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6 16:39:08, Hit : 82, Vote : 7
 Carl_Hubbell.jpg (69.5 KB), Download : 0
 스크류볼의 황제, 'King Carl' Hubbell




<사진출처 : SI.Com>


스크류볼은 제대로 이용된다면 효과적인, 그리고 위력적인 구질로 사용되어질 수 있다. 하지만, 손목과 팔꿈치에 많은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어린 선수들이 이 공을 던지는 것을 가급적 막으려고 한다. 1920년대 중반 디트로이트의 감독을 역임하고 있던 Ty Cobb도 마이너리그에서 스크류볼을 던지고 있던 좌완투수Carl Hubbell에게 똑같은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스크류볼을 던지지 못하는 Hubbell은 평범한 투수에 불과했다. 덩치도 작고, 얼굴 인상까지 연약해 보였으니 타석에서 그를 두려워 할 타자는 없었다.   

싱커성 구질을 연마하다 우연한 기회에 손목을 비트는 변화구를 시도하던 중 스스로 스크류볼에 눈을 떳다고 하는 Hubbell은 1925년 2만$의 계약금을 받고 디트로이트에 입단하게 된다. 그러나,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했고, 감독인 Cobb이 스크류볼까지 금지시키는 바람에 별볼일없는 투수로 시간만 허비하고 있었다.

송곳니와 발톱이 빠진 사자처럼 잠재성이 보이지 않자 팀에서도 결국 트레이드 시켰다. 그러던중 뜻밖의 기회를 맞게 된다.

뉴욕 자이언츠의 스카웃터가  Hubbell 이 스크류볼을 던진다는 소문을 알고 팀감독인 John McGraw에게 그 사실을 보고를 한 것이다. 'Fadeaway'라는 스크류성 구질로 1910년대 메이저리그를 장악했던 'Big Six' Christy Mathewson의 모습이 老감독의 뇌리에 스쳐갔을 것이다.
1928년 3만$을 주고 데려온 Hubbell에게 McGraw감독은 던지고 싶은 구질을 마음껏 던지라고 주문했고, 깊은 신뢰와 믿음을 주었다.

마침내 192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를 하게 되었고, 이듬해 1929년에는 노히트경기(vs피츠버그)를 수립하면서 팀의 에이스로 차츰 성장하기 시작했다. 젊고 예의바른 Hubbell은 Giants에게 있어 오랜만에 가져보는 진짜 에이스였다.

Polo Grounds에 모인 자이언츠팬들은 믿음직한 그에게 'Meal Ticket(기둥)', 'King Carl' 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Hubbell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1933년부터 리그 최고의 투수로 거듭나게 된다. 1930년부터 평균 17승을 올리면서 시작된 그의 전성기는 1933년을 기점으로 최고조에 이르기 시작했다.

1933년 7월 3일 카디널스와의 더블헤더 2경기에서 18이닝 무실점(1경기 : 16이닝, 2경기 : 2이닝)으로 막아내면서 연속이닝 무실점 행진을 시작으로, 1908년 컵스의 Ed Reulbach가 가지고 있던 46이닝 연속무실점을 경신, 46 1/3 연속이닝 무실점의 내셔널리그 기록을 수립하였다.
  
탈삼진을 제외한 다승(23승)과 평균자책(1.66), 투구이닝(308.7이닝), 완봉(10개)등에서 모두리그 1위를 차지함으로써 리그 MVP에 선정되며 그 상승세를 월드시리즈까지 이어갔다. 워싱턴 Senators와의 경기에서 2경기에 등판, 2자책점이 있긴 했지만, 모두 완투(비자책)하며  McGraw체제에서 Bill Terry 감독으로 바뀐 팀에 우승을 선사했다

특히, 7월초에 보여주었던 카디널스와의 18이닝 무실점 경기는 Giants 올드팬들에게 최고의 경기 중 하나로 남아있을 정도로 대단한 역투와 Hubbell의 진정한 위력을 떨친 경기였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1934년 올스타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Hubbell의 가치를 더욱 드높인 경기였다. 제 2회 올스타전에서 아메리칸 리그의 전설적인 강타자들을 차례로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이다.

올스타전 최다승 투수이기도 한 양키스의 Lefty Gomez와 선발 맞대결을 펼쳐진 이 경기에서 Hubbell은는 1회초 1번타자였던 Charlie Gehringer에게 안타를 허용하였고 2번타자였던 Heinie Manush는 볼넷을 내주며 다소 불안을 출발을 하였다.

그러자, 포수마스크를 쓰고 있던 컵스의 Gabby Hartnett 이 주무기인 스크류볼을 자신있게 던질 것을 요구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상대하게 된 타자는 Babe Ruth.

그러나, 스크류볼에 최고의 타자 Ruth도 당해내질 못했다. 첫 삼진을 잡은 Hubbell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다음 타자인 Lou Gehrig을 시작으로 훗날명예의 전당 멤버인 Jimmie Foxx, Al Simmons, Joe Cronin 등을 모두 연속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올스타전 5타자 연속 탈삼진의 대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양키스의 Bill Dickey에게 안타를 맞으면서 6타자 연속 탈삼진기록에는 실패하였지만 이 경기에서 3이닝동안 총 6개의 탈삼진(올스타전 최다탈삼진)의 무실점행진을 펼쳐 자이언츠팬들 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에 관심있는 팬들은 Carl Hubbell의  이름을 확실하게 기억하는 계기가 되었다. <

올스타전의 원맨쇼 이후에도 그의 투구는 변함이 없었다.
카디널스의 괴짜 강속구 투수 Dizzy Dean에게 잠시 야구팬들의 관심이 몰렸지만, 1936년 26승을 올리며 3년만에 다시 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게다가 1936년에는 또 하나의 진기록 수립의 첫 단추가 꿰어지고 있었다.  
7월 17일(vs 피츠버그)부터 16연승을 하면서 시즌을 마감한 그는 이듬해 1937년 5월 27일 (vs Reds)까지 8연승을 달려 24연승이라는 엄청난 대기록(ML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5년 연속 +20승을 마지막으로 스크류볼의 잦은 사용에 따른 팔부상과 나이탓으로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긴 했지만, 이후에도 꾸준하게 승수를 추가하여 통산 253승을 기록, 1947년 86.96%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훗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영구결번(#11)되었으며, 은퇴이후에도 샌프라시스코 자이언츠의 마이너리그 책임자로서 30년 넘게 활동하며 수많은 선수들을 육성, 발굴하여 자이언츠 팬들에겐 최고의 스타로 기억되었다.




Name
Memo      


Password


명투수 겸 배우, Rube Marquard
중남미 선수들의 스승 Felipe Alou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