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8 15:12:57, Hit : 68,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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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30홈런-30도루의 주인공, Ken Williams




1910년대 초반 3년 연속 시즌 +100패를 당했던 세인트루이스 Browns(現 볼티모어)는 1922년 양키스와 시즌 마지막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친 끝에 1경기 차이로 지구 2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 원동력은 타율.420을 기록한 George Sisler와 이해 리그 홈런, 타점왕을 모두 차지한 Ken Williams가 주도한 공격력 덕분이였다.

요리사로 일하던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여 세미프로팀을 거쳐 1915년 신시내티에 입단한 Willams는 변변한 기회도 잡지 못한채 팀에서 방출됐고 1918년 군복무 후에 Browns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1919년 시즌 후반부터 주전 좌익수로 자리잡은 그는 좌타자에게 유리한 홈구장 Sportsman's Park에 효율적으로 적응하며 1920년부터 팀의 홈런타자로 발돋음하였다. Sisler가 라인 드라이브형 타자이면서 정교함을 갖추었던 반면, Williams는 어퍼 스윙형의 전형적인 슬러거였다.(Sisler의 한시즌 최다홈런은 19개였지만, Willams 4차례나 20홈런을 넘었다. 물론 Dead ball시대와 맞물리던 시기라 여전히 홈런보다는 단타위주의 공격이 주를 이루고 있긴 했다)

1921년 59개를 때린 Ruth에 이어 24개의 홈런으로 리그 2위를 기록하자 사람들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1922년은 그의 전성기였다. 붙박이 주전을 꿰찬지 3년만이였고, 32살의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39홈런, 155타점으로 홈런, 타점 부문에서 Ruth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올렸다.

하지만, 홈런왕으로 제대로 인정을 받진 못했다. 이해 초반 Ruth가 6주간 출장정지 처분을 받아 제대로 시즌을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였다(Ruth가 오프시즌동안 Landis 커미셔너의 허락없이 당시 금지된 지방순회경기를  하였고, 블랙삭스 스캔들 수습 이후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Landis 판사의 지시를 매번 어긴 Ruth였기 때문에 본보기로 중징계를 내렸다)

찜찜한 홈런왕이였으나, Willams는 나름대로 이해 홈런왕다운 모습을 보였다.
4월 22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경기에서는 3개의 홈런을 몰아쳤고, 8월 7일 Senators와의 경기에서는 6회에만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려, 20c 메이저리그 최초로 한이닝에 2개의 홈런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홈런에 이어 도루에서도 37개를 성공시켜 오늘날 호타준족을 상징하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한시즌 30홈런-30도루를 기록하였다.

그 당시 '30홈런-30도루'가 오늘날처럼 높이 평가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장타력과 기동력의 결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기에 야구팬들 역시 새롭게 보게된 기록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을까?

이듬해 1923년 29개, 1925년에는 25개로 홈런왕 출신답게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1925년에는 투수가 던진 공에 머리에 맞는 사고를 당하고도 Ruth를 제치고 리그 최고 장타율을 기록했는데, 이것도 조금 찜찜한 1위였다. Ruth가 시즌 개막전에 담석제거 수술을 하느라 2개월 이상 결장했기 때문이였다. Ruth와 다른 시대에서 활약했더라면 Willams는 좀더 화려한 조명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머리부상 후유증과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1926,1927년에도 그는 2년 연속 17개 홈런으로 팀내에서는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하였고, 1928년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된다. 그러나, 홈런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Sportman's Park에서 무서운 위력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다른 구장에서는 그의 타격이 빛을 보지 못한 것이다. 1922년 39개의 홈런을 때렸을때 Sportman's Park에서만 32개의 홈런과 타율.373을 기록했던 반면, 원정경기에서는 홈런은 7개에 그쳤고 타율도 3할에 미치지 못했다(1930년대 후반 같은 구장을 사용했던 카디널스의 좌타자 Johnny Mize도 1938년 27개의 홈런 중 원정에서는 5개만을 기록하였다)

항상 웃는 얼굴로 경기에 임했던 그는 팀동료와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30세를 바라보는 늦은 나이에 주전으로 뛰기 시작해 꽃을 피웠고 공에 머리를 맞는 부상을 극복하고 활약한 Ken Willams는 Browns 팀역사에서 Sisler와 함께 여전히 팬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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