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5 16:41:20, Hit : 71,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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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mmy Lasorda "내 심장에는 파란피가 흐른다"




국내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가장 친숙한 감독은 누구일까?

박찬호, 추신수, 류현진, 강정호 등 많은 코리안 메이저리그들이 진출하면서 많은 메이저리그 감독들이 국내팬들에게 이름을 알렸지만, 그중 Tommy Lasorda를 빼놓는다면 섭섭할지 모르겠다.

박찬호가 풀타임 빅리거로 자리잡을 시점에 공교롭게도 건강문제로 감독직에서 물러나 그가 추구해온 야구스타일 등을 제대로 알긴 어렵지만,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팀 중 하나인 다저스에서 20년간 자리를 지켜왔다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인물이 아니였음은 분명하다. 보잘 것 없는 메이저리그 선수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 야구계에 영향력을 갖고 있던 인물 중 한명이였다.

이태리계 출신으로 어린시절 그의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한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가정형편이라 야구장비를 변변히 갖추지도 못했고, 야구를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조차 없었다. 10대 중반에 처음 야구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에도 야구화나 글러브가 없어서 경기에 참가하지 못한 적도 비일비재하였다.

 하지만, 고진감래라는 격언도 있듯이 이러한 환경은 그를 정신적으로 더욱 강하게 만들어 놓았다. 17세때 프로에 데뷔한 뒤, 45년부터 2년간 군복무를 마친 Lasorda는 필리스의 마이너팀에 투수로 입단하면서 여러 구단의 관심을 사기 시작했다. 특히, 1948년 6월 1일 경기에서는 15이닝동안 25개의 탈삼진을 기록했고,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과의 경기에서는 유달리 좋은 피칭내용을 선보여 다저스 구단은 필리스측에 현금을 지불하고 Lasorda를 영입하게 된다. Lasorda의 50년 다저스 인생이 막을 올린 것이다.

좌투수로서 타자를 압도할 만한 구질을 갖고 있지 못했고(커브는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함), 제구력도 매시즌 BB/SO의 비율이1:1일 정도로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배짱과 승부욕은 최고 무기였다. 아니, 지나칠 정도였다고 하는 것이 적당할 듯 싶다.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시절에는 수비에러를 범한 팀동료를 경기가 끝난후 클럽하우스에서  두들겨 패기도 했으며, 상대타자의 머리를 향해 빈볼도 연속적으로 던질 정도였다. A's 시절에는 양키스의 '쌈닭'
Billy Martin과도 경기도중 난투극을 벌인 적도 있었다.

이러한 태도가 좋다고 말하기엔 그렇지만, 그의 성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마이너리그에서 투수 부문 top-5에 이름을 올렸으니 이쯤되면 최고유망주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마이너리그에서 실력도 검증받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다저스의 홈구장  Ebbets Field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것이였다.
                                    
그런데, 당시 다저스의 선발진에 그가 들어갈 자리는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Don Newcombe, Johnny Podres, Carl Erskine 등의 쟁쟁한 투수들이 있었고, 1955년에는 신시내티 주립대학 출신의 신예 Sandy Koufax가 입단을 한 상황이라 그의 선발진입은 첩첩산중이였다.

우여곡절끝에 1954년 불펜투수로서 몇경기에 등판하게 되고, 1955년 5월 5일 카디널스와의 홈경기에 마침내 선발등판하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최악이였다.

1회초부터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더니 다음 타자에게는 폭투를 던지고 말았다. 그 다음 타자는 당대 최고의 타자인 Stan Musial이였다. 배짱좋기로 소문난 Lasorda도  만년필로 안타를 만들 수 있다던 Musial앞에서는 주눅이 들었던지 어처구니없게 2개의 폭투를 던졌다. 한 이닝에 3개의 폭투가 나온 것은 흔한 일이 아니였다.

연속된 폭투로 주자들은 거저먹기로 한 베이스씩 진루하게 되고, 3번째 폭투때에는 3루에 있던 첫 타자주자가 홈으로 슬라이딩하면서 커버하기 위해 달려온 Lasorda의 다리를 스파이크로 찍어 버렸다. 다리의 통증을 참아내며 Musial을 삼진으로 처리하며 운좋게 1점으로 막아내긴 했지만  Walter Alston 감독은
그를 바로 강판시켜 버렸다.

