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6 10:51:40, Hit : 70,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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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o Durocher "사람이 좋으면 꼴찌를 하는 법이야"




어린시절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던 Durocher는 도박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도박에 필요한 잔기술이 좋았던 것도 한 이유겠지만, 무엇보다도 배짱이 두둑해서 왜소한 체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덩치큰 사람들앞에서도 전혀 주눅드는 기색이 없었다. 성격 또한 다혈질이다보니 고등학교 시절에는 선생을 주먹으로 때려눕혀 학교에서 정학조치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가 선택한 것은 철도회사의 야구팀이였다. 이곳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바로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알아주는 유격수로 명성이 자자했던 Rabbit Maranville였다. 전형적인 수비형
유격수였던 Maranville는 자신과 비슷한 체형을 가진 Durocher에게 "체격이 작다고 절대 주눅들지 말고, 용기있게 상대와 맞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라고 조언을 해주었고, 이 한마디는 평생 Durocher의 좌우명이 되었다.

세미프로팀을 거쳐 1925년 양키스에 스카웃된 후 1928년부터 본격적으로 빅리그 선수생활을 시작한 Durocher는 공격력은 그다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지만, 정상급 수비실력으로 1929년부터는 팀의 주전 유격수로 발돋음하게 된다. 그러나, 양키스에서의 선수생활을 그리 오래 가질 못했다.

허풍과 허세가 좀 심한 편이였던 그는 자신의 연봉은 생각하지도 않고 뉴욕 상류층의 사람들과 유희를 즐겼고, 수차례의 도박으로 구단으로부터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게다가 Ruth의 물건을 포함하여 팀동료들의 물건과 돈을 훔쳤다는 소문까지 나돌면서 결국 1929년 시즌종료 후 신시내티로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

신시내티에서 3년 가량 머무른후 1933년 중반 카디널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Durocher가 가지고 있던 지도자의 기질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팀의 2루수 겸 감독인 Frankie Frisch와 함께 Pepper Marin, Joe Medwick, Diizzy Dean 등 터프하고 거친 성격을 가지고 있던 팀원들을 결집시켜 리그 최고의 팀으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Gas House Gang이라는 표현도 매스컴이 아닌 팀의 주장을 맡았던 Durocher의 입에서 먼저 나온 말이였다. 이들의 진가는 1934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단장이였던 Branch Rickey와 감독인 Frisch는 Durocher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못했다. 특히, Frisch는 자신의 감독자리가 Durocher에게 빼앗길 것을 두려워했고, Rickey 단장에게 그를 트레이드 시킬 것을 건의했다.

결국, 1938년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고 8년만에 다시 대도시 뉴욕으로 복귀하게 된다.1938년 Babe Ruth가 다저스의 1루 코치를 맡으면서 사람들은 Ruth가 성적부진의 책임을 안고 있는 Burleigh Grimes를 이어 감독직에 오를 것으로 믿었지만, Larry Macphail 단장은 Durocher에게 지휘봉을 건넸다. 그렇다고, Macphail 단장이 Durocher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적과의 동침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가운데 Durocher는 1939년 감독직을 맡은 지 3년이 되는 1941년, 팀을 정규시즌 우승으로 이끌었다. 브루클린 지역에서는 20년만에 찾아온 우승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가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구단에서는 기차로 이동중인 선수들의 안전 등을 고려해서 환영인파가 운집해있을 기차역을 피하려고 다른 곳에서 선수들들을 내리게 할 작정이였다.

그러나, Durocher는 선수들이 많은 팬들로부터 축하와 격려를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구단의 계획을 묵살하고 정차할 역을 그냥 통과시켰다. 그런데, 그곳에는 MacPhail 단장이 선수들과 합류하기 위해 선수단이 타고 있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때문에 Macphail 단장과 Durocher 사이는 더 벌어지고 말았다.

Macphail이 양키스 단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카디널스 시절 단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Branch Rickey가 다저스의 단장으로 부임했다. 단장이 바꼈어도 감독과 단장의 관계가 좋아질리는 없었다. 계속된 적과의 동침이었다. 1945년 Ebbets Field에서 자신을 욕하는 관중을 두들겨 패 징계까지 받았지만, 능력있는
Durocher를 섣불리 해고할 수도 없었다. 또한, Rickey의 최고작품인 Jackie Robinson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간접적으로 지지한 것도 계속해서 한 배를 탈수 있었던 이유였다.

