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21 15:06:49, Hit : 64, Vote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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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시즌 13완봉승, Jack Coombs




투수의 분업화가 이루어진 오늘날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필라델피아 A's의 감독 Connie Mack은 1910년 월드시리즈에 단 2명의 투수만을 등판시켰다. 감독으로부터 가장 신뢰를 받았던 아메리칸 인디언 혈통의 Chief Bender와 이해 팀내 최고의 성적을 올린 Jack Coombs가 그들이였다.

리그 최고의 좌완 Eddie Plank는 시즌내내 팔꿈치 통증으로 고생하여 월드시리즈는 등판조차 하질 못했다. 이러한 와중에서 우완 Coombs는 통산 3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컵스를 상대로 3경기에서 모두 완투승을 이끌어내며 팀창단 첫 번째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안겼다..

대학야구에서의 활약을 눈여겨 본 Mack감독에 의해 1906년 스카웃, 7월 5일 워싱턴 세네터스와의 경기에서 첫승을 신고한데 이어 9월 1일에는 역사에 남을 만한 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리그 최약체인 보스턴을 상대로 상대선발 Joe Harris와 24이닝 완투경기를 기록한 것이다.

아메리칸 리그 역사상 최장이닝 경기였으며, 이 경기에서 Coombs는 무려 89명의 보스턴 타자들을 상대로 주무기인 빠른볼과 팀동료 Rube Waddell로부터 배운 커브볼로 18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지만, 그에게 좀처럼의 기회는 오질 않았다. 당시 팀에는 명예의 전당 멤버들이기도 리그최강의 투수 3인방 Rube Waddell, Chief Bender, Eddie Plank가 있었기에 Mack감독이 마운드를 이 3명을 중심으로 이끌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1908년 괴짜투수 Waddell이 팀을 떠나면서 그에게도 조금씩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1909년 12승을 거두면서 팀 선발진에 한층 더 무게를 실어준 Coomb는 1910년 또 한번의 기록을 수립하며 당당히 팀의 에이스로서 성장한 것이다.

7월 한달동안 19차례의 선발경기에서 패없이 18승을 거두면서 시작된 상승세는 8월 4일 스핏볼의 대가이자 역대 통산 평균자책점 1위에 빛나는 화이트삭스의 Ed Walsh를 상대로 16이닝동안 단 3개의 피안타를 내주며 무실점, 18탈삼진을 기록하였다. 일몰로 인해 비록 승부는 가리지 못했지만..

그리고, 9월 5일 Highlanders(양키스)와의 경기부터 9월 25일 화이트삭스의 경기 7회까지 53이닝 연속무실점에 성공하며 1904년 화이트삭스의 Doc White가 가지고 있던 당시 메이저리그 기록인 46이닝을 경신하였다. 연속이닝 무실점행진은 끝나긴 했지만, 이 경기에서도 그는 Walsh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상대팀 에이스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렸다.

시즌성적은 353이닝,31승(다승1위) 9패, 평균자책점 1.30(2위), 탈삼진 224(3위)개였으며, 31승은Lerty Grove와 함께 A's의 프랜차이즈 단일시즌 타이기록이고, 평균자책점은 프랜차이즈 역대 최고기록으로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13완봉승은  아메리칸 리그 한시즌 기록으로 아직까지 아니, 영원히 깨지지 힘든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또한, Coombs를 필두로 이해 A's의 팀 평균자책점 1.79는 아메리칸 리그 역대 팀 최저 평균자책점이기도 하다.

A's와 컵스, 양대리그 최고의 마운드를 보유한 팀끼리의 1910년 월드시리즈 매치, 2차전에 등판한 Coombs는 Modecai Brown과의 맞대결에서 9개의 볼넷과 8피안타의 부진으로 3실점하긴 했지만, 팀의 간판타자들인 Frank Baker, Eddie Collins,  Danny Murphy의 활약으로 9-3의 스코어로 생애 첫 월드시리즈 승리를 기록하였다.
3차전에서도 5실점 완투승을, 5차전에서 다시 Brown을 상대로 2실점 완투승을 거둠으로써 총 3승으로 창단 이후 첫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팀에 안겼다.

1911년에는 방어율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팀내 최다이닝을 투구하며 28승으로 2년 연속 리그 다승왕에 등극하였다. Giants와의 월드시리즈에서는 3차전에 등판하여 1905년 월드시리즈에서 팀에 3경기 완봉패의 치옥을 안겼던 Christy Mathewson을 상대로 Frank Baker의 홈런에 힘입어 11이닝 완투경기를 기록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월드시리즈에서만 4승을 거둔 그는 이듬해 1912년에도 21승으로 3년동안 80승을 올리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그의 승수쌓기 행진에 갑작스러운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1913년 시즌 개막전 걸린 장티푸스와 그 후유증으로 인해 2년동안 단 4경기만을 출전, 1패에 그친 것이다. 2년동안 괴롭힌 장티푸스는 척추와 어깨에도 통증을 야기시켜 더 이상의 빠른볼을 던지지 못하게 했다.

1914년 시즌이 끝난후 Federal League의 창설에 재정낭비를 우려한 Mack감독이 팀의 간판선수들을 팔거나 웨이버공시하면서 Coombs도 팀을 떠나는 신세가 되었고, 1915년 브루클린(다저스)로 팀을 옮기게 된다.

내셔널리그로 옮긴뒤 Mathewson과 2번의 맞대결을 펼쳐 모두 승리를 거두며 이적 첫해에 15승을 기록하였고, 1916년 보스턴과의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승리투수가 됨으로써 월드시리즈 총 6차례의 선발등판을 통해 5승을 거두는 성적을 남기게 된다.

1920년 디트로이트에서 선수생활을 끝낸 후 Duke 대학의 야구감독으로 부임한 뒤로는 팀을 당대 최고로 만들어냄으로써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도 하여, 그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Duke대학내에는 Jack Coombs Filed를 포함하여 그의 이름을 딴 시설들이 여러개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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