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8 20:39:24, Hit : 57, Vote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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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카디널스의 에이스 Jesse Haines




130년이 넘는 카디널스 역사에 있어 Bob Gibson과 함께 프랜차이즈 역사상 유일한 +200승 투수인 Jesse Haines는 1917년 디트로이트와 메이저리그 입단계약을 맺었으나, 이듬해 바로 신시네티로 트레이드 된다.
불펜투수로서 단 1경기를 소화한 그는 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공백기를 가졌다가 여러팀을 떠돌다 1920년 카디널스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Bill Doak라는 투수를 제외하곤 마땅한 선발투수가 없어 매시즌 리그 하위에 맴돌던 카디널스에 강속구투수였던 그의 합류는 Branch Rickey감독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등판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여 평가절하되어 있던 그는 새팀에 합류한 1920년 다소 많은 26살의 나이었지만, 팀내 최다이닝(301이닝)을 투구함으로써 간판타자 Rogers Hornsby와 함께 팀의 희망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세인트루이스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른지 2년째가 되던 1921년에도 팀내 최다승(18승)과 최다이닝을 기록, 팀의 실질적인 에이스로 거듭났으며 23년에는 20승을 기록하며 Haines를 영입하기 위해 $10,000이라는 큰 돈을 투자한 Rickey를 흡족하게 했다.

상당한 승부근성을 가졌던 그는 수비에서 실책이라도 나오면 팀원들에게 거친 욕설과 행동을 일삼아 가끔씩 비판을 받기도 하였지만, 카디널스의 여러 선수들은 Haines를 팀의 에이스로서 대우해 주었다고 한다. 20승 달성이후 어깨부상과 제구력난조로 잠시 슬럼프를 겪었는데, 그에겐 다른 옵션이 있었다.

예전에 배웠던 너클볼을 좀더 가다듬으며 기존의 강속구에 보통선수들보다는 다소 빠른 너클볼의 절묘한 배합으로 26년 후반부터 페이스를 끌어올려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3차전 완봉을 포함, 7차전에서 팀내 최고참투수인 Grove Alexander에게 7회 공을 넘기기 전까지 2실점의 호투를 발휘, 이 시리즈에서 총 2승을 올림으로써 팀 창단이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특히 홈에서 열린 3차전에서는 양키스의 선발 Dutch Ruether로부터 4회 2점 홈런으로 마운드와 타석에서 양키스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며 Sportsman's Park에 모인 카디널스홈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좋은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며 33살의 다소 많은 나이로 접어들었지만, 27년 리그 최다완투와 완봉을 기록, 생애 최다승인 24승을 올려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진출에 강한 열의를 내비쳤으나, 팀은 Paul-Lloyd Waner형제가 이끄는 피츠버그에게 1.5게임차로 리그 2위에 머물며 아쉽게 시즌을 마감해야만 했다.

1928년 다시 20승으로 팀을 다시 리그 정상으로 끌어올렸던 Haines는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힘없이 무너졌으나, 1930년 자신의 세번째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당시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던 필라델피아 A's를 상대로 4차전에 선발등판, 당대 최고의 투수인 Lefty Grove를 제압하며 완투경기를 펼쳤다.

1931년부터 차츰 내리막길을 걷자 불펜투수로 전환, Dizzy Dean 등 젊은 투수들의 조력자가 되면서 'Pop'(아저씨)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던 그는 37년 43살의 나이로 은퇴하기 전까지 Gas House Gang으로 불린 활기왕성한 팀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한차례의 노히트경기(1924년 vs 브레이브스)를 펼치기도 하며 1920년대부터 Hornsby와 함께 카디널스 왕조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기에 1970년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헌액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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