나, 도루를 간혹 감행하여 한시즌 12개를 성공시키기도 하였고 수비에서도 꽤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속팀을 대표하는 간판선수대열에 합류한 그는 새로운 구장 (Astrodome)과 새로운 팀명(Colts에서 오늘날의 Astros)으로 태어난 휴스턴 유니폼을 벗게 된다.
1969년부터 몬트리올이 메이저리그에 참여하면서 Staub는 몬트리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의 트레이드에는 약간의 잡음이 있었다. 피츠버그에서 확장드래프트를 통해 몬트리올로 확정된 Donn Clendenon 등이 Staub의 트레이드 맞상대였는데, Clendenon이 휴스턴으로의 트레이드를 거부한 것이다. Staub의 휴스턴 잔류가능성까지 제기되었지만 이 일에 커미셔너까지 중재에 나섰고 결국 Clendenon은 몬트리올에 잔류하게 되고, 트레이드 상대가 Jack Billingham 등의 선수로 바뀌게 되면서 Staub의 몬트리올행은 확정되었다.

Staub의 트레이드를 단행한 휴스턴 구단은 그가 좋은 타격을 보이긴 했지만, 선천적인 결점(발)등으로 선수생활을 오래하지 못할것이라고 전망했고, 팀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장타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를 처리하게 된다.

그럼 휴스턴의 판단은 옳았을까?
새로운 팀에서의 첫 출발이자 몬트리올이 메이저리그 첫 시즌을 시작한 1969년 Staub는 29홈런, 3할타율로 괜찮은 모습을 보이더니 이듬해에는 한경기 4개의 볼넷을 얻어낼 정도로 투수들에게 두려운 존재로 부각되며 30홈런, 94타점을 기록, 휴스턴 관계자들로 하여금 책상을 치게 만들었다.

휴스턴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은 트레이드가 된 것이다. 단순히 선수의 성적차원을 떠나 Staub라는 스타를 잃은 셈이였다. 몬트리올에서의 그의 존재는 가히 독보적이였다고 한다. 몬트리올의 첫번째 프랜차이즈 스타나 다름없었고, 그 역시 Gene Mauch 등 코칭스텝과 선수들과 가족같은 친분관계를 맺으며 특별한 애착을 갖고 선수생활을 하였다.

몬트리올의 캐나다 팬들은 그에게 'Le Grand Oragne(커다란 오렌지?)'라는 애칭을 지어주었고, 지역기자들 사이에서도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리더로서 팀을 이끌어 나갔다. 22년간의 선수생활중 몬트리올에서 활약한 것이 3년반 정도에 불과하면서도 몬트리올 엑스포츠 최초로 영구결번(#10)된것만 보더라도 그의 입지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수 있다.

몬트리올을 진정으로 사랑한 그는 1972년 시즌 개막 직전 메츠로 갑작스럽게 트레이드 되었다. Staub는 이 당시 적지않은 실망과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승에 목마른 메츠가 그를 절실히 원하고 있었고 몬트리올은 몸값이 높은 그를 잡을 여력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어쨌든 그다지 길지 않은 몬트리올 생활을 접고 대도시 뉴욕에 입성한 Staub는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신의 야구철학대로 좋은 출발을 보였다. 그러다가, 올스타 브레이크전 상대투수의 공을 오른손에 맞아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메츠가 4년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1973년에는 신시내티와의 챔피언쉽 시리즈 4차전 연장 11회초때 깊은 우중간 타구를 잡다가 외야펜스에 그대로 부딪혀 어깨를 다쳤지만, 진통제를 맞아가며 출전을 감행,
A's와의 월드시리즈에서는 팀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4차전 홈경기에서의 4타수 4안타 5타점(3점홈런)의 맹활약으로 4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했다.

부상중에도 경기에 출전하는 의지와 성실한 플레이 등으로 뉴욕에서도 그는 홈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된다. 메츠에서의 생활도 그렇게 오래가진 못했다.

1975년 커리어 최초로 한시즌 +100타점을 기록한 이후 디트로이트가 그를 데려가 지명타자로 적극 활용하였다. 3년반 동안의 디트로이트 생활동안 그의 성적은 만족할 만했다. 2년 연속 +100타점(최고 121)으로 팀의 중심타자로서 확실한 역할을 했고, 특히 중요한 순간마다 한방을 터뜨리는 타격은 홈팬들의 환호를 받기에 충분했다.

잠시동안 몬트리올과 텍사스를 거친 이후 1981년 FA자격을 얻어 메츠로 다시 복귀한 Staub는 자신의 주포지션인 우익수로 출전하다가 좌익수로 수비이동을 했지만, Shea구장에 잘 적응을 하지 못했고 오른쪽 상체의 신경조직 이상으로 오른손에 마비증세까지 나타나면서 30대 중반의 나이와 맞물려 대타전문으로 돌아서게 된다.

대타라는 직책이 많은 경기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고 생각할수도 있으나 그는 대타로 나와서 25타점을 올렸고, 1983년에는 대타로서 8타석 연속 안타를 기록하여 이 부문 타이를 이루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Darryl Strawberry 등 젊은 선수들의 정신적 버팀목으로서 보이지 않게 팀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1963년 19세의 나이로 데뷔하여 1985년 41세를 끝으로 은퇴하기까지 10대시절과 40대시절에 각각 홈런을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Ty Cobb과 Staub가 유일하다고 한다.

선수시절 요리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은퇴이후에는 맨하탄 근방에 대형 음식점을 차렸고, 와인애호가로서 자신의 별명인 'Le Grand Orange'라는 상품명의 와인을 직접 내놓기도 하였다.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서는 항상 최선을 다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던 그는 1985년 우연한 기회에 경찰,소방관 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읽고 이들을 위해 재단을 설립하여 의장직을  맡고 있으며 2001년 9.11테러때에도 순직한 경찰관, 소방관들의 유족들을 위해 수많은 자선행사와 기금활동을 벌이며 뉴욕시민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얻었다. 오늘날 자신의 명성과 부에만 집착하는 일부 운동선수들에게는 자신들을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모범적인 선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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