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3-08 20:59:32, Hit : 84,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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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hind the Mask의 저자, Bill Freehan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혁명가인 Branch Rickey와 256안타의 주인공 George Sisler을 배출시킨 미시간 주립대학은 1961년 또 한명의 걸출한 야구선수를 배출하였다. 전미 대학 풋볼리그 우승의 주역이자 대학 최고의 쿼터백이었던 Bill Freehan이 그 주인공.

어려서부터 농구와 풋볼에 두각을 드러낸 그는 여러 프로팀의 제안을 거절하고 1961년 10만$의 계약금을 받고 디트로이트에 입단하였다. 모든 이들의 관심을 받았던 터라 19살에 입단하자마자 포수로서 3경기에 출전하였고, 쿼터백 출신답게 냉철한 경기운영과 투수리드, 그리고 정확한 송구능력으로 야구팬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좀더 완벽한 선수로 거듭나기 위해 1년간의 마이너생활을 거친끝에 1963년부터 팀의 안방을 지키기 시작하였다.

풀타임 첫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수로서 80경기에 가깝게 출전하여 단 2개의 에러만을 범하며 당대 리그 최고의 포수였던 양키스의 Elston Howard에게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1964년에는 Mickey Cochrane이 3할타율을 기록한 이후 30년만에 디트로이트 포수로는 처음으로 3할을 기록하였고, 장타력에서도 18개의 홈런을 쏘아대며 팀에서 내노라 하는 Norm Cash 등의 슬러거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장타를 선보였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베테랑 못지 않은 탁월한 경기운영으로 Freehan은 10년 연속 올스타의 첫 시작과 함께 올스타전 선발출장까지 하는 영광을 안으며 22살의 어린나이에 리그 최고의 포수로 한걸음 한걸음 발전하였다. 젊은 포수의 급성장은 선천적인 운동신경과 대학에서의 쿼터백 경험 등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노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경기전 상대팀 타자들의 장단점을 치밀하게 분석한 상태에서 상태에서 경기에 임했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그날의 경기를 자신의 일기장에 상세하게 기록하여 다음경기에 대비하는 등 철두철미한 자료분석으로 완벽한 투수리드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Freehan의 경기운영 일지는 1969년 'Behind the Mask'라는 책으로 출판되기도 할 정도였다.

철저한 준비를 통한 경기운영과 투수리드는 1965년 21살의 영건 Denny McLain이 보스턴을 상대로 6.2이닝동안 14탈삼진을 잡으면서 더욱 빛을 냈다. 그의 활약에 당시 디트로이트 지역언론에서는 Freehan에게 '홈플레이트뒤의 마법사' 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1964년 3할 이후 비록 공격력이 다소 가라앉는 모습을 보였지만 많은 야구팬들은 그를 리그 최고의 포수로 뽑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1965년부터는 골든글러브까지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최고의 포수자리에 등극하였다. 1967년 20홈런, 74타점의 성적을, 1968년에는 기량이 절정에 올라 타석에서 커리어 최다인 25홈런, 84타점, 수비에서는 새로운 리그 최다 Putout 등의 기록을 수립하여 31승을 올린 팀동료 McLain에 이어 리그 MVP투표에서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였다.

또한, 한경기 3개의 몸에 맞는 공(HBP)을 포함하여 이해 총 24개의 HBP로 리그 기록을 새롭게 작성하며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로 디트로이트 팬들로부터 사이영상과 MVP를 동시에 석권한 McLain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렸고, 심지어 Mr.Tigers로 불린 팀내 최고의 스타 Al Kaline에 버금가는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는 저조한 타율로 공격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진 못했으나, 자신의 전매특허인 투수리드와 완벽한 수비로 팀을 우승까지 이끌며 자신의 야구인생에 있어 1968년을 최고의 한해로 장식하였다.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에도 그는 공수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팀을 항상 리그 상위권에 올려놓는데 최선을 다하였고, 1971년 8월 9일에는 디트로이트 선수로는 처음으로 보스턴의 Fenway Park에서 3개의 홈런을 쏘아올리며 이해 총 21 홈런으로 식지 않는 공격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Freehan역시 과거의 명포수들과 마찬가지로 30대를 넘어서면서 체력이 조금씩 떨어져 1루와 포수를 번갈아가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하였다. 1976년 34살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디트로이트 유니폼만을 입고 Tiger Stadium에 운집한 팬들에게 멋진 야구를 선보인 그는 통산 200개의 홈런중에서 정확히 100개는 홈에서, 나머지 100개는 원정에서 기록할 정도로 홈원정 구분없이 언제나 기복없는 플레이를 해왔으며 수비에서는 은퇴 당시 포수부문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Putout 등을 새롭게 수립했다.

한시즌 에러수는 항상 한자리에 머물렀으며, 수비율은 아메리칸 리그 역대 최고인 99.3%의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였다. 참고로 Johhny Bench와 Ivan Rodriguez의 수비율도 Freehan에게는 미치지 못하며 통산 에러숫자에서도 Freehan이 적은 수치이기도 하다. 올스타전 7차례 선발출장5차례의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Mickey Cochrane과 함께 디트로이트 역사상 최고의 포수로 인정받는 Bill Freehan은 모교인 미시건대학의 야구코치로 돌아가 1995년까지 지도자 생활을 하였고, 몇년전까지도 스프링캠프에 특별 인스트럭터 자격으로 포수 조련에 심혈을 기울였다.

참고로 외손자인 Blaise Salter이 2015년 31라운드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드래프트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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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타점의 주인공, Hack Wilson
역사상 최고의 타점머신 Sam 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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