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3-09 20:08:39, Hit : 61,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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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시내티 백업포수 Willard Hershberger의 비극




1940년 신시내티는 나란히 20승 이상을 기록한 Bucky Walters, Paul Derringer의 원투펀치를 앞세워 메이저리그 최고의 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다. 수비에서도 메이저리그 최고의 팀수비율을 자랑하며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여 1919년 이후 21년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특히, 시즌중에 발생한 비극을 생각한다면 더욱 가치있고 기쁜 우승이였을 것이다.
팀의 백업포수였던 Willard Hershberger의 자살은 모두에게 충격을 가져온 사건이었고,  운동선수가 개인 사생활이 아닌 경기와 관련된 일로 죽음을 택한 것은 전세계 스포츠 역사를 통틀어서도 극히 드문 안타까운 일이였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18세때 아버지의 자살을 경험했던 Hershberger는 양키스의 포수유망주로서 주전포수 Bill Dickey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선수였다. 그러나, 포수로서 부상없이 꾸준하게 경기출장을 한 Dickey였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입성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양키스는 1937년 Hershberger보다 4살 어린 또 다른 포수 유망주 Buddy Rosar를 Dickey의 백업포수로서 낙점한 대신 Hershberger는 신시내티로 트레이드 하였다.

1938년 28살의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입성을 하긴 했지만, 신시내티에서도 백업포수 신세였다. 당시 팀에는 훗날 명예의 전당 멤버이기도 한 Ernie Lombardi가 포수마스크를 쓰고 안방을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170cm정도의 키, 체중 65kg의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던 Hershberger가 공격력과 수비력을 두루 갖춘 주전포수를 밀어내기에는 사실 어려워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간은 계속 흘러 30세를 바라보는 시점이였고, 제대로 기회조차 가질수 없으니 그의 마음은 한없이 답답하기만 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일을 겪어서였는지 활발하고 외향적이기 보다는 다소 내성적인 성격이여서 자신의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표현하지 않았다고 한다.

1940년 7월초, 그에게 뜻하지 않는 기회가 찾아왔다.
Lombardi가 발목부상을 당하면서 일시적으로 주전포수 자리를 맡게 된 것이다.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그는 열심히 뛰었고, 팀도 2년 연속 페넌트 레이스 우승을 향해 순조롭게 항해를 지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비극적인 결말의 씨앗이 된 뉴욕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가 7월 31일에 있었다. 전년도 리그 트리플 크라운 수상자이자 팀의 에이스인 Bucky Walters와 배터리를 이루어 9회말 2아웃까지 4-1의 리드를 잡은 가운데 완투경기를 남기고 있었다.

아웃 카운트 하나만을 남겨놓은 가운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볼넷으로 주자 한명을 내보낸 뒤 자이언츠의 Harry Danning에게 홈런을, 그리고 또다시 볼넷으로 주자를 진루시킨 가운데 Burgess Whitehead에게 끝내기 투런홈런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경기가 끝난후 Hershberger는 Walters와 Bill McKechnie 감독에게 자신의 투수리드가 잘못되어 경기에 진 것이라고 속마음을 내비쳤고, 며칠동안 식사도 거르면서 의기소침해 있었다. 이런 와중에 팀은 뉴욕원정 일정을 끝내고 브레이브스와의 경기를 위해 보스턴으로 향했고, 선수들은 Copley Plaza 호텔에 숙소를 마련하였다.

브레이브스와의 더블헤더 경기가 있던 8월 3일, 첫 경기가 시작될 무렵 Hershberger가 보이지 않았다.
경기장에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McKechnie감독은 팀관계자를 시켜 호텔에 전화연락을 취했다. 방에 있던 Hershberger 가 '몸이 좀 아프다' 고 하자 '7회까지라도 나와서 그냥 편안하게 경기를 지켜보라' 는 감독의 지시를 팀관계자가 전달했다.

그러나, 7회가 끝나도 Braves Field에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후 McKechnie 감독과  팀관계자들이 호텔로 향했고 그가 묵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욕실쪽으로 들어가보니 바닥과 욕조안이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미 싸늘하게 검이 돼 버린 Hershberger 옆에는 칼이 있었다.

목에 칼을 그어 자살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발표가 이었다. 4일전에 있었던 경기에 대한 심적 압박감과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채 패배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죽음으로 갚으려고 했던 것이다. 팀동료들은 의기소침하고 있던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Giants와의 경기에서 그의 투수리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운이 없어서 진 것으로 그렇게 생각해 왔다.

다음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행사가 브레이브스 구장에서 열렸고, 신시내티는 부상중인 Lombardi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코치였던 Jimmie Wilson을 포수로 복귀시켰다. 팀동료의 자살이 다른 선수들에게 감성적인 자극이 되었는지 8월 중순부터 다저스를 따돌리고 페넌트 레이스 우승을 확정지었다. 특히, 이해 153경기중 41차례나 1점차 승리(메이저리그 기록)를 함으로써 승리에 대한 강한 열의를 보였고, 월드시리즈에서도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역전우승을 하기까지 하였다.

월드시리즈 우승 직후 신시내티 구단은 Hershberger에 대한 추모행사를 다시 한번 열어 고인의 넋을 추모하였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미래를 바꿀만한 기회를 몇 번이나 맞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Hershberger는 1940년 7월에 찾아왔던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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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1루 수비, Keith Hernandez
191타점의 주인공, Hack Wi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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