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24 21:32:40, Hit : 76, Vote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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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lking man' Eddie Yost




리드오프는 최대한 출루에 신경을 써서 득점을 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일 것이다. 출루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컨택 능력은 물론 볼넷을 얻어서 나갈 수 있는 정확한 선구안 등이 필요한데 1950년대 워싱턴 세너터스의 Eddie Yost 는 이 두가지를 겸비한 당대 최고의 리드오프였다.

특히, 그의 선구안은 정평이 나 있었다. 슬러거들이 투수들로부터 볼넷을 많이 얻어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Yost는 홈런타자가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6차례나 리그 최다볼넷을 기록했고, 한시즌에 +100볼넷을 얻어낸 것도 8차례나 되었다. 그래서, 'Walking Man' 이라는 별명까지 갖게 되었다고 한다.

뉴욕 브루클린 출신으로 1944년 워싱턴 세너터스에 입단한 그는 3년간의 군복무로 메이저리그 경력을 좀처럼 쌓지 못하다가 1947년부터 팀의 3루수로 자리를 굳히면서 본격적인 빅리그 생활을 시작했다.
첫해에만 볼넷이 삼진보다 적었을뿐, 그 이후부터는 볼넷이 삼진수의 약 2배가 되며 최고의 리드오프로서 떠올랐다. 1950년 생애 첫 +100볼넷(141개)을 얻어낸 Yost는 1954년까지 5년 연속 +100볼넷을 얻어내며 리그에서 볼넷을 밥먹듯이 얻어내던 Ted Williams 등을 제치고 리그 최다볼넷을 독식하였고, 매시즌 전경기에 출장하여 역대 8위에 해당하는 829경기 연속출장(1949. 4.30 ~ 1955. 5.11)의 기록도 보유하였다.

수비에 정평이 날 정도로 뛰어난 수비는 아니였지만. 워낙  많은 경기를 뛰다보니 은퇴 당시에는 3루수 부문 리그 최다 어시스트, 풋아웃 등 많은 부문에서 리그 기록까지 수립할 수 있었다. 

매시즌 하위권에 머문 팀성적과 연고지를 옮기려는 움직임까지 일면서 세너터스가 팀의 노장 선수들을  트레이드 시키면서 Yost 역시 1959년 디트로이트로 팀을 옮겼다. 그러나, 디트로이트에서의 첫 시즌은 그의 선수경력중 최고의 한해였다.
세너터스 시절부터 가장 좋아한 구장이었다고 얘기했던 Tiger Stadium을 쓰면서 21홈런, 67타점으로  한시즌 커리어 최다를 기록했고, 출루율.435, 115득점, 135볼넷으로  리그 1위를 차지, 만점짜리 리드오프 역할을 하였다.

1961년 신생팀 에인절스로 이적하여 선수생활을 마감한 Yost는 1963년 신생팀 세너터스(현재 텍사스)를 지휘하게 되지만,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1패만을 기록한채 경질되어, 최단명 감독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Gil Hodges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이후, 여러팀에서 3루 주루코치로 활동하다가 1969년에는 메츠의 3루코치로서 선수시절 경험하지 못한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였다. 통산 볼넷부문에서 역대 9위에 랭크되어 있는 Yost는 3년간의 군복무를 제외한다면 실질적으로 메이저리그 경력은 16년에 불과하다.

그의 통산볼넷수가 1,614개이기 때문에 한시즌 평균적으로 100개가 넘는 볼넷을 얻어낸 것이며 이 수치는 슬러거들을 제외하고 통산 볼넷 Top-10에 포함되어 있는 Rickey Henderson이나 Joe Morgan보다 더 많은 볼넷을 얻어낸 것이다.

통산 28개의 리드오프 홈런은  20여년간 메이저리그 기록으로 남아있었고, 3루수로 2,008경기 출장기록과 수비부문 최다 어시스트 등도 한때 메이저리그와 아메리칸리그 기록이었던 만큼 1950년대를 대표하는 3루수이자 최고의 1번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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