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3-05 14:26:13, Hit : 78,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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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팔이 타자 Pete Gray




1944년 같은 연고지 팀인 카디널스에게 월드시리즈 패배를 경험하기도 한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現 볼티모어)는 매시즌 하위권을 맴돌던 팀이였지만, 2차 세계대전에 따른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군입대 공백으로 다른팀에 비해 전력누수가 덜했고, 뜻하지 않게 반사이익을 누리고있었다.

1945년 역시 리그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브라운스 역시 선수들의 숫자가 부족한 상태였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전쟁에 쏠려 있었고, 스타급 선수들도 모두 군복무중이였기 때문에 야구 인기는 시들해질 수밖에 없었다. 컵스의 단장 Phillipe Wrigley는 여자 선수들을 참여시키는 리그까지 운영하려고 까지 했으니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이런 와중에 야구팬들의 관심을 일시적으로 증폭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한쪽 팔밖에 없는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데뷔를 한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Pete Gray.

1945년 4월 17일 메이저리그 데뷔경기인 디트로이트와의 시합에서 4타수 1안타를 기록하면서 시작된 빅리그 선수생활은 단 1년으로 끝이 났지만, 전쟁으로 희망을 잃고 있던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용기를 심어 주었다고 당시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1990년대 잔잔한 감동을 준 '조막손 투수' Jim Abbott가 선천적으로 오른손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Gray는 6세때 광부로 일하던 아버지의 일터에서 채소를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트럭에서 내리다가 넘어졌고, 그 순간 차가 출발하면서 바퀴에 오른팔이 깔리는 중상을 입고 만 것이다. 무거운 트럭에 짓눌린 어린아의 여린 팔을 잘라내야 했고, 결국 오른팔의 3분의 2를 잃게 되었다.  

오른손잡이였던 Gray는 남은 왼쪽 팔로만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팔을 잃기 이전부터 야구를 무척 좋아했던 그였기에 외팔이가 된 이후로는 두배의 노력을 해야했고, 그의 왼팔은 오른팔의 기능까지 다 할 수  있도록 단련되어졌다.

가족들의 우려와 달리 야구를 통해 보여준 그의 능력은 예상외였다. 한쪽팔만으로도 홈런을 종종 기록했으며, 도루와 번트를 포함하여 수비에서까지  신체건강한 선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고향인 펜실바니아의 야구팀을 거쳐 세미프로팀까지 진출하였고, 1944년 하위리그 소속의 Three River Quebec이라는 팀에서는 타율.381, 5홈런, 68도루로 리그 MVP까지 수상하였다. 신체적 결함을 가진 선수가 기록한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성적이었다.

결국,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브라운스가 Gray와 2만$을 조건으로 계약하게 된 것이다. 사실 자신의 고향과 가까웠던 필라델피아 A's에 입단하기를 원했지만, A's의 Connie Mack 감독이 거절하였에 Browns로 마음을 돌린 것이였다.

37세의 노장 Mike Kreevich와 플래툰 시스템으로 중견수를 맡게 된 그는 30세의 나이로 1945년 4월 17일 데뷔한 후, 5월 20일 양키스와의 원정경기 더블헤더 2경기에서는 눈부신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타구방향을 가리지 않는 스프레이 히터로서 1차전 3안타, 2타점, 그리고  2차전 1안타 결승득점으로 팀이 2경기를 모두 승리하는데 기여를 하였고, 수비에서도 단 하나의 에러없이 완벽하게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 후로도 많은 경기에 출장하여 이해 234타수 51안타, 13타점으로 자신의 메이저리그 첫 시즌 성적을 훌륭하게 마무리했다.
물론 평범한 성적 아니, 부족한 성적이지만 한쪽팔만으로 이러한 성적을 냈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었다. 한쪽팔로 온힘을 다해 배트를 휘두르기 때문에 변화구나 Off-Speed의 공에는 약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삼진은 단 11개에 그쳤다. 수비실책도 7개에 그쳐 수비율 95%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2차대전 종전후 군복무 선수들의 복귀로 다음해 1946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뛸 기회는 사라졌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1948년을 끝으로 소속팀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와 계약이 종료되자 하위리그의 팀에서 30대 후반까지 선수생활을 이어 나갔다.

1950년을 끝으로 은퇴를 한 Gray는 글러브속의 솜같은 부분을 모두 제거한 대신 손가락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좀더 크게 했다고 한다. 한쪽팔만으로 글러브를 끼고 수비를 하기 위해서는 글러브의 착탈이 손쉬워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땅볼로 오는 공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왼손에 낀 글러브로 공을 잡은 다음 바로 공을 공중으로 띄웠다. 그 상태에서 글러브를 벗고 왼손으로 띄운 공을 잡아 송구를 해야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타구를 Gray쪽으로 날린 타자는 그의 수비과정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예상하여 평범안 중전안타에도 2루 베이스까지 마음을 먹다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수비를 보고 1루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Gray는 극소수의 일부 어린 팬들이 자신에게 돈을 건네주는 행위를 참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팀동료들이 자신을 동정심에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무척 싫어했다고 회고하였다. 남들과 똑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다간 그의 인생얘기는 1986년 'A Winner never Quits' 라는 TV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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