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5 21:01:05, Hit : 160, Vote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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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격형포수의 교과서 Roy Campanella




양키스, 자이언츠와의 뉴욕 삼국시대를 마감하고 LA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던 다저스 구단에 1958년 1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라왔다. 팀의 간판선수이자 클럽하우스의 리더였던 포수 Roy Campanella가 집근처에서 자동차 운전중 빙판길에 차가 미끄러지면서 큰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날라 온 것이다(참고로 다저스는 이해 3월까지 Duke Snider, Johhny Podres, Don Zimmer, Jim Gilliam 등 팀의 주축선수 5명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공중전화 부스와 충돌하면서 그는 선수생활은 물론이고 생명까지 위협받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어 왼쪽 폐함몰과 함께 척추손상에 따른 하반신 마비까지 오면서 다시는 두다리로 걷지 못하는 불행을 맞이하였다.

몇개월간의 피땀어린 재활노력 덕분에 사고직후 제대로 쓰지 못한 양팔의 마비증세를 막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물론, 팔을 움직이는데 자유스럽지 못했고, 손가락 사용도 상당히 불편을 격었다. 하지만, 사고직후 목 아랫부분은 완전히 마비가 된 상태였기 때문에 팔을 조금이라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Campanella는 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의사를 밝혔다)..

10년동안 3차례의 내셔널리그 MVP등 리그 최고의 포수로 자리매김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그의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탈리아계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Campanella는 넉넉지 못한 집안 환경으로 벽돌공, 우유배달 등을 하면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가 야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2세때 고향인 필라델피아의 세미프로팀에서 타자로 활약하면서 부터였다.

Campanella의 활약이 이웃 도시까지 알려지기 시작하자 15세때 니그로리그의 Baltimore Elite Giants가 그를 영입했고, 1년간 학업과 병행을 하다가 야구쪽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10년 가까이 니그로리그에서 포수로 활약하면서 어린 Campanella는 니그로리그의 전설적인 강타자이자 명포수인 Josh Gibson을 제치고 1940년대 초반 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게 되고, 당시 리그의 강팀이었던 Homestead Grays와 Newark Eagles을 누르고 팀을 우승까지 이끌었다.

구단주와의 연봉문제로 잠시 멕시칸 리그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지만, 다시 친정팀으로 복귀하여 1만$에 가까운 리그 최고연봉을 받으며 최고선수 대접을 받았다.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젊고 유능한 선수를 메이저리그에서 보지 못한다는 것은 팬들에게나 야구팀에게나 아까운 일이었다. Campanella가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에게 각인된 것은 1945년 메이저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팀과의 경기에서 뛰어난 투수리드와 공격력을 발휘하면서 부터이다.

이 경기를 지켜본 다저스의 사장 겸 단장 Branch Rickey는 그의 재능에 관심을 가졌고, Campanella는 Jackie Robinson에 이어 흑인선수로는 2번째로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1947년까지 다저스의 트리플A팀인 몬트리올에 이어 어메리칸 어소시에이션(AA)의 St.Paul Saints에서 감독생활까지 하면서 25세의 Campanella는 흑인최초로 마이너리그 감독까지 역임>하게 된다.

Jackie Robinson이 다저스의 홈구장 Ebbets Field에서 모습을 드러낸 지 1년이 지난 1948년 4월 라이벌팀 뉴욕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Campanella는 포수마스크를 쓰고 마침내 메이저리그에 데뷔를 하여 첫시즌을 별탈없이 소화하였다.

1949년부터 Campanella는 니그로리그 최고의 포수다운 실력을 서서히 발휘하기 시작하며 1956년까지8년 연속 올스타의 첫 단추를 끼웠고, 홈런과 타점 등에서도 놀라운 상승세를 보였다. 그가 팀에 가세하면서 포수유망주였던 Gil Hodges가 1루로 수비를 전향, Campanella-Hodges-Duke Snider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만한 클린업 트리오였다.

