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6 14:27:35, Hit : 76, Vote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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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통산 4차례의 트리플 크라운 투수, Grove Alexander




필리스, 컵스, 카디널스의 팀역사에서 Pete Alexander는 가히 전설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세팀에서 그는 한차례 이상 +20승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필리스와 컵스에서는 투수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카디널스에게는 팀창단 첫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가져다 주었다. 이와 같은 영광이 힘든 역경속에서 일궈졌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 가치는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13남매를 키웠던 Alexander의 부모는 그가 태어날 당시 미국 22대 대통령이였던 Grover Cleveland의 이름을 그에게 부쳐주었다. 그런데, 그가 Pete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지게 된 이유는 선수로 활약하던 시절 마차에서 떨어져 진흙탕속에서 뒤범범이 된적이 있었다. 그 모습이 당시 유행하던 만화 캐릭터 주인공과 비슷했고, 옆에 있던 친구가 캐릭터 주인공의 이름인 Pete라고 부르면서 새롭게 부쳐진 일종의 별명이였다.

어린시절 돌멩이로 날아다니는 새를 종종 맞춰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는 19세가 되던 1906년 50$의 월급을 받고 세미프로팀에서 선수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1909년 독립리그의 Galesburg라는 팀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는 뜻밖의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경기도중 병살타 처리를 하던  유격수가 던진공이 그의 머리를 맞추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고로 그는 이틀넘게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으며, 시신경에 문제가 생겨 사물이 2개로 겹쳐 보이는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더 이상 악화되진 않았으나, 투수로서의 가치가 없어졌다고 판단한 팀은 그를 쫓아버렸다. 다른 팀에서도 그를 받아주질 않았다.  하지만, 고향팀인 Syracuse 로 오면서 상황이 조금씩 나아졌다. 정신적인 안정이 일단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고, 사물이 겹쳐보이는 증세도 많이 호전된 것이다. 이곳에서 29승을 올리자, 그 소문을 들은 필리스가 750$의 계약금으로 Alexander를 잡았고, 그의 파란만장한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이 시작되었다. 

데뷔 첫해인 1911년 보여준 성적은 가히 놀라웠다. Cy Young, Christy Mathewson 등 당대 최고의 투수들을 상대로 완봉승을 기록하면서 28승으로 리그 다승왕을 차지하였고, 탈삼진도 227개로 리그 최상의 성적을 거둔 것이다. 28승은 메이저리그 역대 단일시즌 신인 최다승으로 다시는 깨지기 힘든 기록중의 하나이며 탈삼진 역시 1984년(Dwight Gooden)이 되어서야 경신되었을 정도로 보기드문 훌륭한 성적이였다.

그러나, 이것은 서곡에 불과했다.
1912년 잠시 주춤한 것을 제외하면 필라델피아에서의 선수생활은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1915년 31승, 방어율 1.22, 탈삼진  244개로 생애 첫 트리플 크라운을 수립하였고, 1917년까지 3년 연속 +30승3년 연속 1점대 평균자책점등으로 3년 연속 리그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 것이다. 그 어떤 투수도 그의 성적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 밖에도 1916년에는 단일시즌 16개의 완봉승을 기록하며 3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에 이어 또 하나의 메이저리그 초유의 기록을 달성하였다. 불같은 강속구를 뿌리지 않았음에도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움직임이 심한 공을 던졌고,  날카로운 커브, 그리고 어려서 돌멩이로 새를 맞출 정도로 정교했던 제구력 덕분이였다. 게다가 마운드에서의 냉철함과 쉽게쉽게 투구하는 것도 마운드를 지배할 수 있었던 요인중 하나였다.

1911년부터 1917년까지 7시즌동안 무려 190승을 쌓은 후 필리스와의 인연은 끝이 나게 된다.
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선수들의 군입대가 이루어졌고 입영을 해야 했던 Alexander를 그의 전담포수였던 Bill Killefer와 함께 컵스로 트레이드 시켜버렸다.

