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9 20:05:02, Hit : 71, Vote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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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세출의 투수 'Big six' Christy Mathewson




훤칠한 키, 금발의 잘생긴 외모, 명문가의 자제, 대학에서 인텔리교육을 받은 지식인....

Christy Mathewson은 1918년 감독을 마지막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기 전까지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였다. 1903년 기록한 한시즌 내셔널리그 탈삼진(267개)은 1961년이 되어서야 Koufax에 의해 경신되었고, 1913년의 68이닝 연속 무사사구 기록은 ML전체로 보았을 때는 1962년 84 1/3이닝 연속 무사사구를 기록한 Bill Fischer에 의해 깨졌지만, 내셔널리그에서는 1976년이 되어서야 Randy Jones에 의해 타이를 이루게 되었으며, 약 90년이 흐른 2001년에 Greg Maddux에 경신되었다.

몇몇기록에서 보여지는 만큼 그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만한 전대미문의 성적을 남긴 위대한 투수였으며,  그라운드 밖에서는 재단을 설립하는등 많은 사회봉사와 신사적인 매너로 많은 이들로 존경받았다.

대학시절부터 풋볼과 야구 등에서 두각을 드러내 1899년 세미프로팀이었던 Taunton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에 첫 발을 내딛었고, 이후 Norfolk에서 20승을 거두자 뉴욕 자이언츠와 $2,000의 계약을 맺게 된다.

그러나, 3경기에서 3패만을 기록하자  Norfolk로 방출된 그는 신시내티에 드래프트 되었다가 그해 겨울 Amos Ruise와 맞트레이드 되어 다시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게 된다. 이 트레이드는 메이저리그 130년 역사에서 항상 거론되는 사건중 하나이다.

1901년 20승을 거두며 팀내 최다승과 함께 최고의 피칭을 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Horace Fogel 감독으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얻지 못해 초기에는 야수로 출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볼티모어의 감독인 John McGraw가 부임하자 팀의 에이스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Joe McGinnity, Roger Bresnahan 등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팀전력이 상승하자 평균자책점 2.11을 기록하고도 14승에 그쳤던 승수는 이듬해에 30승로  고속상승하였다.

1904년 33승에 이어 1905년에는 31승 9패, 평균자책 1.28, 탈삼진206개트리플 크라운을 차지, 3년 연속 +30승은 물론 2년 연속 팀을 리그 정상에 올려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903년 제1회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은 이후 다시 2년만에 다시 월드시리즈에서 진출하였다.
1904년에도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양대 리그간의 불협화음으로 인하여 월드시리즈가 개최되지 않았던 것이다.

Mathewson은 정규시즌 못지 않은  피칭으로 사람들의 넋을 빼놓게 되는데, 필라델피아 A's와의 시리즈에서 6일동안 3차례 선발등판하여 모두 완봉승을 거두는 그야말로 엽기에 가까운 피칭을 선보인 것이다. 상대투수는 Eddie Plank, Chief Bender 등 훗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투수들이였다. 총 27이닝동안 무실점, 1볼넷, 14피안타, 18탈삼진을 잡아내었다.

그의 엄청난 활약에 당연히 팀은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게되고, Mathewson은 이때부터 'Big Six'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의심의 여지없는 리그 최고의 투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후 6년간 자이언츠는 시카고 컵스에 밀려 리그 우승을 매번 놓쳤음에도 Mathewson은 이 기간동안 최소 승수가 22승에 불과할정도로 매시즌 위력적인 투구로 타자들을 잠재웠으며, 1908년에는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20세기 내셔널리그 한시즌 최다승이자 자신의 생애최다인 37승을, 그리고 평균자책점 1.43, 탈삼진259개로 3년만에 다시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였다.

신예좌완  Rube Marquard의 합류 이후에는리그 최강의 원-투펀치를 구축하여 마운드에서 리그의 여러팀을 압도하기 시작하였고, 팀은 컵스주도의 리그를 다시 개편하여 1911년 리그 우승을 차지, 6년만에 다시 A's와 월드시리즈에 맞대결을 펼치게 된다.

1차전에서는 5년만에 만난 Chief Bender을 상대로 1실점 완투함으로써 다시 승을 기록하여 우승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지만,  3,4차전에서 시리즈 최고의 영웅이었던 Frank Baker에게 홈런과 2루타를 허용하며 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아쉽게 우승을 놓치긴 했지만,  1912년과 1913년까지 팀을 3년 연속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이 기간중 평균 24승을 올렸고, 비록 상대팀 투수들의 호투에 밀려 타선지원을 받지 못해 보스턴, A's와의 두차례 월드시리즈에서 1승 3패에 그쳤으나, 평균자책점1.15를 기록함으로써 어떤 투수들보다 월드시리즈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오늘날까지 포스트 시즌 피칭을 논할때마다 Mathewson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14년 24승을 기점으로 34살이 되던 1915년 8승에 머물었고, 신시내티로 트레이드 되었고1916년 4승만을 기록고 은퇴를 하였다. 이후 3년간 신시내티의 감독을 역임하였지만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프랑스 지역에 참전하게 된다.

당시 유럽에서는 생화학전이 종종 펼쳐졌다고 하는데, 이때 얻은 독가스 후유증으로 폐에 결핵균이 생기며 건강이 악화되는 바람에 조기 제대를 했고, 결국엔 그 후유증으로 1925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불같은 강속구를 던지진 않았지만, 우타자들이 두려워 했던 Reverse Curve 일명,'Fadeaway' 라고 불린 스크류볼로 Mathewson은 최고의 투수로 명성을 날릴 수 있었다. 변화구를 던질 때마다 투구폼이 변하는 그 당시 대다수의 투수들과 달리 Mathewson은 동일한 투구모션을 가졌기 때문에 타자들이 혼동을 겪을 수밖에 없었ek.

마구와 같은 변화구외에도 한경기 평균 75,80개의 투구수와 총 4,780.7이닝동안 단 844개의 사사구만을 허용할 정도의 정확한 제구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최고 자책점 1.14를 포함하여 총 5차례의 1점대 평균자책을 기록할 수 있었다.

17년간의 메이저리그 경력동안 노히트 2회(1901.7.15 vs 카디널스, 1905. 6. 13 vs 컵스), 통산 373승(역대3위), 79완봉(역대3위), 평균자책점 2.13(역대8위)으로 메이저리그 역사뿐만 아니라 130년이 넘는 자이언츠 역사의 모든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명예의 전당이 최초로 시행된 1936년 90%의 득표율로 헌액되었을만큼 그는 역사상 최고의 투수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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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강속구 투수 Dizzy Dean(출처 : 김형준 해설위원)
내셔널리그 7년 연속 홈런왕 Ralph K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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