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6 10:17:54, Hit : 78, Vote : 7
 Cap_Anson.jpg (6.0 KB), Download : 0
 최초의 3천 안타 Cap Anson




Cap Anson은 1871년 National Association(NA)의 프로팀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야구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1루수와 3루수를 번갈아가며 경기에 나섰고, 1875년까지 NA에서 정상급의 타격실력을 발휘하여 주목을 받게 된다. 각 구단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그가 선택한 팀은 NL의 창립을 주도했던 William Hulber가 구단주로 있는 시카고 White Stocking(現 컵스)이 였다.

Anson은 1876년 NL탄생과 함께 이곳에서 팀의 간판선수로 자리매김하며 미국 야구에서 처음으로 200승을 수립한 스타투수 Al Spalding과 함께 White Stocking를 리그 최고의 팀으로 이끌어갔다.

시카고로 이적하면서 포지션은 완전히 1루로 고정되었고, 1879년부터는 감독직까지 역임하여 20년 가까이 팀의 상징으로서 19세기를 대표하는 메이저리그로서 명성과 인기를 누렸다. 1880년부터 82년까지는 3년 연속 팀을 리그 정상으로 올려놓으며 팀동료들로부터 Captain을 줄인 'Cap' 이라는 별명을 얻어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원래이름인 Adrian Anson 이 아닌 Cap Anson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알려지기 시작했다.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Anson은 야구에 수많은 기술을 도입하였는데, 도루Hit-and-run 작전, 투수로테이션 이용(현재의 5인 로테이션이 아닌 2,3인 로테이션이었지만, 이당시로서도 파격적인 실험이었다), 오늘날의 스프링캠프와 같은 시즌전 훈련시스템 도입, 선수들에게 보내는 작전사인과 같은 수신호의 개발과 도입, 각 포지션에 2명이상의 선수백업 시스템 구축은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이였다.

초창기 야구발전에 지대한한 공을 세운 혁신적인 인물이였던 것이다.
이밖에도 3,000안타를 수립(1897.8.3)한 것이나 총 7차례의 +100타점으로 통산 2.076타점을, 1,996득점, 그리고, 3.446안타의 성적을 남긴 것 또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가지 옥의 티가 발견되고 있다.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로서>흑인들의 메이저리그 진입을 막은 장본인이였다는 점이다. 19세기 중반 미국 남북전쟁후에도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야구선수들이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에서 뛰지 못하게 하는 특별한 규제는 없었다. 단지 선수들이 없던 것 뿐이였다. 기회와 여건만 되면 흑인들이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Anson이 있는 한 흑인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였다.
1883년 여름 Toledo라는 지역에서 이곳 프로팀과 Anson의 White Stocking이 시범경기를 갖게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상대팀에 일부 흑인선수들이 있다는 사실을 안 Anson은 흑인들과 경기를 한다는 것이 모욕적인 일이라며 경기참가 자체를 거부했고, 심지어 흑인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오는 것조차 막아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

당시 그는 야구계에서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였다. 그의 주장에 따라 흑인선수들을 영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던 일부 팀들은 시도도 하지 못한채 포기해야만 했고, 메이저리그 거의 모든 팀들은 Anson의 뜻에 따라 흑인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금지하는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어 1947년 Jackie Robinson의 등장전까지 야구장에 인종장벽을 만들어 놓았다.

흑인들에 대한 편견만 없었더라면 그는 야구사에 존경받을 인물로 기억될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1888년 팀을 사들여 한때 구단주의 지위까지 올랐던 그는 45세가 되던 1897년 감독직에서 물러나 20년 가까이 몸담았던 시카고를 떠나게 된다. 그가 떠나자마자 팀명마저 Orphans(고아)로 바뀔 정도로 Anson에 대한 선수들과 팬들의 믿음과 신뢰는 대단한 것이였다. 1898년 NY Giants를 잠시 지휘하기도 했으나, 이후 야구계를 완전히 떠났다.

1939년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헌액된 그는 1루수로서 역대 최다인 657개의 실책을 범하기도 하였다. 그가 수비를 못했다기 보다는 오늘날과 같은 수비개념이 아니였고, 글러브를 제대로 사용하는
시대가 아니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가 팀을 지휘하면서 남긴 1이닝 18득점(1883.9.6 vs 디트로이트와의 경기 7회) 역시 야구사에 영원히 남을 기록 중의 하나이다.




Name
Memo      


Password


Leo Durocher "사람이 좋으면 꼴찌를 하는 법이야"
역대 최고의 왼손투수 Lefty Grove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