1918년 컵스 유니폼을 입고 단 3경기만을 뛴채 군에 입대한 그는 포병으로써 프랑스에서 수많은 전투를 경험하였다. 그렇지만, 이것이  또다른 불행의 시작이였다. 당시 화학가스 사용과 포탄의 굉음으로 정신질환이 발생했고 청력에도 문제가 발생하였다. 심지어는 간질증세까지 발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고통은 술이외에는 그 어떤 것으도 치료할 수 없었다. 1919년 다시 복귀하여 자신의 명성에 걸맞는 성적을 기록은 했지만, 한번 입에 대기 시작한 술은 그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술을 마신 상태로 등판을 하기도 했고, 간혹 간질증세까지 겹쳐 팬들과 구단은 그가 또 다시 술을 마시고 등판한 것으로 착각하여 많은 비난을 퍼부었다. 이러한 상황속에도 불구하고  6년 연속 1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며 1920년 전무후무한 생애 4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다

알콜중독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요양소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좀처럼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1923년 이후부터는  나이가 들면서 공의 위력도 반감되면서 예전과 같은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1926년 새롭게 부임한 Joe McCarthy감독은 그를 팀에서 쫓아내버렸다.

사람들은 Alexander가 은퇴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였다.
카디널스가 그를 데려갔고, 왕년의 최고투수답게 기대이상의 성적을 기록해 주었다.
창단 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카디널스는 양키스라는 거함을 상대하게 된다. Babe Ruth, Lou Gehrig, Bob Meusel, Tony Lazzeri 등 이름만 들어도 투수들을 벌벌 떨게 했던 살인타선(Murderers' Row)을 상대로 39살의 베타랑투수 Alexander는 2, 6차전에서 18이닝동안 단 3실점만 허용하는 눈부신 호투로 2승을 기록하였다.

7차전에서 보여준 투구는 앞서 보여준 승리보다 더욱 가치있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는 최고의 투구 중 하나였다.
원정경기로 펼쳐진 7차전에서 카디널스는 3-2로 앞서던 7회에 위기를 맞게 되었다. 2사 만루상황에서 Rogers Hornsby 감독은 전날 경기의 승리투수였던 Alexander를 다시 등판시켰다. 그가 상대할 타자는 양키스에서 Ruth, Gehrig와 함께 세자리 타점을 기록했던 Toni Lazzeri였다. 만약 Alexander가 안타를 허용하기라도 하면 월드시리즈 우승의 향방은 다시 묘연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그러나, 그는 최고의 투수다웠다. Lazzeri를 삼진아웃 시키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팀을 건져냈고, 9회말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내 3 -2의 상태로 경기를 마무리 하며 카디널스에게 첫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겼다.

6차전 승리를 따낸 후 밤새 술을 마셨고, 취기가 다음날에도 그대로 남아있어 7회 등판하기 전까지 덕아웃에서 잠을 자고 있을 정도였지만, 마운드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수가 없었다. 월드시리즈에서 보여준 활약에 힘입어 구단에서는 그에게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대우를 해주었고, Alexander 역시 그 대우에 걸맞는 성적인 생애 9번째 +20승을 달성하였다.

불혹을 남긴 이후에도 계속해서 등판을 꾸준히 하면서 팀에 기여를 하긴 했지만, 술과는 절대 그 인연을 끊지 못했다. 그래서 카디널스에서도 다시 방출되었고, 1930년 자신의 첫번째 팀이였던 필리스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마침내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은퇴이후에는 House of  David 야구팀(이스라엘 유태민들의 재결합을 목적으로 창단된 야구팀으로 특이하게 수염과 머리를 깎지 않았다. 하지만, Alexander만큼은 그러한 규칙을 지키지 않았고, 그 누구도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의 적극적인 영입공세에 1935년까지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하였다.

통산 373승으로 Christy Mathewson과 NL 최다승을 보유한 그는 타자들에게 유리했던 필리스의 Baker Bowl 이나 컵스의 Wrigley Field 를 홈구장으로 사용했음에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여 더욱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38년 80.92%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지만,  그 이후로 계속해서 불우한 말년을 보내야만 했다. 술에 항상 찌든채로 살다보니 가족들은 커녕  친구들도 하나둘 그를 멀리했고,  변변한 집도 없이 이곳저곳 떠돌며 한손에 술병을 들고 부랑자 생활을 했다고 한다.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면서 메이저리그의 전설이 된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해 전직 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 미국 前 대통령이 주연한'The Winning Team'라는 영화가 1952년 제작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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