Robinson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놓고 다저스 팀내에서도 이를 반대하는 의견이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Durocher는 "Robinson이야말로 우리팀에 승리를 안겨줄 훌륭한 선수"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일부 선수들의 집단 반발움직임을 사전에 봉쇄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Durocher는 Jackie Robinson의 데뷔를 지켜보지 못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양키스의 단장인 MacPhail이 다저스의 코치 2명을 사전통지도 없이 데려갔고, 이에 분개한 Durocher가 Macphail에게 거침없는 비난과 욕설을 퍼부으며 둘간의 극단적인 대립이 시작되었다.

중재에 나선 Happy Chandler 커미셔너는 서로간의 입장을 정리,확인한 뒤 각각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Durocher는 스프링캠프에서의 잦은 도박과 헐리우드 영화배우 Laraine Dayer와 멕시코에서 결혼한 것을 이유로 1년간의 출장정지 처분을 받고 말았다. Dayer가 이혼수속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였다는게 한 이유였다.
뉴욕과 헐리우드에서 명성이 자자한 갱이였던 Bugsy Siegal(영화 벅시의 실제주인공)과 친분이 있다는 것도 중징계가 내려진 이유였다. 이러한 부분들이 메이저리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것이다.

1년간의 출장정지 후 1948년 다시 복귀했지만, 성적이 부진하자 Durocher는 바로 해고 되고 말았다. 출장정지 처분도 원래부터 Durocher을 쫓아내기 위한 일종의 계략이였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아무튼 Macphail, Rickey와 8년 넘게 지속된 적과의 동침은 이렇게해서 종지부를 찍었다. 감독직에서 물러나자 마자 그를 붙잡기 위한 각팀의 움직임이 일었다. 여러팀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Durocher가 선택한 팀은 다저스의 라이벌이였던 NY Giants였다. Giants의 슈퍼스타였던 Mel Ott가 감독 5년 넘게 감독을 맡았지만, 팀성적은 리그 최하위권이였다.

결국, Ott는 경질되었고, 새롭게 부임한 Durocher은 "사람이 좋으면 꼴찌 하는 법이야(Nice Guys finish last)" 라는 유명한 말을 만들어내며 팀을 이끌게 된다.

다저스 감독시절에도 Roy Campanella를 포수로 기용하고, 포수였던 Gil Hodges를 1루수로 전향시키며 팀공격력을 배가시켰던 그는 1951년 마이너에 있던 20세의 어린 Willie Mays를 과감하게 메이저리그로 승격시켰고, Mays가 초반 부진하자 용기를 북돋아주며 Mays의 빅리그 성공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해 Bobby Thomson의 기적적인 홈런으로 팀을 월드시리즈 무대까지 이끌었다.

1954년에는 선수 Durocher가 아닌 감독 Durocher로서 첫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맛보며 명실상부한 메이저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1955년 시즌 종료후 감독직에서 물러나 TV 야구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잠시 외도를 하기도 했지만, 1961년 다저스의 3루코치로 부임하며 다저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당시 다저스의 감독으로 있던 Walter Alston이 Durocher의 명성때문에 그를 조금씩 경계한 결과 다저스의 지휘봉을 다시 잡지 못하고 1966년 최하위팀 컵스의 선장을 맡게 된다.

60년대 초반 극도의 부진으로 집단 지도체제를 사용하기도 했던 컵스는 Durocher의 지휘아래 일취월장하며 5할이상의 승률을 기록하며 오랫동안 계속된 침체기를 탈피하기 시작했다. 1972년 휴스턴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고, 이듬해 1973년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50년간의 메이저리그 인생을 마감하였다.

70세를 바라본는 고령의 나이와 돔구장과 인조잔디의 시대에서 감독을 하기엔 그의 야구스타일이 뒤쳐져 있는 듯한 느낌이였다. 선수시절부터 감독시절까지 상대팀 선수들의 기를 꺾기 위해 온갖 야유를 쏟아부었고, 심판들과의 잦은 언쟁과 욕설 등으로 한순간도 입을 쉬지 않아 'The Lip(떠벌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Durocher는 선수시절 보다는 감독시절의 행적때문에 더욱 유명인사가 될수 있었다.

워낙 다혈질적이고 거친 입으로 좋지 못한 평판이 주를 이루지만, 자신이 데리고 있는 선수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남달랐으며, 거친 이미지와 달리 선수들이 힘들어 할때는 아버지처럼 온화하게
감싸주기도 하였다. 통산 3,740경기를 감독으로 있으면서 2010승 1070패의 성적을 기록하였고, TSN 선정 올해의 감독상을 총 3회(1939, 1951, 1954) 수상, 그리고 수많은 감독과 선수들을 배출하며 1994년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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