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7 16:35:49, Hit : 69, Vote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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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년간 디트로이트의 1루를 지킨 Norm Cash




새로운 홈런역사가 쓰여질 거라는 기대로 1961년 메이저리그 야구팬들의 모든 관심은 Roger Maris와 Mickey Mantle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여름의 뜨거운 기운이 최고조에 이른 8월에 Mantle이 부상으로 홈런경쟁에서 쳐진 후로는 사람들의 일과는 Maris로 시작해서 Maris로 끝날 정도가 되었다. 한 선수에게 모든 초점이 모여지다보니 뛰어난 활약을 하고도 관심을 덜 받게 된 선수들이 있게 마련이였는데 그중 한명이 디트로이트의 슬러거 Norm Cash였다.

Cash는 이해 커리어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그 기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홈런 41개(리그 6위), 타율.361(1위), 출루율.487(1위), 132타점(4위), OPS(1위), 최다안타(1위) 등 거의 모든 공격 부문에서 리그 정상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런 성적에도 불구하고 리그 MVP는 Maris에게 돌아갔고, 심지어 Cash 본인은 1961년에 부정배트를 사용했다고 훗날 고백함으로써 그의 야구인생 자체가 일부 평가절하되고 말았다.

또한, 디트로이트 팬들의 절대적 사랑을 받은 팀동료 Al Kaline의 활약에 가려 Cash의 가치는 아쉽게도 과소평가 받고있다.

대학시절 야구보다는 풋볼선수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는 하프백(수비의 태클에 제지 당하지 않고 달리는  러닝백의 일종)포지션에서 대학 최고를 자랑하며 러싱거리 신기록을 수립하기도 하였다. 당연히 여러 프로팀에서 관심을 가졌고, NFL 드래프트를 통해 시카고에 입단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대학시절이 되어서야 그저 취미로 시작한 야구로 전향하게 되고, 화이트삭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남들보다 훨씬 늦게 시작했음에도 Cash는 마이너에서 줄곧 3할중반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탁월한 운동신경을 자랑하였고, 군복무를 마친 1958년 외야수로 빅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블랙삭스 스캔들 이후 오랜 침체기를 거친 화이특삭스가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한 1959년, 아쉽게도 그에게 주전자리는 찾아오질 않았다. 결국, 시즌 후 클리블랜드의 Minnie Minoso가 포함된 트레이드로 유니폼을 바꿔입는 운명을 맞고 말았다.

화이트삭스에서 이미 1루수로 전향했던 Cash였지만 클리블랜드에는 올스타 1루수인 Vic Power라는 경쟁자가 있었다. 당연히 이곳에서도 그의 자리가 보장될리 없었다. 당시 클리블랜드의 단장인 Frank Lane은(※ Lane 단장은 Cash의 트레이드가 있은지 5일후에는 뛰어난 외모와 실력으로 사랑을 받은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 Rocky Colavito마저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 하여 클리블랜드 팬들의 원성을 샀다. 그는 1957년 카디널스 단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Stan Musial의 트레이드를 추진하다가 1년만에 쫓겨났다)
시즌 개막직전 Cash를 디트로이트로 다시 트레이드 하였다. 이렇게 해서 디트로이트는 Hank Greenberg와 함께 팀역사상 최고의 1루수로 거론되는 선수를 잡게 된다.

Colavito와 Cash가 가세한 디트로이트 타선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메이저리그 최연소 타격왕 출신인 Al Kaline과 함께 중심타자로 활약한 Cash는 주전 1루수로서 공수에서 예전보다 한층 향상된 모습을 보였으며, 이듬해인 1961년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커리어 최고의 활약으로 전년도 5할 승률에도 미치지 못했던 디트로이트를 리그 2위까지 올려놓았다. 양키스에 밀려 리그 우승을 놓치긴 했어도 이해 디트로이트의 팀성적은 1934년의 101승과 타이기록이였으며, 타선과 마운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강팀이였다.

