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3-07 14:21:00, Hit : 59, Vote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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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대 보스턴 레드삭스의 외야수 Harry Hooper




1910년대 Tris Speaker와 함께 보스턴의 철벽 외야진을 구축하여 무려 4번이나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Harry Hooper는 1887년 출생하여 1909년 데뷔를 하게 된다. 빠른 발과 센스있는 번트능력을 평가받아 그는 팀의 1번타자를 맡게 되었고, 매시즌 4할에 가까운 출루율평균 +90득점을 기록하였다.

매우 뛰어난 타격능력을 갖고 있진 못했지만, 일단 출루할 경우 자신의 장기인 빠른 발로서 투수를 흔들며, 매시즌 20개가 넘는 수치를 기록하였다. 공의 탄력이 없던 Dead Ball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3루타와 평균 4,5개의 홈런으로 이 부문 리그 Top-10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고, 1915년 Phillies와의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는 홈런 2개를 치며,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초로 한경기에서 2개이상의 홈런을 친 선수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장식되었다.

당시 팀의 중견수였던 Tris Speaker, 좌익수였던 Duffy Lewis와 함께 'Million Dollar Outfield'라고 불리며 정확한 송구와 폭넓은 수비력으로 공격보다 더 두각을 나타냈고 평균 +20개의 Assist로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수비를 자랑한 선수중 한명이었다. 또한, 당시 팀의 유망주이자 투수였던 Babe Ruth를 외야수로 전향시킬 것을 감독에게 건의하며 Ruth가 역사상 최고의 타자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하였다.

1919년 구단주 Harry Frazee가 연극사업을 위한 자금충당의 방편으로 Ruth를 팔아 버린 후, Hooper 역시 1920년을 마지막으로 화이트삭스로 팔려 12년간의 레드삭스 선수시절을 정리하고 새로운 야구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는 더 악독한 Comiskey라는 구단주가 버티고 있었고, 연봉문제로 팀과 많은 진통을 겪게 되었다.

Dead Ball시대가 끝나갈 무렵인 1922년부터 10개가 넘는 홈런과 80타점, 타율.320을 기록하며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꽤 괜찮은 방망이 실력을 보인 그는1925년 구단주의 연봉대폭 삭감으로 인하여 팀과 불화가 지속되자 37살의 나이로 17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무리 하였다.

선수시절 대학졸업장이 있다는 자부심과 정치, 경제 전반에 상당한 지식과 교우관계를 갖고 있던 그는 은퇴 이후, 대학야구팀 감독과 부동산 투자회사 등에서 고문역할을 맡으며 부를 쌓았고, 또한 우체국장을 지낸 특이한 경력도 갖고 있기도 하다. 보스턴 역사상 그 어느 선수보다 가장 많은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기도 한 Hooper는 통산 375개의 도루160개의 3루타로 이 부문 팀 프랜차이즈 기록을 갖고 있으며, 1971년 베테랑위원회를 통해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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