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3-03 22:06:17, Hit : 68,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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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턴 세네터스의 간판타자 Goose Goslin




1901년 창단되어 Walter Johnson이라는 불세출의 투수를 배출했던 워싱턴 세너터스(현 미네소타 트윈스)는 매시즌 하위권을 맴돌다 1920년대 리그 최고의 파워히터중 한명인 Goose Goslin이 입단하면서부터 리그 강팀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유달리 큰 코와 외야수비때 보여준 그의 어색한 팔동작 때문에 Goose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1900년 출생하여 세미프로팀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아 1921년부터 Senators의 일원이 되었다. 독립리그에서 4할에 근접하는 타율로 관심을 모았던 Goslin은 이듬해인 1922년부터 주전 외야수로 자리잡았고 매시즌 3할이 넘는 타율과 100타점과 100득점, 200안타의 매서운 방망이로 은퇴를 바라보던 30대 중반의 Walter Johnson과 함께 팀을 리그 정상의 팀으로 올려놓게 된다.

1924년에는 타율.344와  12홈런,129타점을 기록하며 양키스와 시즌 막바지까지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2경기차로 우승하였고, 마침내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뉴욕 자이언츠와의 월드시리즈에서 3개의 홈런을 포함, 7타점 맹타로써 팀은 창단 이후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홈런과 타점,타율 등 공격 전부문에서 팀공격의 핵이었던 Goslin는 이듬해 1925년에도 팀을 리그 우승을 이끌며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였지만, 피츠버그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패배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해 월드시리즈에서도 3개의 홈런을 치며 중심타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1926년부터 팀성적은 하락하였지만, Goslin의 성적은 오히려 상승곡선을 그렸다. 
데뷔이후 그의 최저타율은 .334이었으며,  5년 연속 +100타점을 기록하였고, 1928년에는 456타석에서 단 18개의 삼진만을 당하며 타율.379리그 타격왕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이해 타격 타이틀은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의 Heinie Manush가 공격 전부문에서 Goslin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타율에서는 1리 정도의 차이로 뒤지고 있는 상황이였다. 게다가 마지막 남은 4경기가 세네터스와 브라운스의 맞대결이였다.

마지막 경기 4타석에서 1안타에 그쳤던 Goslin은 9회초 다시 한번 타석에 들어서게 되는데, 여기서 안타를 치지 못하면 타격왕을 Manush에게 내줄수도 있는 상황이였다. Goslin은 여기서 잔꾀를 쓰게 되는데, 퇴장을 당한다면 타수에 기록되지 않게되고 타격왕은 1리 차이로 자신의 것이 될거라고 판단, 의도적인 행동으로 주심의 퇴장명령을 유도했지만, 의외로 주심은 냉담했다.
결국, 타석에서 끝까지 버텨야 했고 깨끗한 안타를 쳐냄으로써 그나마 떳떳하게 타격왕을 차지할 수 있었다.  

1929년에는 풀타임 데뷔 이후 처음으로 3할 아래로 타율이 떨어졌고, 계속된 타격 부진으로  1930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현 볼티모어)로 트레이드 되었지만, 이해 한시즌 최다인 37개의 홈런138타점을,  그리고 이듬해인 1931년과 1932년에도 계속하여 평균 20개의 홈런과 +100타점으로 워싱턴 시절보다 더 화끈한 장타력을  발휘하였다.

1933년 친정팀 세네터스가 그를 다시 불러들이자, 팀은 이해 바로 페넌트 레이스에서 우승을 하며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게 되었다. 비록 우승은 하진 못했지만, Goslin은 2차전에서 홈런을 치며 개인통산 월드시리즈 7번째 홈런을 쏘아 올렸다.

Goslin의 치솟는 연봉과 신인감독 Joe Cronin과의 불협화음으로 팀은 다시 그를 디트로이트로 이적시켰고, 디트로이트는 Charlie Gehringer, 신예 Hank Greenberg의 공격력에 베테랑 Goslin까지 가세하면서 세명의 姓의 첫 글자를 따서 이른바 G-Men의 타선으로 리그 우승을 하게 된다. Goslin은 3년 연속 +100타점을 기록하는 활약으로 디트로이트의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진출에 기여를 한다. 특히 1935년 컵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는 6차전 9회말 결승 끝내기 타점을 올리며 디트로이트 팬들의 영웅이 되었다. Ty Cobb이 있던 시절에도 못한 월드시리즈 우승을 Goslin이 해냈으니 당연한 일이였을지도 모르겠다.

1938년 친정팀 세네터스로 복귀하여 고질적인 등부상으로 인해 시즌 중반 은퇴를 하게되고,  통산타율 .316과 18년간의 선수생활중 12차례 +100타점을 기록하며 하위팀이었던 세네터스와 디트로이트를 우승시킨 Goslin은 1968년 베테랑위원회를 통해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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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팔이 타자 Pete Gray
1918년 내셔널리그 트리플 크라운 Hippo Vaug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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