Kaline은 Cash에 이어 리그 타격 2위를 기록했고, Colavito는 45홈런, 140타점으로 Cash와 함께 무서운 쌍포를 구성함으로써 양키스의 Maris-Mantle(M-M Boys)에 필적할 만한 파괴력으로 상대팀을 위협하였다. 디트로이트 팀역사상 한시즌에 2명의 선수가 나란히 +40홈런을 기록한 것은 이때가 유일했다(?).
또한, Cash의 타격왕 등극은 2011년 Miguel Cabrera가 타이틀을 차지하기 전까지 50년간 그 어떤 디트로이트 선수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1961년 디트로이트의 타선은 리그 최고중의 최고였다.
그러나, Cash는 1974년 은퇴할 때까지 이런 성적을 다시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매시즌 꾸준히 +20홈런(4차례의 +30홈런)을 기록하긴 했어도 장타력, 타율, 출루율 등에서 1961년 시즌만큼의 위력적인 시즌을 재현하지 못했다. 투고타저의 시기까지 맞물리면서 공격력에서 손해를 봐야만 했다.

은퇴 후 SI(Sports Illustrated)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코르크로 밀봉된 방망이를 사용했다고 고백을 했다. 직접 어떻게 방망이를 사용했는지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방망이의 원통형에 8인치 깊이로 구멍을 뚫은 후, 아교,코르크, 톱밥으로 채워 배트의 반발력을 강화한 것이다.(출처 : MLB Bada)

이러한 점 때문에 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Cash의 메이저리그 선수경력 자체가 과소평가되서는 안 되리라 본다. 팀동료뿐만 아니라 동시대에 활약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를 1960년대 리그 최고의 1루수중 한명으로 뽑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홈구장 타이거 스타디움의 우측지붕을 4차례나 넘길 정도로 힘과 기술을 갖춘 왼손 슬러거로 인정하고 있다.

1루수로서 통산 375개의 홈런(총 377개)을 기록하였고, 월드시리즈와 같은 큰 경기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남겼다. 1968년 카디널스와의 시리즈 6차전에서 3회초에만 2차례 타석에 들어서 모두 안타를 기록하며 팀타선에 불을 지폈고, 마지막 7차전에서는 당대 최고의 에이스인 Bob Gibson을 상대로 7회초 2사에서 뽑은 귀중한 안타로써 Gibson을 무너뜨렸다.
시리즈 7경기에서 3할 8푼대의 고타율로 팀내 최고타율을 기록, 시리즈 MVP인 좌완투수 Mickey Lolich와 함께 팀우승의 밑거름을 제공하였다.

Kaline의 위상에 가려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긴 했지만, Cash는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으로 15년간 디트로이트를 이끈 숨은 공로자였고,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Kaline과 함께 700개에 육박하는 홈런을 합작하여 1960년대 최고의 듀오로 인정을 받기도 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경기 자체를 즐기려 했기 때문에 승부근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그와 함께한 팀동료들은 특유의 유머로 자신들을 즐겁게 해준 Cash를 잊지 못하고 있다.

1973년 7월 15일 에인절스와의 홈경기에서 디트로이트 선수들은 Nolan Ryan에게 노히트경기의 제물이 되어 의기소침한 상태였다. 2개월전 KC를 상대로 개인통산 첫 노히트 경기를 달성한 Ryan의 투구는 한층 물이 올라있었고,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는 Cash 역시 Ryan의 불같은 강속구에 3차례나 삼진을 당하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Ryan은 이경기에서 17탈삼진을 기록)..

9회말 2사 상황에서 Cash가 타석에 들어서려 하자, 갑자기 주심이 그를 제지했다. 야구배트가 아닌 것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였다. 클럽하우스에 있는 책상 테이블의 한쪽 다리를 들고 타석에 들어선 Cash는 " 배트를 들고 나오든 테이블 다리를 들고 나오든 Ryan의 공을 치지 못할텐데, 그냥 넘어갑시다" 라고 말했다.

양팀 덕아웃은 물론 이 광경을 지켜본 관중석에서도 박장대소했다. 물론, Cash는 야구배트로 바꿔서 타석에 들어섰고, 내야플라이로 물러나 Ryan은 노히트경기를 달성하였다.

1974년 시즌후 3천안타를 달성하며 명예롭게 은퇴한 Kaline과 달리 Cash는 팀에서 방출되며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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