그의 투수리드 능력은 입단동기인 Don Newcombe을 비롯하여 Carl Erskine 등 젊은 투수들의 성적으로 입증되었고, 매시즌 40%가 넘는 도루저지율에서 알 수 있듯이 총알같은 그의 주자견제 송구는 상대팀 주자들의 도루시도를 봉쇄하였다.

매시즌 +100경기 이상 홈플레이트 뒤에서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출장하면서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다녔지만, 1951년 +3할 타율과 33홈런, 108타점으로 카디널스의 Stan Musial을 제치고 생애 첫 MVP를 수상했다. 이해 8월 상대선수의 거친 태클로 팔꿈치부상을 입었고, 상대투수들의 감정섞인 견제로 몇차례 머리에 빈볼을 맞아가면서 차지한 상이였기에 더욱 가치있는 것이였다.

Campanella가 MVP를 수상한 1951년, 양키스의 Yogi Berra역시 자신의 생애 첫 MVP를 수상하면서 양대리그를 대표하는 두 포수의 라이벌시대가 막을 열었다. 두 선수 모두 이태리계였으며 Berra가 Branch Rickey로부터 세미프로 시절 별볼일 없는 선수라고 저평가를 받았던 반면 Campanella는 Rickey로부터 최고의 포수가 될 것이라고 극찬을 받은 것도 두 선수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심을 부추겼다.

통산성적이나 월드시리즈에서의 모습등에서는 Berra가 당연히 앞서는 게 사실이지만, 장타율에서는 Campanella가 다소 앞서 있어 두 선수중 누가 더 우위를 차지한다고 섣불리 평가한다는 것은 1950년대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1952년 오른손부상도 있었지만, 1953년 생애 최고의 시즌을 맞으며 공격형 포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시즌 첫 30경기에서 44타점을 올리며 이해 142타점으로 리그 타점왕을 일찍 예약했고, 홈런부문에서는  41개의 홈런 중 40개를 포수로 출장하여 기록함으로써 1996년 메츠의 Todd Hundley에 경신되기 까지 포수부문 메이저리그 한시즌  최다홈런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와 같은 눈부신 활약덕분에 리그 홈런왕을 차지한 Eddie Mathews를 크게 앞지르며 생애 2번째 MVP를 차지하였고, 2년뒤인 1955년 32홈런, 107타점으로 생애 3번째 MVP와 함께 월드시리즈 도전 4번째만에 라이벌 양키스를 누르고 우승까지 맛보는 감격을 누렸다.

3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이전과는 달리 부상 회복속도가 더뎌지기 시작했고, 56년부터 공격력에서 뚜렷한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한 Campanella는 1957년 9월 29일 브루클린의 Ebbets Field에서 마지막 홈경기를 가졌는데, 이 경기가 브루클린 다저스의 마지막 뉴욕 홈경기이자 Campanella 본인의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연고지를 옮긴 이후에도  클럽하우스의 리더로서 그의 활약이 계속해서 기대되었지만, 불행한 사고로 다시는 두발로 그라운드를 밟을 수 없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생명까지 위험했을 정도의 큰 부상이었음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나면서 피나는 재활을 통해 자신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친선경기에서 10만명에 가까운 팬들의 뜨거운 격려를 받았다.

1959년 3월 LA의 다저스 콜로세움에서 열린 다저스와 양키스의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경기 사상 역대 최다관중인 93,103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Campanella는 팬들과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의 재활역경은 자서전 [It’s Good to be Alive]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어 감동을 주었고, 1970년대에는 TV 드라마로까지 제작되기도 하였다. 비록 두발로 설 수는 없었지만, Campanella는 거동이 불편한 두팔로 손수 휠체어를 움직이며 다저스의 스프링캠프가 있는 베로비치에 매년 모습을 드러내며  다저스의 후배선수들에게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1969년 79.41%의 득표율로 흑인선수로는 Jackie Robinson에 이어 2번째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1972년 6월에는 다저스에서 영구결번(#39)의 명예까지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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