내 심장에는 파란피가 흐른다(My heart bleeds Dodger blue) "라며 다저스 소속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 Lasorda가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선발등판한 유일한 경기는 고작 1이닝으로 싱겁게 끝났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였다.  메이저리그 잔류자체가 위태위태한 상황이였다.
14,000$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Koufax 때문에 Lasorda는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메이저리그 규정에 의하면 4천$ 이상의 계약을 맺은 신인은 계약 첫 1년간은 의무적으로 빅리그 로스터에 편성되어야만 했다.

결국, 다저스 산하 몬트리올로 내려간 그는 이듬해 A's 유니폼으로 갈아입게 되고, 이곳에서도 주로 마이너에서 활약하며 다시는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마이너리그 통산성적은 98승 48패인데 비하여 메이저리그 성적은 3패에 불과했다.

다저스에서 제대로 활약도 못해봤지만, 그래도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시작된 Alston 감독과의 만남과 다저스 구단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각인시킨 것은 훗날 자신의 야구인생에 많은
보탬이 된 의미있는 일들이였다. A's에서도  줄곧 마이너에서 시간을 보낸 Lasorda는 고심끝에 은퇴를 결심하게 되고 30대 초반의 나이에 쿠바, 도미니카 지역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친정팀 다저스의 스카우트직을 제의받고 다저스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나갔다.

1965년부터는 다저스의 마이너리그 감독 지휘봉을 잡으면서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본격적으로 발휘, 팀을 강팀으로 변모시켰다. 싱글A팀부터 한단계 한단계 밟고 올라가면서 트리플 A의 지휘봉까지 맡게 되고 마이너리그 감독생활 8년동안 5차례나 시즌우승을 거머쥐었다.

또한, 이 기간동안 Steve Garvey, Ron Cey, Bill Russell 등 1970년대 다저스 전력의 핵심선수들을 조련하여 다저스 부흥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1973년 3루코치로서 20여년만에 다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자  매스컴에서는 마이너리그에서 지도력을 이미 검증받은 Lasorda의 시대가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76년 9월 30일, 65세의 Alston 감독으로부터 지휘봉을 건네받았다. 1950년대 다저스 신인왕 출신인 Jim Gilliam 등을 비롯하여 다른 인물들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다저스는 마이너리그 팀에서 수완을 발휘한 Lasorda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전임 Alston 감독이 과묵한 성격으로 팀을 관리했다면, Lasorda는 다혈질적인 면과 온건한 면을 동시에 갖춘 스타일이였다.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자신이 직접 양성해온 선수들이였기에 선수들을 장악하는 것도 원만하게 이루어져 1977년부터 2년 연속 팀을 월드시리즈까지 진출시켜놓았다. 그리고, 1981,1988년에는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성적에 힘입어 감독상 등 각종 상을 수상하여 자신의 주가를 한층 드높였다. 1996년 시즌도중  건강이상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기까지 20여년간 8차례의 지구우승 명장대열에 합류하였고, 1997년에는 다저스 팀내 영구결번(#2)되었다. 그리고, 1997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면서 Connie Mack, John McGraw, Walter Alston 등과 함께 한팀을 20년이상 지휘한 감독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감독시절부터 세계 각지에서 강의요청을 받을 정도로 달변이였던 그는 도미니카 등의 중남미 일부국가로부터는 대통령 훈장까지 받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를 종종 방문하였다. 제자였던 Bill Russell에게 지휘봉을 넘긴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때에는 미국대표팀에 금메달을 안기며 노익장을 과시하였다.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9명의 신인상 수상자를 배출할 만큼 선수들의 발굴과 조련에 일가견이 있었고, 무릎부상으로 절뚝거리던 Kirk Gibson을 월드시리즈에서 대타로 내세울 정도로 특유의 승부사 기질도 갖고 있었다. 물론, 그의 지휘스타일에 반감을 갖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Felipe Alou 전 자이언츠 감독은 예전에 다저스 감독직을 제의받을 때마다 Lasorda가 다저스 프런트에 계속에서 남아있는 한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여전히 Lasorda가 없는 다저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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