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25 19:58:01, Hit : 66, Vote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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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블랜드의 영건 Hurricane Herb




1954년 클리블랜드는 메이저리그 최강의 선발 로테이션으로 프랜차이즈 최다승을 기록했다. 베테랑 투수 Bob Feller와 Hal Newhouser의 경험과 Bob Lemon, Early Wynn, Mike Garcia의 선발 3인방은 매시즌 20승이 가능한(3명이 합해서 13차례의 +20승 시즌을 기록했다)리그 최고의 선발투수들이였다.

금상첨화격으로 1955년에는 Bob Feller의 계보를 이을만한 강속구 투수가 데뷔를 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Herb Score였다.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리그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하며 언히터블의 면모를 과시한 좌완 Score는 1955년 시즌개막과 함께 당당하게 선발대열에 합류하게 되는데 빅리그에 데뷔한지 15일정도 지난 5월 1일 보스턴과의 경기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더블헤더로 치뤄진 이 경기에서 1차전은 Bob Feller가 생애 12번째이자 마지막인 원히트 경기로 화려하게 경기를 마무리한 상태였다. 2차전에 등판한 22살의 젊은 Score는 1회부터 3회까지 강속구와 느린 커브를 이용하며 9타자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5회까지 12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이 경기에서 총 16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는 위력투로 보스턴의 타자들을 완전히 농락하였다.

데뷔 초부터 Hurricane Herb라는 별명답게 폭발적인 투구폼으로 유명했던 그는 빅리그 첫해를 2점대의 평균자책점과 16승 10패, 탈삼진 245개로 리그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한 스타트를 끊었다. 특히, 227이닝을 투구해 기록한 245개의 탈삼진은메이저리그 최초로 9이닝당 9개가 넘는 탈삼진수치(1955년 9.7개, 1956년 9.5개)를 기록한 것이였고, 1911년 Grove Alexander가 세웠던 메이저리그 신인 최다삼진기록을 경신한 것이였다(Score의 신인 최다삼진 기록은 1984년 뉴욕메츠의 Dwight Gooden이 경신)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가 공통적으로 겪는 제구력의 약점때문에 많은 볼넷을 내준것이 흠이기도 했지만, 1할대의 피안타율 역시 Score가 신인시절부터 리그를 대표하는 정상급 투수로 자리를  굳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였다.

시즌이 끝나고 보스턴은 당시 클리블랜드 단장으로 재직중인 Hank Greenberg에게 100만$이 넘는 금액으로 Score를 자신들에게 넘길 것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명예의 전당 헌액까지 바라볼 수 있는 투수를 건네줄리는 없었다. 다른팀으로부터 여러 차례 영입 의사에도 불구하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소속으로 빅리그 2번째 시즌을 맞이한 그는 2년차 징크스없이 20승, 평균자책점  2.53의 성적과 함께 263 탈삼진으로 2년 연속 리그 최고 탈삼진왕을 차지하였다.

당시 그의 탈삼진 수치는 아메리칸 리그는 물론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1위였고, 2위보다는 무려 70~80개 가 많은 수치였다. 또한, 리그 최다인 5완봉승과 2년 연속 1할대의 피안타율, 리그 2위의 평균자책점은 '언터처블'이라는 칭호가 붙어도 전혀 모자름이 없는 성적이였다.

데뷔초부터 2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며 양키스의 Whitey Ford, 화이트삭스의 Billy Fierce와 함께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투수로서 더욱 일취월장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년의 짧은 시간을 보낸 뒤 Score의 투수인생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하향길로 접어들었다.

1957년 시즌 초반에도 그의 강속구는 변함이 없었다. 투구이닝보다 많은 탈삼진과 1할대의 피안타율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5월 7일 양키스와의 홈경기에서는 Score는 양키스의 2루수 Gil McDougald가 때린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에 오른쪽 눈 아랫부분을 정통으로 맞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병원으로 긴급후송되어 내려앉은 코뼈를 원상태로 돌려놓는 수술을 받았고, 눈주위의 수술도 함께 받아 실명까지 가는 최악의 사태는 막았다. 시력이 악화되는 후유증을 겪으며 시즌을 접은 그는 1957년 다시 마운드에 올랐으나 예전과 같은 투구를 다시 보여주지 못했다. 신체적인 문제보다는 타구에 대한 트라우마가 가장 컸다고 전해지고 있다. 간혹 경기에서 10개가 넘는 탈삼진을 잡을때도 있었지만, 과거처럼 그의 공앞에서 속수무책이였던 타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1957년 2승, 1958년 9승의 초라한 성적을 뒤로 하고 결국엔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 되버렸고, 1962년 29세의 한참 이른 나이로 은퇴를 하게 된다. 데뷔 첫 2년부터 부상이전까지 38승을 기록했던 것과 달리 부상이후 6년간 쌓은 승수는 고작 15승에 불과했다.

은퇴를 할 무렵 메이저리그의 많은 팬들은 당시 꽃을 피우고 있던 Sandy Koufax와 2살 위의 Score가 부상없이 건강했다는 전제하에 맞대결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두 투수 모두 좌완으로는 95마일을 넘는 강속구를 뿌렸고, 투구폼도 여러모로 유사했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였지만, 그는 Bob Feller, Sam McDowell과 함께 인디언스 역사에 손꼽히는 강속구 투수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뛰어난 신인 투수가 등장하기라도 하면 방송에서 항상 언급되는 투수가 바로 Herb Scor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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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유혹에 무릎꿇은 Sam McDowell
'Walking man' Eddie Y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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