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3-08 22:09:22, Hit : 75, Vote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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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타점의 주인공, Hack Wilson


<사진출처 : AP>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은 성장기에 있는 자식들에게 힘든 운동을 시키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중 하나는 성장기에 무거운 짐을 들거나 신체에 무리가 가는 운동을 할 경우 성장이 무뎌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만약 Hack Wilson이 어려서부터 제철소의 공장 노동자와 화물짐꾼 등의 힘든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큰 키를 가졌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고된 일을 통해 그 누구보다 강한 근육과 허벅지, 팔뚝 등을 가질 수 있었고, 남들의 2배에 가까운 괴력을 지닐 수 있었다.

165cm의 키에 95kg이 넘는 체중의 소유자였던 그는 원래 뉴욕 자이언츠의 멤버였다. 당시 최고의 팀이자 가장 인기있던 팀의 일원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거친 환경에서 성장을 한 이유였는지는 몰라도 성격이 그다지 원활하지 못했고, 신적인 존재였던 McGraw 감독의 말에 반항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데뷔 2년차이던 1924년, 10홈런, 57타점을 기록하여 인정을 받기도 하였지만, 이듬해 부진하자 팀워크에 도움이 안되는 그를 단호히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냈으며, 햇병아리들이 즐비한 팜으로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메이저리그 데뷔전 세미프로 리그에서 84경기에서 30홈런을 치며 홈런, 타점, 타격을 모두 휩쓴 선수에게는 조금은 가혹한 조치였다.

Wilson은 결국 1926년 컵스로 드래프트 된다. 컵스의 감독 Joe McCarthy는 본인의 감독 데뷔였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카리스마로 팀을 장악하였고, 당연히 Wilson도 그러한 팀 분위기에 적응하며 컵스 유니폼을 입은 첫해 21홈런으로 리그 홈런왕을 차지하여 팀에서 기대한 성적을 기록해주었다.

이듬해인 1927년에도 30홈런을 쏘아올리며 필리스의 Cy Williams와 함께 공동 홈런왕을 거머쥐었고, 타점과 타율, 장타력 등에서 모두 리그 정상권을 실력을 발휘하여 4할대의 팀승률을 6할대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활약을 하게된다.

한번 터지기 시작한 Wilson의 홈런포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르며 1928년에도 31홈런으로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하였고, 팀의 해결사답게 120타점으로 팀공격을 주도하였다. 1929년 내셔널리그 최고의 타자 Rogers Hornsby가 팀에 합류하자 좀처럼 느끼지 못한 경쟁심을 가지게 되면서 39홈런,
159타점, 타율.345
를 기록, 39홈런, 149타점, 타율.380을 기록한 Hornsby와 함께 컵스의 전성시대를 다시 열었다.

참고로 당시 컵스에는 +100타점의 성적을 낸 선수가 이 두 명외에 Riggs Stephenson, Kiki Cuyler까지 합하여 4명이나 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3할 중반대의 타율을 기록하여 1927년 양키스의 살인타선과 비교될 만큼 막강 화력을 자랑하였다. 마운드에서는 리그 다승왕 Pat Malone을 포함하여 Guy Bush, Charlie Root 등이 선발진을 이끌었기에 Dead Ball시대 이후 최강의 전력을 구축수 있었다.

하지만, Jimmie Foxx, Al Simmons, Mickey Cochrane이 버티고 있던 필라델피아 A's 역시 컵스 못지 않은 막강 화력을 자랑하여 1929년 월드시리즈는 그 어느해보다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었다.
A's가 시카고에서 먼저 2승을 거두며 A's쪽으로 분위기가 기우는 듯 했으나, 3차전에서 Guy Bush가 1실점 완투함으로써 분위기를 반전 시켜고, A's의 홈구장 Shibe Park에서 열린 4차전에서도 7회초까지 컵스가 8득점한 반면 A's는 무득점에 그치고 있었다.

그러나, 7회말 수비에서 Hack Wilson이 평범한 외야플라이를 햇빛에 가려 놓치면서 경기는 순식간에 A's쪽으로 기울었고 7회말에서만 10득점한 A's의 승리로 끝나 버렸다. 5차전에서도 A's가 역전승하면서 컵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월드시리즈 5경기에서 8개의 안타로 타율.471을 기록하여 공격에서 빛나는 활약을 하긴 했지만, 4차전에서의 한번의 실수로 인해 Wilson은 그해 많은 비난을 받고 시즌을 마감해야만 했다.

실수에 대한 미안함이였을까?
30살이 된 Hack Wilson은 1930년 믿기 힘든 방망이로 모든 사람들의 넋을 빼놓게 된다.
6월 23일 필리스와의 홈경기에서 사이클링 히트, 8월 26일 피츠버그와의 경기에서는 Chuck Klein이 1929년 기록했던 내셔널리그 단일시즌 최다인 43홈런을 경신하였고, 9월 20일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는 1927년 Lou Gehrig이 세웠던 역대 단일시즌 최다타점 176타점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소속팀은 비록 카디널스에게 2경기차로 밀려 리그 우승의 문턱에서 주저 앉았지만, Wilson은 타율(.356-리그 10위)과 도루를 제외한 모든 공격부문에서 리그 최고를 기록하였고, 특히 홈런과 타점에서는 어느 누구도 넘볼수 없는 성적을 남겼다.
56홈런은 1998년 McGwire, Sosa가 홈런경쟁을 벌이며 경신하기 전까지 약 58년간 단일시즌 내셔널리그 기록이었고,
191타점은 여전히 꿈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생애 최고의 해를 보내며 자신감에 충만했던 그였지만, 자신에게는 스승이나 다름없던 McCarthy가 양키스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자 자기관리에 실패하면서 갑작스럽게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한다.
후임 감독인 Hornsby와는 선수시절부터 라이벌 관계였던터라 시즌내내 티격태격거렸고, 잦은 팀훈련 불참과 술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허다하여 결국 1932년 카디널스의 Burleigh Grimes와 맞트레이드 되었다.

하지만, 개막도 하기 전에 다저스로 다시 트레이드 되었다. 1932년 23홈런, 123타점으로 부활의 조짐을 보였지만, 컵스시절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마이너로 강등되었고, 34살이 되던 1934년 필리스에서 은퇴하였다. 이후 독립리그에서 잠깐동안 활약하기도 하였지만 이전에 보여준 괴력은 볼 수 없었다.

세미프로팀을 마지막으로 야구와 인연을 아예 접었던 Wilson은 2차 세계대전중에는 어릴적 습득했던 제련기술을 이용해 무기사업을 하였다고 한다. 다혈질적인 성격과 지나친 음주로 인해 오랜 기간 활약하진 못했지만, 아직까지 컵스의 단일시즌 기록에서 많은 부문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통산 4차례의 홈런왕과 타점왕 2회 등 짧은 기간동안 그 어떤 선수보다 화려한 성적을 남겼기에 1979년 베테랑위원회를 통해 헌액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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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the Mask의 저자, Bill Free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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