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2-28 21:29:56, Hit : 88, Vote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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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자이언츠의 유격수 Travis Jackson




뉴욕 자이언츠의 명장 John McGraw가 30년간의 감독생활을 끝내고 은퇴하려 하자 세상 사람들은 자이언츠의 스타 Bill Terry가 아닌 Travis Jackson이 지휘봉을 맡을 수도 있다고 내다보았다. 그 이유는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플레이와 리더십으로 팀내 어떤 선수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고,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였기 때문이다.

Travis Jackson이 1922년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을 당시 팀에는 'Beauty'라 별명으로 멋진 수비를 발휘한 Dave Bancroft라는 명유격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나이가 30살을 넘어서자 팀에서는 좀더 기동력있고 폭넓은 수비를 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기에 Jackson은 이듬해인 1923년부터 백업유격수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냈고, Bancroft가 보스턴으로 이적한 1924년부터는 자연스럽게 유격수 자리는 그의 차지가 되었다.

붙박이 주전 첫해에 58개의 에러로 리그 최다를 범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면서 강한 어깨와 다른 유격수들보다 한템포 빠른 송구로 향후 몇년간 리그에서 가장 많은 병살플레이와 Assist를 이끌어냈다.
그의 수비력에 대해 'Stonewall'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으니 수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고 하겠다.

타석에서도 +3할타율과 +10의 홈런을 쳤고, 1929년에는 21개의 홈런과 94타점으로 당시 리그 유격수중에서는 가장 좋은 공격력을 자랑하였다.

1932년 시즌 중반 감독이 Bill Terry로 교체되면서 팀은 잠시 주춤했으며, Jackson 역시 발목부상으로 2년간 50경기정도밖에 소화하지 못하고 하향세를 그리는 것처럼 보였으나, 1934년 16홈런과 본인 커리어 첫 세자리 타점(101타점)을 기록, 부상으로 은퇴할 것으로 믿었던 사람들의 생각을 불식시켰다.

1935년부터 피츠버그에서 영입한 Dick Bartell에게 유격수 자리를 내주고 3루수로 전향, 수비부담을 줄여 나갔으며, 이듬해인 1936년 타율.230의 부진을 보이자 32살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은퇴를 선택하였다.

이후 자이언츠의 코치와 마이너리그 여러팀의 감독으로 후진양성에 힘쏟으며 여생을 보낸 그는 통산 6차례의 +3할타율을 기록하였고, 1982년 베테랑위원회를 통해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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