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3-07 10:23:36, Hit : 68, Vote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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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얄스의 골든글러브 2루수 Frank White





KC 로얄스의 팬으로 유명하신 이성우님께서 예전에 운영하셨던 홈페이지(http://kc_royals.hihome.com)를 참고해서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약 10여년간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던 KC Royals는 이 시기에 걸출한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타가 공인한 최고의 스타 George Brett을 비롯하여 타점왕 출신 Hal McRae, 20승을 3차례나 기록한 Dennis Leonard와 잠수함 투수 Dan Quisenberry 등이 팀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또 한명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로얄스의 전성기를 이끌어가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2루수부문 골든글러브 8회에 빛나는 Frank White였다. 비록, 'KC로얄스=Brett'라는 공식이 성립할 정도로 Brett이 팀에서 차지한 비중은 엄청난 것이긴 하지만, Frank White가 팀에서 기여한 부분도 절대 무시못할 만큼 오늘날까지 로얄스에 미친 그의 영향 역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1970년 전체 1라운드 8순위로 신생팀 로얄스에 입단한 그는 약 2년간의 마이너리그 경험을 바탕으로 2살 아래의 Brett과 함께 1973년 8월 메이저리그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 신인초기에는 2루수와 유격수 등 멀티 포지션을 소화하였지만, 올스타 2루수인 Cookie Rojas가 30대 중반에 접어들자 White는 붙박이 2루로 자리잡게 된다.

공격보다 수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1977년 62경기 연속 무실책의 팀내 최고수비기록을 세우더니 1978년부터 골든글러브를 매시즌 독식하며 리그 최고의 2루수로서 자리매김했다. 1976년 Whitey Herzog의 감독 취임과 젊은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로얄스는 10년동안 지구 1위를 7차례나 차지하였다. 이 기간중에 White의 활약도 다른 선수들 못지 않았는데, 1981년 파업으로 인한 단축시즌을 제외하면 매시즌 +50타점을 기록하였다. 비록 2루수로 평범한 공격력일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기복없는 꾸준한 플레이로 팀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것이 그의 장점이었으며 팬들이 그를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1979년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이후 1982년 디트로이트와의 경기에서도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으며, 특히 1980년 챔피언쉽 시리즈에서는 1개의 홈런을 포함하여 5할 중반대의 타율로써 양키스를 침몰시키는데 일조, 시리즈 MVP를 수상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상승세를 계속해서 이어가는데 실패하여 필리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25타수 2안타의 최악의 슬럼프에 빠지면서 많은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30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타석에서의 인내력과 선구안이 향상되어 1982년에는 커리어 최고타율.298까지 기록하였고, 언제나 그랬듯이 최고의 수비로써 AL최초로 2루수 부문 6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만약, 디트로이트의 Allan Trammell-Lou Whitaker의 키스톤 콤비가 없었더라면 11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도 가능했을것이다(White는 83~85년까지 Whitaker에게 뺏긴 이후 86,87년 다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아무튼, 월드시리즈 우승을 향해 매시즌 전력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팀은 Dick Howser 감독체제로 팀이 운영된지 4년만인 1984년 다시 지구 우승을 차지하였고, 1985년에는 1980년에 이어 다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게 된다. 정규시즌 22홈런을 기록하며 클린업 트리오로 활약한 White는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도 Brett과 함께 팀공격을 이끌어 1956년 브루클린의 Jackie Robinson이후 처음으로 2루수가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중심타선에 배치되기도 하였다.

홈에서 벌어진 첫경기와 두번째 경기를 연거푸 내주면서 월드시리즈 우승이 멀어지는 듯 했으나, 3차전에서 팀의 중심타자로 활약한 White는 5회 2점 홈런을 포함하여 7회에도 1타점 2루타로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팀의 6-1승리를 이끌어, 분위기를 완전히 돌려놓게 된다.

로얄스에게 희망을 다시 안겨준 3차전은 Jim Palmer(1966년 다저스와의 시리즈에서 20세로 등판)이후 월드시리즈 최연소 선발등판한 Bret Saberhagen(당시 21세)에게 많은 관심과 언론의 초점이 맞춰진 경기였지만, 경기가 끝난 후에는 어린 투수의 어깨를 가볍게 해준 3타점의 주인공 White에게도 많은 갈채가 쏟아졌다. 

분위기 반전의 주인공들이였던  Saberhagen은 2경기 완투승으로 시리즈 MVP와 정규시즌 20승에 힘입어 로얄스 선수로는 최초로 사이영상을, White는 월드시리즈 7경기에서 양팀 통틀어 가장 많은 6타점을 기록하며 팀이 우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1986년 8월 19일 화이트삭스와의 경기에서 7타점을, 이해 커리어 최다인 84타점을 기록한 White는 이듬해 1987년 3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팀에서 두 번째로 많은 타점(78)을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소 늦은 나이에 찾아온 그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4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반짝한 그의 장타력은 1988년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결국 1990년 39살의 나이로 18년간의 선수생활을 정리하게 된다.

모든 공격부문에서 Brett에게 밀린 것은 사실이지만, 최다안타부문(2,006개)과 출장경기(2,324경기)등 여러 공격부문에서 팀통산 역대 2위의 성적에 해당하는 호성적을 남겼고, 통산 6개의 그랜드슬램은 아직까지 로얄스 프랜차이즈 기록남아있는 상태이다(누가 경신했을지도??)

은퇴이후 3루 코치생활을 시작하면서 30년 넘는 기간동안 KC와 함께 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구단과 팬들은 감사의 표시로 영구결번(#20)시켰으며, White역시 이에 보답하기 위해 오늘날까지 구단을 위해 끊임없이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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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경쟁자 Billy Martin
Charlie Comiskey, 혁신적인 선수에서 악덕구단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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