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19 20:39:31, Hit : 74, Vote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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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짜 강속구 투수 Dizzy Dean(출처 : 김형준 해설위원)





※MBC 스포츠 해설위원 김형준 기자님의 글임을 밝힙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지금까지 기자투표를 통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발투수는 30명.
이들은 평균 285승을 따냈다. 하지만 Sandy Koufax는 평균 승수보다 무려 120승이 적은 165승(87패 2.76)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Koufax보다도 적은 승수로 오른 투수가 있다. 150승(83패 3.02)의 최소승 헌액자 Dizzy Dean이다(물론 Koufax와 달리 Dean은 11번째 도전만에 성공했다).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사라진,  벚꽃 같은 야구인생을 보낸 Koufax는 풀타임 10년을 뛰었다. 하지만 Dean이 보낸 풀타임은 단 6년이다. Dean은 어떻게 해서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었을까?  한 편의 코미디 영화 같은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익살스런 캐릭터인 Dean은 1910년 아칸소주 루카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발은 마치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주인공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같았다. 16살 때 학교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스스로 학교를 관둔 후 나이를 속이고 군에 입대, 하사관으로 복무했다.

'Dizzy( 현기증 나는)'란 별명은 군대에서 얻은 것이다. 나이를 속여 입대한 사실이 결국 들통나 군대에서 쫓겨난 Dean은 18살 때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그가 어떤 식으로 야구를 시작했고 누구에게 처음 배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Dean은 자신과 계약하러 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단장 Branch Rickey에게 "내가 보다 더 많은 관중을 모아주겠다"는 허풍을 떨었다. Dean은 2년의 마이너리그 수련을 거쳐 1932년 마침내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됐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자신에게 기자들이 이름을 물어보자 한 쪽에는 본명인 Jay Hanna Dean 으로, 다른 한 쪽에는 가짜인 'Jerome Herman Dean'이라고 알려줬다. 출생지와 생일 역시 제각각이었다. 다음 날 신문에 서로 다른 이름이 실렸음은 물론이다.

Dean은 풀타임 첫 해 18승(15패, 3.30)과 함께 탈삼진 이닝 완봉에서 1위에 올랐고, 이듬해인 1933년에는 20승(18패 3.04)과 탈삼진, 완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최대 라이벌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는 한 경기 17개의 삼진을 잡아내 Christy Mathewson과 Rube Waddell 등이 갖고 있던 16개 메이저리그 기록을 경신했다.

Dean은 당시 거친 선수들이 많아 '개스하우스 갱(Gashouse Gang)'으로 불렸던 세인트루이스의 에이스가 됐다. 1934년 시즌을 앞두고, Dean은 친동생 Paul과 함께 45승을 만들어내겠다고 장담했다. Daffy(어리석은)라는 별명의 Paul은 이제 막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투수였다.

9월22일 브루클린 다저스와의 더블헤더. 1차전에 선발로 나선 형 Dizzy Dean은 8회까지 노히트노런을 이어가다 9회 안타 3개를 맞고 3피안타 완봉승을 따냈다. 시즌 27승째였다.  2차전에 나선 동생 Paul Dean이 다저스를 노히트노런으로 잠재우고 18승에 성공함으로써 형제는 약속을 지켰다. 다저스에게는 최악의 하루였다.

더 나아가 형제는 Dizzy가 30승, Paul이 19승으로 시즌을 마감함으로써 팀 승리의 52%에 해당되는 49승을 합작했다. 이는 1970년 Gaylord(23승)-Jim(24승) Perry 형제의 47승을 넘는 메이저리그 기록으로 남아있다. 다승- 탈삼진-완봉-승률에서 1위, 이닝-평균자책점-완투에서 2위에 오른 Dean은 피츠버그의 안타왕 Paul Waner를 제치고 리그 MVP가 됐다.

1934년 Dean이 만들어낸 30승은 1921년 라이브볼 시대가 열린 이후 내셔널리그에서 나온 유일한 30승으로 남아있다. 메이저리그 전체로 따져도 Dean 이후에 나온 30승은 1968년의 Denny McLain뿐이다. McLain의 30승은 1968년이 투고타저의 최절정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Dean 형제의 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월드시리즈에서 다시 2승씩을 따낸 것. 세인트루이스는 Dean 형제의 4승에 힘입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4승3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6차전에 대주자로 나섰다 머리에 공을 맞고 의식불명인 상태로 실려나왔던 Dizzy Dean은 다음날 7차전 선발로 나서 완봉승을 따냈다.

이듬해 Dizzy Dean은 다시 28승, 동생 Paul Dean은 19승을 따냈다. 다승, 탈삼진, 이닝,완투에서 1위에 오른 Dean은 MVP 2연패를 노렸지만 명예의 전당 포수 Gabby Hartnett에게 밀려 2위에 그쳤다.

하지만 Dean 형제의 전성시대는 2년뿐이었다.
데뷔 후 2년 연속 19승을 거둔 동생 Paul은 1936년 연봉투쟁을 하느라 시즌을 늦게 시작했다. 이에 몸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피칭을 강행하다 어깨가 망가졌다. 이후 Paul은 7년간 12승에 그친 후 유니폼을 벗엇다. 

