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20 21:17:08, Hit : 71, Vote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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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속구 투수의 전설, Bob Feller




클리블랜드 100년 역사를 통해 최다승, 최다탈삼진, 최다완봉승 등 여러 부문에서 팀내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불세출의 강속구 투수 Bob Feller는  어려서부터 야구를 접하게 된다. 야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Feller를 위하여 집근처 공터에 직접 펜스까지 갖춘 야구장을 만들어서 아들이 최고의 야구선수가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34년 고등학교 시절 선발 7경기에서 5차례의 노히트경기를 기록하였으며, 상대한 팀중 한곳은 세미프로팀이었다. 그는 이 Farmers Union이라는 세미 프로팀을 상대로 노히트경기와 함께 27개의 아웃카운터 중 21개를 탈삼진으로 잡아내었으며, 다음 등판에서는 23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런 소문은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귀에 들어갔고, 클리블랜드가 16살의 Feller를 스카웃 함으로써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16살인 고등학생이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는 것은 MLB사무국에서 금지하고 있었다.

이 규정으로 인해  Feller의 강속구를 보길 원했던 메이저리그 팬들은 예외규정을 두어 Feller의 메이저리그 무대 진출을 소망했으며  매시즌 바닥권 성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클리블랜드 구단은  훨씬 더 적극적이었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투구를 하게 될 경우 다른 팀들의 성적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한 사무국은 클리블랜드 구단으로 하여금 일부 마이너리그팀에 $7,500씩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그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허용하였다. Feller의 능력이 가히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1936년 올스타 휴식기간 동안 카디널스와의 연습경기가 잡혀있었는데 17살의 Feller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향해 첫 공을 던질 계획이였다, 경기장은 그의 공을 직접 보려고 온 야구팬들로  꽉찼으며, 심지어는 올스타 휴식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팀의 선수들도 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 클리블랜드의 홈구장을 찾았다.

4회초 클리블랜드의 공격이 진행되던 중 불펜에서 Feller가 몸을 풀기 시작하자 관중들은 술렁거렸다다. 4회말 클리블랜드의 수비때 모습을 드러낸 Feller는 'Gashouse Gang'이라 불리던 카디널스의 타자를 상대로 3이닝,  탈삼진 8개을 잡았고, 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말로만 들어왔던 고등학생의 번개같은 강속구를 보고 탄성을 자아냈다.

당시 포수 뒤에 앉아있던 15년차의 베테랑 심판 Red Ormsby는 심판경력중 그렇게 빠른 공을 본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고, 경기가 끝난 후 매스컴은 당시 최고의 투수였던 Dizzy Dean에게 Feller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였다.거만하기로 유명한 Dean조차 그 공은 사람이 던질 수 있는 공이 아니라고 혀를 내둘렀다.

8월 중순 St.Louis Browns경기에서 메이저리그 공식 데뷔전을 가진 그는 탈삼진 15개로 사람들을 또 한번 놀라게 했으며, 3주후 필라델피아 A's와의 경기에서는탈삼진 17개아메리칸 리그 한 경기 최다탈삼진의 기록을 세웠다. 당시 그의 나이 17세 8개월이었다.


이해 총 8차례의 선발등판을 포함, 총 14경기에 등판하여  5승을 올렸으며  이듬해에는 선발등판 횟수를 좀더 늘려 150개의 탈삼진과 9승의 성적을 올렸다. 1938년에는 등판기회를 더 늘리며 10월 2일 디트로이트와의 경기에서는 탈삼진 18개로  메이저리그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을 기록하게 된다. 물론, 훗날 모두 경신되긴 하지만....

