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25 23:49:07, Hit : 80,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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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살의 나이에 타석에 들어선 Minnie Minoso




1995년 6월 30일은 미국 프로야구사에 있어 영원히 기억될 순간이었다.
Minnie Minoso라는 선수가 독립리그에서 지명타자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메이저리그보다 수준이 낮은 하위리그였지만, 많은 기자들이 이 장면을 담기 위하여 몰려들었고,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팬들이 야구장으로 몰려들었다.

왜 이리도 한 선수의 등장에 많은 관심을 가졌을까?
그 이유는 Minnie Minoso라는 선수의 나이가 당시 72세였다는 점이다. 땅볼로 물러나긴 했지만, 그의 열정에 찬사가 쏟아졌다.

1949년 메이저리그에 첫 모습을 드러낸 이후 50,60,70,80년대에 걸쳐 선수활동을 했던 그는 쿠바의 사탕농장에서 일을 하며 야구에 대한 꿈을 키워갔다. 니그로리그에서 올스타 3루수로 활약을 한 Minoso는 Larry Doby와 Satchel Paige가 아메리칸 리그의 흑인장벽을 무너뜨린지 2년이 지난 1949년
클리블랜드에서 정식데뷔를 하게 된다.

하지만, 3루수 출신이었던 그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진 않았고, 결국 1951년 4월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28살이었다.
다소 늦은 나이었지만, 그는 시카고 화이트삭스 역사상 첫 번째 흑인선수로 등록되면서 마침내 꽃을 피워나가기 시작하였다.

3루수와 외야수를 번갈아가며 3할 중반대의 타율은 물론 심심치 않게 홈런포를 쏘아올려 팀의 주전자리를 꿰찼고, 31개의 도루로 리그 도루왕을 거머쥐었다. 올스타까지 선정된 그가 보여준 신인 첫해 성적은 10홈런, 74타점, 타율.326, 출루율.422, 장타율.500이었다.
신인상이 유력해 보였지만, 양키스 월드시리즈 3회 연속 우승의 일원이자 백인이었던 Gil McDougald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1952년 도루왕에 이어 1953년에도 리그 도루왕을 거머쥔 Minoso는 타율에서는 매시즌 3할을 유지하였고, 4할이 넘는 출루율과 빠른 발로 득점에서 리그 정상권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30세 이후부터는 파워도 향상되어 평균 20개에 가까운 홈런과 90타점으로 팀의 간판타자로 발돋음하게 된다.

1958년 다시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 되어 생애 최다인 24홈런을 기록하였고 2년동안의 클리블랜드 생활후 다시 화이트삭스로 복귀, 37세가 되던 1960년에는 20홈런, 105타점의 놀라운 공격력은 물론 골든글러브(총3회)와 자신의 마지막 올스타 출전(총 7회)의 영광을 맛보기도 하였다.

1964년을 끝으로 은퇴하였으나, 1976년 화이트삭스의 유니폼을 입고 50세의 나이로 3경기에 다시 등장하였고, 54세가 되던 1983년 다시 화이트삭스 소속으로 2차례의 타석에 모습을 드러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물론, 이벤트 성격의 출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쨋든 그 나이에도 정규경기에 나설 정도로 준비를 했다는 것은 인정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8차례의 +3할타율과 타석에서의 적극성으로 리그 최다 HBP(Hit By Pitch) 10회로서 Don Baylor에 의해 경신되기 전까지 아메리칸 리그 최다인 총 189개의 HBP을 기록한 Minoso는 1983년을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거로서의 선수생활을 접었다. 

화이트삭스에서 영구결번(#9) 된 그는 17년간의 메이저리그 선수생활동안 통산 1,963안타에 그쳤으나, 만약 좀더 젊은 나이에 데뷔했다면 3,000안타는 충분했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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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최고의 잠수함투수 Tim Keefe
Lou Brock, 도루 역사를 새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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