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27 21:32:26, Hit : 67, Vote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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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짜투수 Rube Waddell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가장 엽기적이고 미스테리한 선수중 한명이  바로 Rube Waddell이였다.
그의 강속구는 Walter Johnson의 등장전까지 메이저리그 최고의 강속구로 정평이 나있었고, 좌완이라는 이점때문에 Johnson보다 더 위력적이였다는 평가까지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이야기할때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하는 것은 보기드문 괴짜투수였다는 점이다.

악어와 레슬링을 즐겼고, 소방차나 서커스단을 보기만 하면 그들을 따라가는 이상한 행동을 종종 하였다. 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난 사실이나 4월 1일 만우절에 세상을 떠난 것도 그를 더욱 신비롭게 하고 있다. 등판 하루전까지도 행방이 묘연하다가 홀연히 나타나 자신의 경기를 끝냈고, 등판일정을 다했다 싶으면 다시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가난한 집안 환경때문에 정식적으로 야구를 배운 것은 아니였지만, 탁월한 운동신경때문에 여러 운동팀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던 그는 학창시절 공부보다는 야구, 낚시 등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대학을 중퇴한 직후 프로팀에 입단하였고, 1897년 내셔널리그의 Louisville Colonels에 입단하면서 빅리그 생활은 본격적으로 닻을 올렸다.

1900년 피츠버그로 팀을 옮겼으나, 엄격한 선수관리로 유명했던 Fred Clarke 감독과 자유분방했던 Waddell이 궁합이 맞을리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불같은 강속구는 타자들에게 위협적이였다. 1901년  독립리그에서 잠깐 선수생활을 하다가, 그의 강속구에 매료된 Connie Mack 감독의 입단제의를 받고 1902년 시즌이 2개월 가량 지난 상태에서 필라델피아 A's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Waddell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해 7월 1일 Baltimore(現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3회,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공 9개, 9개 스트라이크로 타자 3명을 모두 삼진아웃시켜 자신의 강속구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시즌 성적은 24승, 탈삼진 210개로 리그 탈삼진왕을 차지하였다.

팀내 또 다른 좌완투수인 Eddie Plank와 최강의 마운드를 구축, 4,5년간 펼쳐질 A's 전성시대의 서막이였다. 강속구외에도 Waddell에겐  어떤 투수들보다 더 위력적인 커브를 가지고 있었다. Mack감독 뿐만 아니라 타석에서 그의 공을 상대하던 타자들은 그의 커브처럼 빠른 공은 처음 보았다고 평가했다.

1903년에는 탈삼진 302개를, 이듬해 1904년에는 탈삼진 349개로 당시 20세기 메이저리그 최다삼진을 작성하였다. 그의 기록이 약 60년이 흐른 뒤에야 Koufax에 의해 경신된 것을 보더라도 그의 삼진을 잡아내는 능력과 구위는 엄청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공의 반발력이 없던 Dead Ball 시대였다는 점과 타석에서 삼진을 당하는게 수치로 여겨졌던 시대였기 때문에 타자들이 오늘날처럼 삼진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의 삼진수치는 오늘날로 치면 400탈삼진 이상으로 비교될 수 있는 것이다.

Dead Ball 시대 최고의 삼진 아티스트였던 Walter Johnson이나 'Smokey Joe' Wood도 9이닝당 탈삼진에서는 Waddell(9이닝당 평균 8개가 넘는 삼진을 기록)의 수치를 따라잡지 못했다.

1904년 25승에 이어 1905년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하며 팀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던 그는 정작 뉴욕 자이언츠와의 월드시리즈에는 참가하지도 못했다. 일부에서는 그가 뒷돈을 받고 팔이 아프다며 꾀병을 부린것이라고 했지만, Connie Mack 감독은 Waddell이 시즌 후반 승마를 즐기다가 말에서 떨어져 왼팔을 다친것이라고 해명을 하였다.