1938년 17승의 성적과 탈삼진 240개, 20살이 되던 1939년에는 24승 9패의 성적으로 다승왕까지 차지, 20세기 최연소 +20승 투수가 되었고  탈삼진 246개로 2년 연속 리그 최다 탈삼진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그에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100마일을 넘나드는 공을 던질 수 있었으나 제구력에 불안한 모습을 자주 보인 것이다. 1938년에는 무려 208개의 볼넷을 허용하면서 4점대의 평균자책점 기록한 것이었다. 경험과 나이가 들면서 영점조정이 되긴 했지만, 5년 평균 150여개의 볼넷을 기록함으로써 1점대 평균자책점까지 가능했던 시즌을 아쉽게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그의 빠른 볼은 가히 가공할만한 수준이였다. 사실 강속구 하나만으로도 타자를 상대했어도 충분히 통할 실력이였고, 가끔 구사하던 평범한 커브볼은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기 위한 옵션에 불과하였다. 1940년과 1941년 각각 27승, 25승을 거두며 3년 연속 다승왕, 최다 탈삼진을 차지한다.

Feller는 전성기에 접어들며 리그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1942년초 해군에 입대하며 3년간의 공백기를 갖게 된다. 수병으로서 미국 전함 Alabama호의 함포 사수가 된 그는 남태평양에서 함정생활을 하며 미드웨이 해전 등 전쟁사에 길이 남을 만한 역사적인 현장에서 일본의 전투기를 강속구가 아닌 40mm포로  여러 대 격추시켜 5개의  훈장을 받아 제대할 때는 전쟁영웅이 되어 금의환향하였다.

20대 중반의 나이로 접어든 1945년, 복귀를 앞둔 시점에서 색다른 실험을 제안받았는데, 당시 워싱턴 세네터스의 구단주인 Clark Griffith로부터 정확한 피칭속도를 측정해보자는 것이였다.
무더웠던 7월, 여러명의 기술자와 메이저리그 관계자, 그리고 이 계획을 준비한 Griffith구단주는 Griffith's Stadium에 모여 Feller가 던진 40개의 공을 정확히 측정하였다.

가장 빠른 속도는 98.6mph....
1970년대 초반 Nolan Ryan의 100.?마일전까지 가장 빠른 피칭 속도였다. 이 공을 지켜본 Griffith구단주는 자신이 보았던 공중에서 가장 빠른 것이었으며, 전설적인 Walter Johnson의 공을 능가하는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1946년 26승으로 다시 리그 최다승을 기록하였으며, 탈삼진 348개 , 그리고 커리어 최고 평균자책점 2.18을,  이듬해인 1947년에도 20승과 196개의 탈삼진으로 리그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1948년부터 강속구의 위력이 떨어지며 164개의 탈삼진에 그쳤지만, 여전히 리그에서 가장 많은 탈삼진을 잡은 투수였으며 완급능력과 경험까지 쌓이면서 19승을 올려 28년만에 팀을 다시 월드시리즈에 진출시켰다. 하지만, Braves와의 월드시리즈에서는 1차전에서는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완봉패당하고 말았으며, 5차전에서는 제구력난조로  5실점하며 데뷔후 처음으로 진출한 월드시리즈에서 2패만을 기록하였다. 결과는 팀의 우승이긴 했지만.........

1951년 22승으로6번째 리그 최다승투수로 이름을 올린 Feller는 30대 중반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여느 투수들처럼 하향세를 그렸지만 팀이 111승을 기록한 1954년에도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고,은퇴하기 전까지 여러 시즌동안 팀의 리더로서 Bob Lemon, Mike Garcia 등의 투수진을 이끌었다.

37살이 되던 1956년 그는 통산 266승, 2,581탈삼진, 노히트경기 3회(1940,4.16, vs 화이트삭스 . 1946.4.30 vs 양키스 . 1951.7.1  vs 디트로이트), 1피안타 경기 12회(ML 최다기록-Nolan Ryan과 타이)의 성적을 기록하고 18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1957년 클리블랜드 팀내 영구결번(19)되었고, 5년이 지난 1962년 94%의 득표율로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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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즌 13완봉승, Jack Coombs
최다승 투수 C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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