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6 15:01:54, Hit : 77,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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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남미 선수들의 스승 Felipe Alou




>1963년 9월 10일,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에도 불구하고 피츠버그와의 홈경기를 보기위해 Candlestick Park에 모인 관중들은 8회초 재미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수비를 하러 나온 자이언츠의 외야진 3명이 모두 형제였던 것이다. 우익수이자 맏형인 Felipe Alou, 3살 아래인 중견수 Matty Alou, 가장 막내이면서 이해 9월에 빅리그에 데뷔, 메이저리그 3번째 경기를 맞은 신인 외야수 Jesus Alou..

이들 3형제가 함께한 기간은  한달 가량밖에는 안되었지만, 그들에게는무엇보다 소중한 순간이이지 않았을까?

1940년대 후반부터 흑인들의 메이저리그 진출 분위기가 조성되긴 했지만, 그 이후로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보이지 않게 존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출신이 아닌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했다. 그런 와중에도 Felipe Alou는 도미니카에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야구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 아마추어 야구부터 차곡차곡 실력을 축적하여 1957년 같은 고향출신인 Juan Marichal과 함께 자이언츠에 입단하게 된다.

1958년 팀의 우익수를 시작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그는 만능플레이어 Mays의 아낌없는 배려와 관심으로 팀의 분위기에 적응하면서 주전자리를 꿰차었다. 데뷔후 3년간 잠재되어 있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진 못했지만, 빠른 발로 만들어내는 안정된 수비와 시즌을 거듭할수록 향상되어가는 공격력으로 Willie McCovey, Olando Cepeda와 함께 Mays를 이을 타자로 인정을 받았다.

1961년 5월 컵스와의 경기에서 생애 첫 번째 만루홈런을 치면서부터 조금씩 타격에 눈을 뜬 Alou는 1962년 첫 3할 타율과 25홈런, 98타점으로 팀공격의 한축을 담당하며  샌프란시스코로 연고를 이적한 후 팀의 첫 번째 리그 우승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다저스와의 플레이오프 최종 3차전에서는 결승득점을 하여 샌프란시스코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1963년에도 20홈런, 82타점의 공격력으로 팀공격의 한축을 담당하였고, 시즌 막바지에는 막내동생 Jesus Alou까지 빅리그에 데뷔하면서 두명의 동생과 함께 한팀에서 뛴다는 기분에 사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불펜진과 노령화되는 선발진을 보강하기 위해 브레이브스의 불펜 핵심이였던 Bob Shaw를 비롯하여 선발 Bob Hendley 등을 얻는 조건으로 1963년 12월 브레이브스로 Felipe를 트레이드 시켜버렸다.

1964년 새로운 팀에서의 적응과 무릎부상으로 인하여 1년간 슬럼프를 겪었으나, 갖은 인종차별도 이겨낸 그의 정신력은 이듬해부터 서서히 빛을 발하였다. 비록, 무릎부상의 후유증으로 기동력이 요구되는 외야수는 포기하게 되었지만, 팀의 주전 1루수로서 맹활약을 하여 23홈런, 78타점으로 부상이전의 모습을 완벽히 회복하였고, 1966년에는 리그 최다타수와 함께 생애 최고의 시즌을 맞이하며 리그 최다안타(218개), 31홈런, 그리고 타율.327로 피츠버그로 이적한 동생 Matty Alou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하였다.

이전에 당한 무릎부상이 재발하면서 1967년 잠시 주춤한 후, 1968년 다시 리그 최다타수, 리그 최다안타(210개)로 다시 한번 전성기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1970년 오클랜드로 이적하기전까지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활약한 6년간 Felipe는 빈번한 경우는 아니였지만, 투수와 포수를 제외한 전포시션을 소화하며 팀에 절실히 필요한 선수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였고, 6년간 989안타, 평균 타율.295로 자신의 17년 선수생활기간중 최고의 날들을 보내게 된다.

1969년 무릎부상의 후유증은 심해지고 어깨부상까지 겹쳐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게된 그는 1971년 1년 반의 오클랜드 생활을 뒤로 한채 양키스로 트레이드 되었고, 1973년에는 동생 Matty Alou와 함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10년만에 다시 형제가 한팀에 뛰는 영광을 맛보았다.

이후 몬트리올과 밀워키에서 짧은 선수생활을 끝으로 Alou는 1974년 39살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를 하게 된다. 온갖 인종차별에도 불구하고 그는 라틴계 선수들의 권익을 위해 생전의  Clemente와 함께 후배 라틴계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입성을 위한 많은 노력을 함으로써 중남미 야구선수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

짧은 기간 몸담았던 몬트리올로부터 타격코치 제의를 받고 1973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Alou는 마이너리그 감독경험을 살려 1992년 5월부터 Tom Runnells의 뒤를 이어 57살의 다소 늦은 나이에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젊은 선수들을 책임지는 임무를 맡게 된다.

팀의 재정이 시원찮은 상황에서 그는 Larry Walker, Marquis Grissom, 친아들인 Moises Alou 등의 리그 최고의 타자와 Pedro Martinez, John Wetteland 등 훌륭한 투수들을 길러내는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의 지도력은 파업으로 인한 시즌에도 불구하고 1994년 브레이브스를 제치고 팀을 지구 1위로 끌어올렸고 어린 선수들과 저연봉의 선수들로도 훌륭한 팀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하지만, 팀의 열악한 재정은 거물급 선수로 성장한 이러한 선수들을 잡기에는 벅찬 일이었기 때문에 1990년대 후반부터 Alou가 지휘하는 몬트리올은 '모든 메이저리그 팀의 선수공급원'이라는 불명예를 얻기까지 했다.

1997년부터 팀승률이 5할밑으로 추락하면서 구단주가 바뀌었고, 새롭게 팀을 맡은 Jeffrey Loria(현재 말리스 구단주)는 팀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24년간 몬트리올과 함께 했던 Alou를 경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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