반면 Dean은 24승으로 다승 2위, 이닝-탈삼진-완투에서 1위에 올랐고, MVP 투표에서는Carl Hubbell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Dean의 최고 무기는 물흐르듯 부드러운 투구폼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강속구였다.
커브 역시 일품이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Dean은 Walter Johnson만큼 빠르고, Christry Mathewson처럼 날카롭다'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Dean에게 재앙이 찾아왔다.
1937년 4년 연속 올스타로 뽑힌 Dean은 경기에 나서지 않고 쉬고 싶었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의 구단주 Sam Breadon은 자기 팀 에이스가 올스타전에 나오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마운드에 오른 Dean에게 클리블랜드 Earl Averill의 라인드라이브 타구에 맞아 발가락이 골절되는 불운이 일어났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Dean은 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마운드에 올랐다. 발가락이 아프다 보니 하체에 힘을 줄 수 없었고, 하체에 힘을 줄 수 없다 보니 어깨로만 던졌다. 순식간에 어깨가 망가졌다. 강속구도 사라졌다.

이를 눈치챈 세인트루이스는 시즌 후 18만5000달러와 선수 3명을 받고 Dean을 컵스로 넘겼다.
1938년 Dean은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서도 7승1패 1.81을 기록했고, 시즌 막판 좋은 활약으로 팀의 리그 우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에서는 뉴욕 양키스 타선에 난타를 당했다.

이후 2년간 9승에 그친 Dean은 1941년 시즌 첫 등판에서 1이닝 3실점을 기록한 후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나이 31살, 너무 이른 피날레였다(괄호는 리그 순위).
1932년 : 46경기 286이닝(1) 33선발 16완투(8) 18승(4)15패 3.30 191삼진(1)
1933년 : 48경기 293이닝(2) 34선발 26완투(1) 20승(2)18패 3.04 199삼진(1)
1934년 : 50경기 312이닝(3) 33선발 24완투(2) 30승(1)7패 2.66 195삼진(1)
1935년 : 50경기 325이닝(1) 36선발 29완투(1) 28승(1)12패 3.04 190삼진(1)
1936년 : 51경기 315이닝(1) 34선발 28완투(1) 24승(2)13패 3.17 195삼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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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Dean이 만들어낸 상황극들.
만약 Dean의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그 배역에는 짐 케리를 추천하고 싶다.

(1)1934년 Dean은 월드시리즈 1차전에 앞서 디트로이트 타자들이 베팅 연습을 하고 있자
"공을 어떻게 치는 건지를 내가 제대로 보여주지"라며 베팅 케이지에 들어섰고 날카로운 타구를 날렸다(실제로 Dean의 타격 실력은 상당히 뛰어났다). 이를 본 Hank Greenberg는 껄껄껄 웃은 다음 입을 벌어지게 만든 타구를 날렸다. Dean은 "그렇지 그렇게 치는 거라고"라는 말을 남기고 꽁무니를 뺐다.

(2)1935년 어린이 병원을 방문한 Dean은 어린이들 앞에서 내셔널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 Bill Terry를 삼진으로 잡아내겠다고 약속했다. Dean은 2사 1,2루에서 Terry가 대기 타석에 등장하자 1할 타자 Hughie Critz를 고의볼넷으로 거르고 Terry를 상대했다. 결과는 삼진...

(3) 1936년 Dean은 사인 보기가 귀찮다며 포수에게 사인 없이 경기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상대팀 감독에게 찾아가 "내가 패스트볼만 던질 거니 그렇게 아쇼"라고 했다. 결과는 4피안타 완봉승.

(4) 1937년 Dean은 보스턴 브레이브스전을 앞두고 Joe DiMAggio의 형, Vince DiMaggio 정도는 매 타석 삼진을 잡아낼 수 있다고 떠벌렸다. 실제로 Dean은 세 타석에서 DiMaggio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4번째 타석. DiMaggio가 포수 파울 플라이 타구를 날리자 Dean은 포수에게 "놓쳐 놓쳐(Drop it, Drop it)"을 외쳤다. 포수는 공을 잡지 않았고 Dean은 기어이 삼진을 잡아냈다.

(5) 1937년 뉴욕 자이언츠전에서 Dean은 '세트포지션에서는 양손을 모은 후 일시정지를 반드시 하지 않으면 보크를 주겠다'는 주심의 말을 무시하고 던지다 정말로 보크 선언을 받았다. 이에 정신의 끈을 놓은 Dean은 1번부터 8번까지 연속으로 타자들을 맞힌 후 9번 투수를 건너뛰고 다시 1번타자에게 빈볼을 던졌다.

자이언츠 Jimmy Ripple은 얼굴 쪽으로 공이 날아오자 다음 공에 복수의 기습번트를 날렸고 1루에서 만난 Ripple과 Dean은 서로에게 주먹을 날렸다. 다음 경기에서 Dean은 주심의 말을 너무도 잘 따랐다. 세트포지션에서 4분 간 멈춰있다 공을 던진 것. 그 다음 공은 3분짜리 일시정지 후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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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의 나이로 유니폼을 벗은 Dean은 공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의 전속 해설가가 된 Dean은 선수들을 거침없이 비난하는 '거성식 해설'과 문법과 어법, 철자를 무시하는 엉터리 영어를 구사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어떤 영어선생님은 아이들이 말투를 따라하는 게 걱정된다며 Dean에게 항의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1947년 Dean은 "내가 던져도 너희보다 낫겠다"라며 시즌 내내 브라운스 투수들을 놀려댔다.
참다 못한 브라운스 투수들이 '어디 한번 해보쇼'라고 가서 따졌다. Dean은 진짜로 시즌 마지막 경기에 나섰고 4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7년 만에 오른 마운드였다. 37살의 Dean은 역시 7년 만의 타석에서도 안타를 때려냈다.

1953년 Dean은 79.2%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의 17번은 세인트루이스의 영구결번이 됐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영구결번을 따낸 투수는 Bob Gibson(45번)과 Dean뿐이다.  6년간 내셔널리그 최고투수로 활약한 후 20년 간 마이크를 잡았던 Dean은 2006년 전설적인 해설가에게 주는 Ford Frick 상의 후보로 올랐다 아깝게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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