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9 15:15:06, Hit : 64,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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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셔널리그 7년 연속 홈런왕 Ralph Kiner




2차대전 종전 후 메이저리그 최고의 홈런타자로 명성을 날린 Ralph Kiner는 19살이던 1941년 피츠버그와 입단계약을 체결하고 2년간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치게 된다. 마이너시절부터 홈런포를 양산하여 팀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던 상태였지만, 전쟁막바지에 이르러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대규모 징집으로 인해 Kiner도 잠시 야구배트를 내려놓아야 했다.

제대후인 1946년에 되어서야 메이저리그에 정식 데뷔를 하게 되는데, 신인 첫해 정확도는 떨어졌지만, 유난히 빨랐던 배트스피드와 순간적인 임팩트 능력으로 23개의 홈런을 치며 Giants의 Johnny Mize를 1개차로 제치고 리그 홈런왕에 등극하였다.
1906년 Fred Clarke가 리그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쥔 이후 40년만에 피츠버그 선수가 리그 홈런왕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그의 홈런 천하는 시작에 불과하였다. 이듬해인 1947년에는 아메리칸 리그의 홈런왕이었던 Hank Greenberg가 팀에 가세하자 구단에서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과 팀성적의 향상을 위해 홈구장인 Forbes구장의 좌측펜스를 당기는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그의 홈런포는 시즌 초부터 시작하여 연일 뿜어대었으며, 시즌 막바지였던 9월에는 더블헤더 2경기를 포함, 총3일간 4경기에서 8개의 아치를 쏘아올려 이해 시즌 51개의 홈런포로 마감하였다.

좌측펜스를 당긴 구단의 뜻하지 않은 배려(?)로 인해 자신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Johnny Mize 함께 공동 1위에 오르며 2년 연속 리그 홈런왕을 차지할 수는 있었으나, 일부에서는 그의 홈런이 짧은 구장탓이라고 평가절하하였고, 5할대도 미치지 못한 팀승률로 인해 막상 MVP투표에서는 하나의 1위표도 얻지 못하며 찬밥신세가 되고 말았다.

팀성적이 매시즌 하위권에 맴돌면서 그의 활약은 빛이 바래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여 1949년 54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역사상 최초로 2회이상 +50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으며, 1950년 다시 47개의 홈런으로 스포팅뉴스의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역시 MVP와는 거리가 멀어 계속해서 리그 홈런왕이라는 명함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단으로부터 많은 홀대를 받아야만 했다.

1952년까지 7년 연속 리그 홈런왕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구가한 그는 이듬해인 1953년 치명적인 등부상을 당하자, 시즌 중반 컵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하지만, 통증에도 불구하고 리그 5위의 성적인 35개의 홈런을 치며 고군분투하였고, 다음해에도 22개의 홈런을 기록, 힘든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2살이 되던 1955년 클리블랜드로 이적한 뒤 18개의 홈런을 마지막으로 그는 더 이상의 선수생활이 힘들다는 의사의 충고로 받아들이고 10년이라는 짧은 선수생활을 접고 은퇴를 발표하였다.

통산 10년 동안 5,205타석, 369홈런을 치며7.1개/100타석의 비율로 Ruth에 이어 이 부문 역대 2위에 해당하는 홈런빈도를 기록하였고, 올스타 6년 연속출전과 더불어 1975년 75.41%의 득표율로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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