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9 12:31:12, Hit : 96, Vote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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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디널스 역대 최고의 포수 Ted Simmons




1970년대 내셔널리그의 포수계보는 10년 연속 골든글러브 독식과 함께 호쾌한 장타력으로 명성을 날렸던 Johnny Bench와 80년대 중반 리그를 대표한  Gary Carter, 그리고 수비력으로 크게 인정받은 필리스의 Bob Boone이 있었다. 하지만, 카디널스의 Ted
Simmons
또한 이에 못지 않은 활약을 하며 올스타전에 단골출전하였다.

비록, Johnny Bench라는 큰산에 밀려 골든글러브를 단 한차례도 차지하진 못했으나, 그의 공격력과 꾸준함은 어찌보면 이들 3명보다 더 나았다는 평가까지 내릴 수 있으며, 그의 수비력과 투수리드는 3차례의 리그 최다 어시스트를 차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골든글러브 수상포수들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았다.

또한, 밀워키 시절인 1981년과 82년에는 2년 연속 사이영상 수상자를 배출(Rollie Fingers와 Pete Vuckovich)시킬 만큼 최고의 포수였다.

1967년 17세의 나이에 1라운드 지명으로 카디널스에 입단, 3년 간의 마이너 기간을 거친 뒤 1970년 Joe Torre의 백업포수로서 본격적인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마이너시절 Torre이전 카디널스의 주전포수이기도 했던 Tim McCarver(현 방송해설자)로부터 포수훈련을 받았던 Simmons는 Torre가 내야수로 전향하자, 본격적으로 팀의 안방을 책임지며 자신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예고하였다.

풀타임 메이저리거 첫해인 1971년 홈런은 7개에 불과하였지만, 3할의 타율로 77타점을 올려 찬스에 강한 면모를 보였고, 포수로서는 꽤 빠른 발을 이용하여 32개의 2루타를 기록하였다.

이듬해 72년에는 생애 첫 올스타 선정과 함께 2년 연속 3할타율을 유지하였고, 홈런과 타점에서는 16홈런, 96타점의 주목할 만한 공격력을 선보이게 된다. 포수로서는 드물게 스위치타자였던 그는 한경기 좌우타석 홈런을 3회나 기록할 정도로 양타석에서 모두 골고른 공격력을 보였다. 특히, 젊은 선수답지 않게 정확한 선구안과 인내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데뷔초부터 받았다.

출루율은 항상 3할 중반을 유지하였고, 통산 출루율(.348)에서도 Roy Campnella와 Piazza만이 Simmons보다 좋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 출루율과 좋은 선구안은 많은 전문가들로 하여금 Simmons를 최고의 포수 중 한명으로 높이 평가하게끔 한 가장 큰 이유였다.

심심치 않은 장타력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삼진수가 볼넷보다 많은 경우는 21년의 선수생활중 2,3차례 불과하였으며, 통산 BB/SO=855개/694개였다는 것은 그의 선구안에 어느 정도였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될 것이다.

이러한 출루율과 장타력, 그리고 찬스에 강한 능력으로 젊은 포수의 승승장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1973년 3년 연속 3할타율을 기록한 이후 1974년 타율이 2할 7푼대로 떨어지긴 했으나, 홈런과 타점에서는 전보다 더 증가하여 20홈런, 103타점을 기록하였고 1975년에는 생애최고 타율.332로 리그 2위, 18홈런, 100타점으로 카디널스 공격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매시즌 잔부상을 안고서도 포수로서 +140경기를 뛴 그는 77년부터 80년까지는 2차례의 3할타율과 4년 연속 +20홈런으로 꾸준한 활약을 해주었지만, 팀의 성적은 월드시리즈와는 거리가 먼  답보상태에 그치고 있었다.

1980년 시즌 후 12년 동안의 카디널스 생활을 접고 아메리칸 리그의 밀워키로 이적한 Simmons는 파업으로 인한 시즌 단축과 손목부상 등이 겹치면서 저조한 성적을 냈으나, 최고의 투수리드로 밀워키의 통산 첫번째 지구우승까지 이끌었고, 양키스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Tommy John으로부터 2타점 홈런을 기록하는 등 밀워키의 새로운 스타로 급부상하게 된다.

1982년에는 자신의 통산 6번째 +20홈런으로 팀을 다시 지구우승으로 이끌며 에인절스를 꺾고 월드시리즈까지 진출, 친정팀 카디널스로부터 2개의 홈런을 빼앗기도 하였다.

3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체력에 대한 부담이 생기게 되자 Simmons역시 과거에 이름난 명포수들과 마찬가지로 체력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명타자를 겸하게 됐다. 이러한 이유로 체력부담이 과거보다 덜해졌고 1983년에는 생애 마지막이자 통산 7번째 3할타율과 13홈런, 108타점으로 찬스에 유난히 강한 자신의 진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5년간의 밀워키 생활동안에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한번도 차지하진 못하였으나, Simmons가 있을 당시의 밀워키는 리그 최고의 슬러거 중 한명인 Gorman Thomas를 비롯하여, MVP 2회에 빛나는 Robin Yont 그리고, 최고의 마무리였던 Rollie Fingers로 대표되는 마운드로 30년의 짧은 역사동안 가장 훌륭한 팀성적을 낼 수 있었다.

애틀랜타에서 백업요원과 대타요원의 역할을 마지막으로 88년 21년동안의 선수생활을 마감한 이후에는  피츠버그의 GM, 최근까지 샌디애고, 밀워키의 벤치코치를 지내기도 하였다.

올스타 8회포수부문 역대 최다인 2,472안타483개의 2루타, 또한 Yogi Berra에 이어 포수출신으로서는 역대 2위에 해당하는 1,389타점, 그리고 Simmons의 야구인생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최고의 찬스맨(The Greatet Clutching Hitter)'이라는 찬사는 그가 어떤 선수였는지를 보여준다.

여러 야구 통계사이트에서 Simmoms를 메이저리그 130년 역사를 통틀어 포수부문 Top-10에 이름을 올릴 정도이면 최고라는 찬사가 전혀 부족하지 않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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