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3-09 22:53:41, Hit : 79, Vote : 7
 Carl_Yastrzemski.jpg (26.0 KB), Download : 0
 보스턴 레드삭스의 전설 Carl Yastrzemski


<사진출처 : AP>

역대 2위에 해당하는 3,308경기 출전, 아메리칸 리그 최초의 400홈런-3,000안타달성.
이외에도 화려한 성적표를 남겼지만, Carl Yastrzemski는 데뷔 초기에 많은 심리적인 압박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해야만 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최고의 영웅 Ted Williams의 자리를 이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데뷔 첫해 11홈런, 80타점으로 신인치고는 좋은 성적을 올려주었지만, Ted Williams가 20살에 기록한 데뷔 성적 31홈런, 145타점과 비교해서는 너무 초라한 성적임은 분명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자신만의 스타일로 '제 2의 Ted'라는 별명을 떨쳐 버릴 수는 있었지만, Yaz(Yastrzemski의 애칭)는 분명 데뷔초기 다른 신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져야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폴란드 혈통의 그의 아버지 역시 청년시절 주목받는 야구선수이기도 했지만, 1930년대 전세계를 강타한 경제대공황의 여파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고, 그래서 자신의 아들이 그 못다한 꿈을 실현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Yaz는 고등학교 시절 야구보다는 농구에서 더 크게 두각을 나타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을 갖고 1950년대 중반부터 프로팀에 노크를 하기 시작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노히트 경기도 펼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양키스를 비롯한 많은 팀에서 러브콜을 보냈지만, 만족스러운 계약 조건을 제시받지 못해 대학진학이라는 방법으로 많은 팀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대학에서도 고등학교 시절 못지 않은 활약을 보인 이후 그는 자신에게 가장 최고의 대우를 보장한 보스턴과 입단계약을 맺게 되고, 1961년부터는 그린 몬스터앞에 항상 서있던 Ted Williams의 좌익수 위치를 승계하게 된다.

팀성적과 관계없이 꾸준하게 파워와 정교함에서 향상된 모습을 보인 그는 데뷔 3년째가 되던 1963년 올스타전에 첫 출전과 함께 그해 타율.321의 성적으로 리그 타격왕을 거머쥐어 보스턴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켰으며, 1965년에는 20홈런, 첫+5할의 장타율로 타율에서뿐만 아니라 장타력에서도 만족스러운 성적들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1946년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은 이후 계속 하향세를 그린 보스턴은 잦은 감독 교체에 이어 1965년에는 시즌 100패를 기록하며 어수선한 팀분위기로 1967년 시즌을 맞이하게 된다. 30대 감독 Dick Williams가 부임하여 경험미숙의 감독에게 팀을 맡겼다는 많은 우려도 있었지만, Williams감독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팀을 이끌어 전년도 9위였던 팀을 리그 정상으로 끌어올렸고, Yaz역시 팀분위기가 상승하자 개인성적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끝에 44홈런, 121타점, 타율.326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다.

홈런 부문에서 미네소타의 Harmon Killebrew와 공동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9월 마지막 12경기에서 44타수 23안타의 타율.523, 5홈런, 14득점, 15타점의 맹위를 떨쳐 시즌 종료까지 안개속이던 리그 우승 레이스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보스턴의 영웅으로 떠 올랐다.

Bob Gibson이 이끄는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도 4할타율3홈런, 5타점으로 팀의 우승과 관계없이 크게 활약했던 그는 이해 리그 MVP를 수상하여 27살이 되던 1967년을 화려하게 마감하였다.

Denny McLain을 필두로 리그에서 1점대 평균자책점의 투수가 4명이나 나오며 투고타저가 극에 달했던 1968년..
내셔널리그에서는 Pete Rose를 포함한 5명만이 +3할타율을 기록하였고,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오로지 Yaz만이 타율.301을 기록함으로써 리그의 유일한 3할타자라는 감투로 세번째 타격왕을 차지하게 된다. 역대 단일 시즌 최저타율을 기록하고 타격왕에 오르긴 했지만, 메이저리그 140년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던 투수들의 시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과거의 4할대의 타율이나 다름없는 기록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1969,1970년 각각 40홈런+100타점의 공격력으로 30대로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한 파워를 과시하였고, 1975년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리그 최강팀 A's를 상대로 1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1967년에 이어 8년만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

Ted Williams와는 달리 잔부상없이 매시즌 평균 +150경기에 출전했던 Yaz는 수비에서도 정확한 송구력을 인정받아 6차례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수비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고, 1979년 7월 24일에는 A's의 Mike Morgan으로부터 통산 400홈런을, 9월 12일에는 양키스의 Jim Beattie을 상대로 3,000안타를 기록함으로써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는 Stan Musial, Willie Mays에 이어 역대 3번째로 400홈런-3,000안타클럽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41살이 되던 1981년, 91경기에만 출전하여 데뷔 첫 100경기 미만의 출장경기수를 기록한 이후 1983년 10홈런, 56타점의 성적을 마지막으로 올스타 18회등의 성적을 남기고 은퇴하였다. 선수로서 그라운드를 떠났지만, 보스턴의 타격 인스트럭터로서 매시즌 스프링 캠프에서 후배선수들과 함께 하기도 했다.

23년간의 메이저리그 선수시절동안 총 3,308경기, 11,988타수, 1,816득점, 3,419안타, 1,844타점등 거의 공격 전부문에서 보스턴 레드삭스 프랜차이즈 기록을 달성하였고, Ted Williams의 곁에 자신의 유니폼 번호가 영구결번(#8)되는 영광을 안았으며, 1989년 94.63%의 높은 득표율로 헌액되었다.

아들과 손자도 드래프트를 통해 메이저리그 입성을 노렸지만, Yaz만큼 뛰어난 기량을 보이지는 못했고 손자인 Mike Yastrzemski는 2019년 샌프란시스코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에 데뷔하여, 같은해 펜웨이 파크 방문경기에서 보스턴 팬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기도 했다..




Name
Memo      


Password


Frank Chance, 4차례나 컵스의 100승을 일궈내다.
최고의 1루 수비, Keith Hernandez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