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26 13:19:33, Hit : 62,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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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차례의 무릎수술을 한 타격왕 Tony Oliva




국내 메이저리그 팬들에게도 낯설지 않았던 악동 Carl Everett은 1999년, 2000년 3할타율, 30개를 넘나드는 홈런, 그리고 100타점을 기록하며 '右 세필드, 左 켄그리피'라는 별명까지 얻은적이 있다. 하지만, 2001년부터 그의 활약은 무릎부상으로 곤두박질 치고 말았다. 40여년전에도 무릎부상으로 Everett과 비슷한 경험을 한 선수가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Everett과는 달리 성격이 좋았다는 것과 더 심한 고생을 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 주인공 Tony Oliva메이저리그 최초로 데뷔 2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할 만큼 큰 기대를 받았으나, 한번 입은 무릎부상의 악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고, 데뷔초만해도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명예의 전당 헌액도 실패하고 말았다.

1940년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이름은 Pedro Lopez Oliva였다. 재능을 알아본 미네소타의 스카우터는 미국으로 데려가려 했으나, 당시 야구와 농장일을 병행하고 있던 16살 시골소년에게는 취업비자와 같은 것은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Pedro의 형인 Tony의 비자로 미국으로 향하면서 그때부터 그는 Pedro Lopez Oliva가 아닌 Tony Oliva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미국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애를 먹었고, 미네소타 구단은 Oliva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잠재력을 뽑아내기 시작하였고 훨씬 좋은 야구장비와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면서 실력은 급성장하였다.

독립리그에서 4할의 타율은 물론이고, 30홈런을 거뜬하게 기록하자 미네소타 관계자들은 다시 Tony를 팀의 마이너팀으로 불러들였고 1964년 신인 자격을 갖고 풀타임 로스터에 합류를 하게 된다.

전설적인 투수 Walter Johnson의 팀이기도 했던 Washington Senators라는 팀명을 버리고 미네소타에서 새롭게 출발한 팀은 1961년 연고지를 옮긴 후에도 계속해서 리그 하위권을 맴돌았지만, 홈런타자 Harmon Killebrew와 리그 신인상 출신의 거포 Bob Allison이 버티고 있었다. 거기에 마이너에서 4할의 타율을 기록한 23살의 Tony Oliva까지 합류하자 미네소타는 단숨에 양키스의 독주체제를 견제할 팀으로 급부상하였다.

1964년 1경기만을 결장하고 161경기를 소화했던 그는 팀의 여러 고참선수들을 제치고 팀공격을 주도, 타율.323, 최다안타 217, 109 득점, 2루타 43개로 이 부문 리그 1위를 모조리 차지하였다. 당시까지의 메이저리그 역사를 들추어볼 때 가장 화려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데뷔였다. 홈런 32개로 장타력까지 뿜어대며 리그 신인왕은 물론 신인 첫해부터 올스타와 '스포팅뉴스 선정 올해의 아메리칸 리그 선수'를 차지하여,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괴물신인의 등장이였다.

모든 스포츠에서 2년차 징크스는 당연한 통과의례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Tony Olva에게는 그런 징크스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타율(.321), 최다안타(185개)에서 2년 연속 리그 1위를 차지한 그는 전년도에 이어 다시 한번 스포팅뉴스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아메리칸 리그 선수'에서 뽑혀 리그 최고의 선수라는 명예를 안았다.

다저스의 막강 원투펀치 Sandy Koufax, Don Drysdale에게 막혀 월드시리즈 우승은 실패했지만 1933년 워싱턴 세너터스 시절을 끝으로 이웃집 잔치로만 여겨졌던 월드시리즈 무대에 팀을 진출시킴으로써 미네소타를 대표하는 선수로 팬들에게 당당히 이름을 내밀었다.

월드시리즈 우승의 아쉬움을 접고 새롭게 시작한 1966년에도 고감도 타격과 장타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3년 연속 리그 타격왕 등극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으나,  자신의 인생을 평생동안 괴롭힌 무릎부상이 발생하면서 볼티모어의 Frank Robinson에게 타격왕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해 외야수로서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긴 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무릎수술이라는 아픔이었다.
한차례의 무릎수술은 이듬해에도 이어졌다. 한가지 다행이라면 젊은 나이였기에 회복이 생각보다 빨랐다는 점이다. 부상후유증으로 수비능력이 다소 떨어졌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으나, 타격은 여전하였고 1969년과 1970년에는 다시 3할과 20홈런, 100타점으로 팀내 최고참인 Killebrew, 신인 Rod Carew와 함께 팀을 2년 연속 지구우승으로 이끌었다.

30살의 나이로 접어든 1971년에는 타율.337로 생애 3번째 타격왕까지 차지하며 무릎부상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탈출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오클랜드 A's와 경기에서 외야플라이를 처리하다가 다시 무릎을 다치고 말았고, 이듬해에는 단 10경기만을 출전한채 재활에만 신경을 써야 했다.

이때의 부상은 엄청난 치명타였다. 고질적 부상이 되버린 그의 무릎으로 광활한 외야를 지키기엔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1973년부터 새롭게 도입된 지명타자제도 덕분에 그는 선수생활을 좀더 연장은 할 수 있었으나, 온전치 못한 무릎으로 타격을 하는 바람에 몇차례의 작은 수술을 더 받게 된다.

결국, 1976년 35살의 나이에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선수시절 총 9차례의 무릎수술 때문에 좀더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었던 성적을 놓쳐 버린 사실이 아쉽기만 한 Tony Oliva는 리그 최다안타 5회, 올스타 8회 등 1970년대 초반까지 메이저리그의 손꼽히는 타자 중 한명으로서 기억되고 있으며 은퇴이후 부터는 미네소타의 타격코치를 역임하면서 팀내 영구결번(#6)과 함께 미네소타가 배출한 최고의 선수로 오늘날까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6년에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네소타로 진출한 박병호에게도 조언을 아까지 않았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0&aid=0000000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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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0월 1일, Roger Maris 61번째 홈런을 쏘다
Joe Wood의 공은 연기가 날만큼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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