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3-10 22:01:02, Hit : 75, Vote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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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컵스의 스타 2루수 Ryne Sandberg



(사진출처 : 명예의 전당)


2016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 전까지 100년 넘게 월드시리즈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컵스는 항상 인기팀이였다. 그리고, 스타 플레이어의 계보는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1950,60년대 Ernie Banks를 시작으로 Billy Willianms, Ron Santo가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1980년대에는 만능 2루수의 상징인 Ryne Sandberg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1981년 빅리그에 데뷔해서 1997년 은퇴할 때까지 컵스의 선배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우승의 기쁨은 맛보진 못했지만, 역대 최고의 2루수 중 한명이라는 극찬과 더불어 최고연봉의 기록까지 써 내려간 스타였다.

청소년 시절부터 유망주로 각광받았던 Sandberg는 고등학교 재학 당시 전미최고의 풋볼 유망주 Top-5에 선정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1978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선택받은 팀은 컵스가 아닌 필라델피아였다. 또한,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3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끝내고 1981년  빅리그에 명함을 내밀었지만, 기회가 자주 찾아오진 않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리그 최강팀으로 군림하던 필리스는 신예 선수가 들어갈 자리를 선뜻 내어줄 만한 팀이 절대 아니였다. 1루수 Pete Rose, 골든글러브 2루수 Manny Trillo, 3루수 Mike Schmidt, 마지막으로 유격수 Larry Bowa의 철옹성 자체였다.

그나마 유격수 부문 메이저리그 최다출장 기록의 보유자 Bowa가 노장축에 끼여있는 상태라 Sandberg에 주전자리가 오는 듯 했지만, 구단 프런트는 Ivan DeJesus라는 선수를 얻기 위해 Bowa와  Sandberg를 컵스로 트레이드하였다. 아마 필리스 수뇌부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내야진을 구성하였다고 판단 했을것이다. 물론, 이 트레이드는 결과적으로 최악의 트레이드 중 하나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1982년부터 컵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중견수, 3루수를 번갈아 보다가 시즌 중반부터 붙박이 3루수로 활약하며  30개 이상의도루와 괜찮은 공격력을 보여주었다. 슬로우 스타터이기도 했던 Sandberg는 시즌후 다저스의 Ron Cey가 FA로 영입되면서 다시 포지션 이동을 하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2루수였다.

데뷔 이후 일부 포지션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기 때문에 안정된 수비에 대한 의문을 가질수도 있었겠지만, "Sandberg에게 2주일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는 어느 포지션에서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다" 라고 Jim Frey감독이 칭찬을 했을 정도로 2루 포지션에서도 훌륭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1983년은 9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의 시작이였다.

24살이 되던 1984년에는 200안타, 3할 타율, 114득점, 19홈런, 19개의 3루타, 36개의 2루타, 84타점, 32도루의 성적으로 만장일치에 가까운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MVP를  수상하고, 거기에 39년만에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까지 기여하였다.

특히, 1984년 6월 23일 리글리 필드의 경기는 Sandberg는 물론 컵스 팬들에게는 최고의 경기중 하나로 남게 된다. 라이벌 카디널스와의 맞대결에서 특급 마무리 Bruce Sutter를 상대로 9회말 선두타자 1점 홈런을 쏘아 올리며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10회초에 카디널스가 2점을 하면서 다시 컵스에게 패배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듯 했지만, Sandberg가 10회말 2사 1루에서 다시 2점 홈런을 친 것이다. 이 경기에서 팀의 12득점중 혼자서 7점을 기록한 Sandberg 덕분에 컵스가 이날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1985년 26홈런, 1989년 30홈런 그리고, 1990년에는 커리어 최다인 40홈런으로 Rogers Hornsby, Davey Johnson에 이어 메이저리그 역대 3번째로 2루수가 리그 홈런왕을 차지하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피츠버그의 Barry Bonds에게 밀려 두번째 MVP수상에는 실패하긴 했지만, 타점에서도 100타점을, 그리고 10차례의 올스타전에서 9차례나 선발 2루수로 출전했으니 공수주를 모두 갖춘 당대 최고의 2루수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Sandberg가 내세울 만한 업적 몇가지를 더 소개한다면 123경기 연속 무실책 경기(2007년 디트로이트의 Placido Polanco가 경신), 단일시즌 기록은 아니지만 2루수로서 최초로 40홈런-50도루를 달성, 그리고 1992년 당시로는 역대 최고연봉 계약인 4년간 2800만달러의 계약을 이끌어 낸 것 등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방망이가 늦게 발동 걸리는 스타일이라 나름대로 각성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1993년 시범경기에서 열의를 보였지만, 불행하게도 상대투수가 던진 공에 왼손 등을 맞아 5월중순까지 결장을 하고 만다.  이때를 기점으로 그의 성적도 서서히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선수노조 파업이 있던 1994년 중반 은퇴를 선언하였다(결혼생활에 문제가 있어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데, 1년 여만에 다시 5백만불의 연봉을 받고 복귀를 선언하면서 1996년 26홈런, 92타점의 전성기 시절 성적을 기록하게 되지만, 그것은 노장의 피날레에 불과했다.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팀성적과
함께 1997년을 끝으로 은퇴를 하게 된다. 메이저리그 신인이였던 박찬호의 변화구에 헛스윙 삼진 당하는 모습의 Sandberg를 기억하는 팬들도 있을 듯하다.

통산 282홈런은 Joe Morgan을 따돌리고 2루수 부문 역대 최다기록(현재 1위는 Jeff Kent), 1,061타점, 포지션별로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수여하는 실버슬러거상 7회 등등..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답게 화려한 성적을 남겨 놓았다. 3번의 도전끝에 2005년 76.2%의 득표율로 헌액되었으며, 같은해 8월 컵스 선수로는 4번째로 팀내 영구결번(#23)되었다.

컵스의 마이너리그 코치 등을 시작으로 지도자 생활에 나섰고 2013년 시즌중에 필리스의 감독에 부임하였으나 성적부진을 이유로 2015년 자진사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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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그 마지막 4할 타자 Bill Terry
Frank Chance, 4차례나 컵스의 100승을 일궈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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