그러나,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주장은 다른 것이였다. 시즌 종료 한달여를 남긴 상태에서 팀동료와 레슬링을 하다가 부상을 입은 것이다. 만약 이 부상만 아니였으면 시즌 30승도 충분했을 것이고, 월드시리즈에서 Christry Mathewson에게 3경기 완봉패라는 치욕이 나오진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자유분방했던 Waddell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동물사료용 과자를 즐겨먹었다고 한다. 당시 원정경기를 떠날때에는 두명의 팀동료가 한 침대에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침대에서도 사료용 과자를 먹는 바람에 그와 같은 침대를 쓰는 동료는 잠을 제대로 잘수가 없었다. 그래서, 동료들은 Mack 감독에게 그를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시켜달라고 간곡히 건의했었다.

하지만, 감독은 Waddell을 보낼수 없었다. 결국, 동료들은 그의 계약조항에 침대에서 과자를 먹는 것을 금지 시킨다는 조건을 넣도록 했다. 이런 이유를 제외하고도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엽기적인 그의 행동으로 인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였던 Eddie Plank와 달리 Waddell은 팀동료들로부터 불신을 받았고, 관계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1902년부터 1907년까지 6년 연속 리그 최다탈삼진을 기록한 괴짜 Waddell은 1907년 19승을 끝으로  마침내 A's와 결별하게 된다.
팀동료들의 계속적인 트레이드 요구와 Mack 감독 자신도 Waddell의 행동에 포기를 한 것이다. 1908년 세인트루이스 Browns의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시즌을 맞이한 첫해 A's 시절 동료들에 대한 복수심때문이였는지 1908년 7월 A's를 상대로 당시 메이저리그 기록인 한경기 16 탈삼진을 수립했다.

1910년 부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고, 마이너리그로 강등된후 다시는 빅리그로 복귀하지 못한채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메이저리그 13년 동안 193승 143패, 평균자책점 2.16, 탈삼진 2,316개를 기록하였다.

1912년 겨울, 친구와 함께 미시시피강에 놀러갔는데 마을의 둑이 무너지면서 홍수가 났고, 하루종일 얼음짱 같은 찬물속에서 제방쌓는 일을 하다가 페결핵에 걸려 그 후유증으로 2년 후인 1914년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마운드에서 Waddell은 간혹 야수들을 모두 덕아웃으로 들어가게 한후 포수와 단둘이서 상대팀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마무리 한적이 있었다. 그의 괴팍함을 포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라는 지적도 있지만, 실제로 1903년 디트로이트와의  경기에서 야수들을 덕아웃으로 들여보내는 대신 그냥 제자리에 앉게 한후 포수와 단 둘이서 타자 3명을 모두 삼진으로 잡아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워낙 술을 좋아해 경기시작 몇시간 전까지 술집에서 술을 먹다가 등판한 적도 있었다.

이밖에 자신이 하늘을 날수 있다며 3층 높이의 건물에서 직접 뛰어내리기도 하였다. 3차례 결혼해 모두 이혼을 하였는데, 이혼사유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과는 도무지 살수가  없다" 는 것이였다.
소방차 소리만 들으면 경기중에도 소방차를 찾아 떠났고, 소방서 근처에서만 살았다고 한다. 도무지 설명할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에게도 순수함과 용기는 있었다. 팀동료가 머리에 공을  맞아 의식이 없을때 자신이 직접 업고 병원까지 뛰어갔으며,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고갔던 미시시피 강에서 보여준 행동은 Waddell의 다른면을 볼수 있는 부분이다.  영웅심리가 유별났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긴 하다.
                        
Babe Ruth의 등장 이전까지 최고의 스타중 한명이였고, 그의 투구를 자주 보기 위해 새로 신축되는 구장들이 Waddell의 홈팀인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건설되기도 하였다. 아무튼 그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가장 엽기적인 선수중 한명이였던 동시에 최고의 강속구와 커브를 가졌던 파워피쳐의 대명사였기에 1945년 베테랑 위원회를 헌액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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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의 에이스 Eddie Plank
Gashouse Gang의 지휘자 Frankie Fri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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