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lassic(2017-03-11 15:32:52, Hit : 76, Vote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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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셔널리그 마지막 4할 타자 Bill Terry



(사진출처 : 명예의 전당)


30년간 뉴욕 자이언츠의 감독을 역임하며 20세기 메이저리그의 현대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John McGraw는 6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자 예전의 열정을 보여주지 못했고 사소한 일에도 버럭 신경질을 내며 감독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인 냉정함과 평정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선수들과도 사이가 틀어지고 있었다.

당시 유격수였던 Travis Jackson과 1루수 Bill Terry가 McGraw의 지휘봉을 넘겨받을 재목으로 구단 관계자들의 눈에 들어왔고, 많은 야구팬들의 바람과 예상대로 팀에서 더 오랜 생활을 하며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Terry가 1932년 시즌 중반부터 창단 50년째를 맞는 뉴욕 최고의 명문팀 자이언츠의 감독에 부임하게 된다.

감독 겸 선수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경험한 Terry는 애틀랜타에서 출생, 그곳에서 투수로서 실력을 쌓아가며 모든 야구선수들의 꿈이자 목표인 메이저리그 입성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투수로도 강한 인상을 심어주긴 하였지만, McGraw감독은 Terry의 타자로서의 능력을 더 높이 평가하였다.

1923년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처음 올렸으나 데뷔 초기 시절 당시 팀에는 리그 최고의 1루수였던 George Kelly가 버티고 있어 1루보다는 대타로서 좀더 많은 모습을 드러냈고, 자신의 고정된 자리가 없던 관계로 데뷔 2년간 별다른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Kelly가 30살이 되면서 젊은 Terry에게 조금씩 기회가 주어졌고, 1926년 Kelly가 신시네티로 이적하자 팀의 주전 1루수로 자리매김 하기 시작한다.

1927년 20홈런과 첫 3할 타율로 이적생 Rogers Hornsby와  팀의 중심타선으로 활약하였고, 홈구장인 Polo그라운드의 깊숙한 센터외야를 자신의 타격 스타일에 맞게 이용하며 30개가 넘는 2루타와  평균 10개의의 3루타, 그리고 5할이 넘는 장타율을 기록하게 된다.

만약 Polo 그라운드가 아닌 다른 경기장이였으면 그의 공격력 수치는 좀더 좋았을 것이라는 것이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 야구 역사가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좌타자였던 그는 타구 방향이 대부분 좌중간쪽이였고, 당시 Polo 그라운드의 좌중간은 펜스까지의 거리가 무려 140미터 가량 되는 광활한 공간이였다.

피츠버그에게 리그 정상을 넘겨주며 자이언츠는 1924년 월드시리즈 진출 이후 전력이 다소 약화된 상태였지만, Terry는 1929년 타율.372226안타로 타격실력을 뽐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30대로 접어든 나이에도 불구하고, Terry는1930년 무려 254안타를 기록하며 타율.401로 리그 타격왕을 차지하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물론 이 시기 많은 타자들이 3할대 후반의 고감도 타율을 기록하긴 했기 때문에 과소평가 되는 점도 없진 않지만 그가 1930년 4할을 친 이후 내셔널리그에서는 80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4할타자가 없다는 점에서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위대한 기록임은 틀림없다.

전년도의 대활약에 미치진 못했지만 이듬해인 1931년에도 +200안타를 기록하였고, 감독으로 부임한 1932년에 다시 4년 연속 +200안타행진을 벌이며 이 기간동안 평균 3할 5푼이 넘는 타율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감독 역할에 충실하고자 30경기 이상을 결장하였지만, 그의 타율은 절대 3할 2푼이하로 추락하지 않았고, Mel Ott를 비롯한 어린 선수들과 함께 11년만에 진출한 1933년 월드시리즈에서 워싱턴 세네터스를 꺾고 팀을 우승시켰다.

1934,1935년에도 각각 +200안타를 기록한 Terry는 1936년을 마지막으로 14년간의 선수생활을 접고 감독에만 전념, 리그의 강팀을 누르고 1936년부터 2년 연속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월드시리즈에 진출시켰다.

1941년 구단 프런트 업무와 마이너리그의 정비를 구단주 Horace Stoneham가 요청하자 Mel Ott에게 감독직을 넘김으로써 1923년부터 시작한 그라운드 현장을 완전히 떠나게 된 Terry는 야구에 대한 철학의 차이로 기자들과 사적으로 연락은 전혀 하지 않았다. 기자들과 덕아웃에서 농담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당시 감독들과는 아주 상반된 모습이였다. 당연히 언론에서 좋아할리 없었다. 이런 이유로 성적에 비해 다소 깐깐한 평가를 받았고 은퇴한 뒤 20여년이 지나서야 77.38%의 득표율로 헌액될 수 있었다.

총 6차례의 +200안타내셔널리그 역대 좌타자 최고 통산 타율.341을 기록한 그는 공격 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 Assist, Putout, 병살플레이 등 수비능력을 평가하는 갖가지 척도에서 3,4차례의 리그 1위를 차지하였다. 1934년 감독시절 기자회견에서 " 브루클린(다저스)이 아직도 리그에 있냐?라는 말때문에 다저스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자이언츠 맨이기도 한 Bill Terry는 은퇴 이후 자이언츠의 마이너리그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혁신하여 우수한 선수들을 길러냈고,  John McGraw와 함께 자이언츠 역사에 있어 최고의 선수 겸 명장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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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그 최초의 500홈런, Mel 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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