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7 23:15:43, Hit : 78, Vote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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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리플 크라운 2회에 빛나는 만담꾼 Lefty Gomez




Babe Ruth로 대표되는 살인타선 양키스의 독주에 제동을 건 Connie Mack의 필라델피아 A's가 무서운 기세로 1929년부터 3년 연속 리그 패권을 거머쥐자, 양키스의 Ruppert 구단주와 Ed Barrow 단장은 팀전력을 개편하기 위하여 두 노장 선발투수 Herb Pennock과 Waite Hoyt를 대신할 만한 투수 영입에 나섰다.

노력끝에 양키스에 희망을 안겨줄  투수를 발견했으니 그가 바로 2만 5천$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Lefty Gomez였다. 멕시코계 혈통으로  캘리포니아 토박이었던 그는 180파운드(약 78kg)정도의 체중에 불과했으나, 유달리 긴 팔과 강한 어깨로 불같은 강속구를 뿌리며 독립리그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하고 있었다.

원래 Gomez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유니폼을 입을 기회가 있었다. Bob Feller를 스카웃 한 것으로도 유명한 Cy Slapnicka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명성을 떨치던 Gomez를 클리블랜드에 입단시키기 위해 5만$의 돈을 갖고 갔지만, 그의 왜소한 체격를 보자 바로 스카웃 계획을 철회해 버린 것이다.

한편, 괴짜였던 Gomez는 입단초부터 많은 얘깃거리를 몰고 다녔다.
그의 체중이 180파운드라고 알고 있던 Barrow 단장은 실제로는 150파운드(약 68kg)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게 되자, 체중을 늘릴 것을 주문했다.
"Lefty Grove 처럼 되기 위해선 살을 좀 불려야 하겠군"
그러자, Gomez는 ""체중을 불리면 사람들이 제가 누구인지 모를겁니다."

1930년 21살의 나이에 데뷔한 뒤, 이듬해 1931년부터 선발로테이션에 합류하더니 단숨에 21승을 기록하며 에이스로 단숨에 에이스 자리를 꿰찼다.
Gomez의 등장으로 양키스는 우완 Red Ruffing과 함께 다시 한번 막강한 원투펀치를 구성하여 안정적인  마운드를 구축할 수 있었고, A's에게  빼았겼던 리그 패권을 다시 찾아올 수 있었다.

1932년 4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다소 불안하기도 했지만, 팀타선의 도움으로 24승을 올렸고 본인의 첫번째 월드시리즈 무대인 컵스와의 경기에서 완투승을 거두며 월드시리즈 6 승 무패의 신화를 쓰기 시작한다.

당시 그의 공을 직접 본 타자들과 야구전문가들은 Gomez가 Lefty Grove나 Bob Feller만큼의 강속구는 아니더라도 리그 수준급의 강속구를 던졌다고 한다. 특유의 하이키킹 투구폼과 위력적인 커브볼로 많은 삼진을 잡아냈고, 1934년 26승,평균자책 2.33,탈삼진 158개로 생애 첫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게 된다.
팔꿈치 부상에 따른 2년간의 부진 후에 1937년 다시 21승, 평균자책 2.33, 탈삼진 194개로 생애 2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였다.

올스타전에서의 활약은 Gomez의 이름을 더욱 빛나게 한다.
1933년 제 1회 올스타전에서 리그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승리투수가 되었고, 이후 1935년, 1937년에도 NL의 Carl Hubbell, Dizzy Dean 등 당대 최고투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둠으로써 올스타전 3승을 기록하였다. 7년 연속 올스타올스타전 선발투수 5회나 했을 정도로 1930년대 리그 최고의 투수였다.

또한, 월드시리즈 6승 무패(6연승)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큰경기에서도 그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36년과 1937년 2년 연속 뉴욕의 라이벌이었던 뉴욕 자이언츠를 상대로 4경기에서 모두 승리(3완투승)하였고, 1938년 컵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1승을 기록하며 월드시리즈에서 승률 100%의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었다.
                           
성적도 빼어났지만, 역시 괴짜 Lefty Gomez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가 남긴 재미있는 유머와 농담이다. 유머감각에 대한 욕심이였는지 헐리우드의 유명한 코미디 배우와 결혼을 하기도 하였다.

그와 관련된 유머를 몇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1) 1936년 월드시리즈는 뉴욕의 라이벌 양키스와 자이언츠의 대결이었다. 라이벌 대결답게 양팀 감독들은 반드시 이기겠다는 신념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데, 2차전 선발로 나선 Gomez가 마운드에서 갑자기 멍하게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경기가 잠시 중단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이닝이 끝나고 양키스의 McCarthy 감독이 하늘을 쳐다본 이유를 물었다.
"하늘에 비행기가 가고 있길래 그것좀 보려고 공을 안 던졌어요, 비행기 쳐다봤다고 경기에서 지는 것 아니죠"

팀동료들에게 항상 웃음과 재미를 선사하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던 Gomez 덕분인지 그해 그가 등판한 월드시리즈 2경기에서 양키스 타선은 무려 31득점을 하며 자이언츠를 초토화시켰다.


(2)자신에게 강한 A's의 Jimmie Foxx와 대결을 할 때였다. 포수 Bill Dickey의 사인이 떨어져도 Gomez가 공을 던지지 않자, Dickey가 마운드로 올라갔다.
"도대체 무슨 구질을 던지려고 그러는 거야?" 
"어떤 공도 Foxx에게 던지지 않을거야, 그러면 그가 그냥 지쳐서 발뺌하겠지."

(3)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을 때, Gomez가 라디오 토크쇼에 출연했다.
"암스트롱과 NASA관계자들은 달에서 하얀색의 미확인 물체를 발견하고는 고민에 빠질 것이다. 그 물체가 뭔고하니 Foxx가 나를 상대로 때린 홈런공이야"

(4)공격력이 형편없었던 Gomez가 안타를 치고 1루로 진루를 하였다.(1973년 이전까지는 아메리칸 리그도 투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후속타자가 안타를 기록, 2루로 진루하던 중 어이없게 아웃을 당하자 McCarthy감독이 그 이유를 물었다.
"2루에 가본 적이 없어요"

Gomez는1939년 후반부터 심화된 팔꿈치 통증으로 30살의 나이에 은퇴까지 고려하게 되나, 기교파 투수로 변신하면서 1941년 15승으로 투혼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1943년 Washington Senators(미네소타 트윈스 전신)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 그는 괴짜인 성격과는 달리 자신이 경기에서 승을 기록할 때마다 모든 공을 팀동료들에게 돌리는 겸손함을 보였다.

은퇴 이후에도 각종 자선행사나 방송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1972년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헌액되었고, 그의 이름을 딴 'Lefty Gomez Award(아마추어 야구발전에 기여한 지도자에게 수여하는 상)'은 반세기의 전통을 자랑하며 오늘날까지 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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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30홈런-30도루의 주인공, Ken Williams
1968년 월드시리즈 MVP Mickey Lol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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